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2.0]③'서른살'의 추억…첫 교역품부터 중단까지
1988년 7·7선언 시발점…1호 교역 '예술품' DJ·盧정부서 '전성기'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절정, 보수정권 이후 정체
- 곽선미 기자
(서울=뉴스1) 곽선미 기자 =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신(新) 남북 경제협력(경협)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내용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면서다. 10·4선언은 '공리공영과 유무상통'(공동의 이익과 번영, 양측에 없는 것을 서로 지원한다)이라는 원칙을 담고 있어 두 정상이 남북 경협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정상회담이 아직 남아있지만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합의를 이루면서 '비핵화 없이 대북 제재 해제는 불가하다'는 미국의 입장도 상당 부분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진전된 합의가 나오면 남북 경협은 '날개를 단 듯'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북 경협 30년…1988년 노태우정부 시절 태동
남북 경협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7·7선언(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이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이후 30년간 남북이 군사·정치적 위기를 겪을 때마다 부침을 거듭해 왔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 경협은 2년째 '올스톱'된 상태다.
노태우 대통령은 7·7 선언을 통해 '남북 교역을 민족 내부 거래로 간주한다'고 천명했으며 같은 해 말부터 예술품 수입 등 남북 교역을 시작했다. '88 서울 하계 올림픽'도 남북 경협 및 교류 활성화 기류 조성에 힘을 보탰다. 최초의 남북 교역은 1989년 1월3일 북한 남포항에서 선적된 북한의 예술작품 612점이 부산항에 도착한 것으로 ㈜대우가 들여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89년 1월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경제인으로는 처음으로 방북해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났으며 금강산 관광의 모태가 된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했다. 1992년 2월부터는 남북 위탁가공교역도 시작됐다.
본 궤도에 오른 듯했던 남북 경협은 1993~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북한의 NPT 탈퇴 등 북핵 위기로 잠시 주춤하다가 1994년 10월 이후 제네바 북핵 합의와 1차 남북 경협 활성화 조치로 재개된다. 하지만 1996년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과 그 이듬해 IMF 외환 위기로 다시 위축됐다.
◇꽃 피운 '남북 경협'…금강산 관광·개성공단 가동 '전성기'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가 1998년 출범하고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남북 경협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뒤인 1998년 2차 경협활성화 조치를 