'아이디어 뱅크' 구본학 대표 "매출보단 지속가능한 기업 목표…혁신에 해답"
"R&D 연구인력만 150여명, 연매출 1.5% 지속 투자"
프리미엄 밥솥·정수기 등 손수 아이디어내고 제품개발 몰두
(서울=뉴스1) 대담=서명훈 산업2부장 정리=곽선미 기자 = # 어느날 한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고객과 셰프가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압력솥으로 한 밥은 너무 찰져서 초밥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 '찰 진 밥이 무조건 좋다'는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알아보니 김밥도 압력솥보다는 흔히 말하는 '냄비밥'이 더 좋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평상시엔 압력솥으로 쓰고 김밥이나 초밥, 비빔밥을 만들 때는 '무압'인 밥솥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구본학 쿠쿠홈시스 대표이사의 말이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쿠쿠 '트윈프레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트윈프레셔'는 밥솥 하나로 초고압부터 무압까지 모든 종류의 밥을 지을 수 있는 제품이다.
생활가전 전문기업 쿠쿠홈시스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쿠쿠의 지주회사인 쿠쿠홀딩스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구 대표이사를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에 자리한 쿠쿠빌딩에서 만났다. 20여년간 쿠쿠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이기에 경영 전반은 물론이고 기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눈에 띄는 쿠쿠 제품 중 구 대표이사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 트윈프레셔·인덕션·정수기, '작지만 큰 차이' 혁신의 연속
'트윈프레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밥솥업계에서 '혁신'이나 다름없는 '트윈프레셔'가 탄생하는데 3년 가까이 걸린 이유다. 아이디어를 개발자들에게 얘기했을 때 첫 반응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제품에 초고압과 무압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상상하긴 쉬우나 그런 기술이 나오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는 있다"면서도 "어려운 길이 분명하지만 어렵다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늘 제자리걸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걸 해낸다면 우리 앞에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추진했더니 결국 성과가 나왔다"며 "시장으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혁신'과 '지속가능한 회사'를 표현을 자주 썼다. 끊임없이 혁신을 해야만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철학 때문이다. 이르면 내년, 늦어도 2020년에는 매출이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매출 1조원이 없었다. 쿠쿠가 10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체질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제조업 성향을 탈피해서 우리만이 가진 혁신성으로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입니다. 혁신으로 이익을 창출해 나가는 것이지요."
'싸게 만들어 비싸게 판다'는 원칙은 모든 투자와 사업에 통용된다. 구 대표이사도 이런 사업의 기본 원칙을 거스르진 않지만 거기에 얽매여선 기업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혁신에 과감히 투자하고 거기에 알맞는 대가를 받아야 '독보적인' 위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게 구 대표이사의 지론이다.
그가 연구개발(R&D)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쿠쿠는 150명이 넘는 R&D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매년 매출의 1.5%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중소가전업계 중에서는 적지 않은 규모다. 그는 "오랫동안 성공을 지속하는 '명품 장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며 "다이슨 청소기를 따라한 차이슨 청소기가 금세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R&D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구 대표이사가 눈에 보이는 매출보다 '똘똘한 기술 하나'를 더 소중히 여기는 이유다.
작은 생각의 차이로 큰 혁신을 만들어낸 제품은 또 있다. 정수기 사업에 뛰어든 이후 구 대표이사는 매해 여름마다 반복되는 정수기의 '세균' 문제를 주목했다. 자사 직원들은 물론이고 타사 관계자들에게까지 세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묻고 다녔지만 되돌아온 답은 똑같이 "어쩔 수 없다"였다.
구 대표이사가 '세균에 발목이 잡히면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인더스트리(industry, 산업) 전체가 손상을 입는다'는 생각에 "여기서 탈피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화학적 살균이 아닌 전기분해 살균에 의한 '인앤아웃 직수 정수기'다.
"1인가구와 맞벌이 가구 등이 늘어나면서 매니저가 방문해 필터를 교체하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자동 살균 시스템과 셀프 필터 교체가 가능한 정수기를 내놨는데 '착한 차이'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구 대표이사는 '전기레인지'를 생산하기 위해 직접 전기레인지를 사용해 요리를 감행하는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전은 높은 온도에서 바삭하게 구워야하는데 전기레인지로는 한계가 있었다"며 "온도를 더 높이면 안전기준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구 대표의 아이디어가 다시 빛을 발했다. 온도측정 센서를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설계했다. 내부가 아닌 외부로 돌출시켜 온도를 더 높이면서도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묘수를 찾아냈다.
그는 "지난 6월 출시한 초고온 하이브리드 인덕션 레인지는 빠르게 초고온까지 끌어올려 조리 시간을 줄이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구이나 볶음, 부침요리도 속부터 골고루 잘 익게 도와준다. 전기레인지를 고민하시는 분들에게는 우리 제품을 추천드린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매출 300억 OEM업체→7500억 독자 브랜드 기업으로 '성장'
쿠쿠는 1978년 구본학 대표이사의 부친인 구자신 회장이 설립한 '성광전자'가 전신이다. LG전자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제품을 주로 생산하다가 1998년 '쿠쿠'라는 브랜드로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 때부터 사실상 구본학 대표 체제가 시작됐다. 구 대표이사는 이 시기를 쿠쿠의 '첫번째 변곡점'으로 꼽는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1998년 8월1일 회사 간부 10여명과 사흘간 워크숍을 열었는데, 주제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였습니다. IMF 외환위기 삭풍이 불어닥치면서 매출이 급감했고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답답한 토론이 이어졌죠. 우리 독자적인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결심하고 '제2의 창업'을 단행했습니다." 모두가 움츠리던 시기, 부친을 설득해 공격 경영의 깃발을 드높인 셈이다. 한마디로 '배팅'이었고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쿠쿠는 브랜드 공식 출범 이후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했고 지난해 매출 7500 억원을 넘어섰다. 구 대표이사는 "그 때 이후 매출이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며 "목표를 정해 놓고 드라이브를 걸기 보다는 기업의 진화나 체질 개선에 주력한 것이 주효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쿠쿠는 지난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상반기 지주사 체제로 개편했다. 지주회사 쿠쿠홀딩스 아래 렌털업체 쿠쿠홈시스, 밥솥제조업체 쿠쿠전자로 나뉘었다. 인적·물적 분할 과정에서 쿠쿠전자는 쿠쿠홀딩스의 100% 자회사가 됐다. 구 대표이사는 회사 대표 전 쿠쿠전자 대표이사직을 맡았지만 지주사 전환 이후 대표직을 사임하고 쿠쿠홈시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관련 법규상 상장사와 상장 자회사 대표를 겸할 수 없어서다. 현재 쿠쿠전자는 밥솥 시장 점유율 73%를 기록하는 부동의 1위 업체이고 렌털(쿠쿠홈시스)도 SK매직, 청호나이스와 함께 업계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구 대표이사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든 '렌털' 사업에 대해 "제조업보다 신경을 더 많이 쓸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그는 "8월 말 기준 렌털만 130만 계정이 되는데 제품의 질 못지 않게 서비스의 질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발달하는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SNS 알림톡, 온라인 상담, 챗봇 도입 등을 통해 다층 커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신규 렌털 사업에 대해 "정수기와 비데는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공기청정기, 전기레인지, 매트리스 케어 서비스 등도 주력 상품군"이라며 "향후 주방 생활가전과 화장실 생활공간 아이템을 지속해서 개발할 예정이다. 건조기는 아직 다른 회사 제품을 팔고 있지만 필요하면 직접 뛰어들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구 대표이사는 렌털사업을 중심으로 한 해외 진출을 쿠쿠의 '두번째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쿠쿠의 경우 내수 비중이 높아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만 47만 누적 계정을 확보하는 등 조금씩 성과가 나고 있고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법인(이달 혹은 내달 법인 허가) 등으로 확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외산 브랜드 밥솥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성과는 구 대표이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인적 네트워크, 렌털 판매 노하우를 보유한 현지 업체를 인수한 뒤 쿠쿠의 상품력·마케팅력을 결합시키는 전략이 통한 것이다. 구 대표이사는 "그런 모델은 말레이시아 내에서 이전에 있었던 모델이 아니었고 상황에 맞게 새롭게 적용한 것"이라며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장에 알맞게 경영 스타일에 변화를 추구하는 유연성을 배웠다. 이른바 성공방정식을 익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대기업 삼성이나 LG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기존 현지 유통업체와 대량 거래 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작은 기업이 진입할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우리는 현지 법인을 따로 세우고 B2C를 직접 관할해야 해서 힘들다. 한번 세팅이 되면 무너지지 않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우리 정부가 중소·중견업체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시장 개척자'들을 적극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구 대표이사는 앞으로도 실험과 도전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형가전이 가지 못하는 길을 중소형 가전업체인 쿠쿠가 시도해야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매일 변화하는 시장에서 장기간 성장 잠재력을 지닌 기업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1등을 단 한번도 꿈꾸지 않았지만 어느새 1등 자리에 올라선 구 대표이사가 전하는 메시지다.
◇구본학 쿠쿠홈시스 대표이사는 누구?
구본학 대표이사는 1969년 서울 출생으로 쿠쿠 창업자 구자신 회장의 장남이다. 1992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1994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회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쿠퍼스&라이브랜드에서 회계사로 근무한 이후 1996년 쿠쿠전자 기술연구소 직원으로 입사해 해외영업팀장, 마케팅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2004년 10월부터 부사장을 맡아 회사 경영을 총괄해왔다. 현재는 쿠쿠홈시스의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 전반을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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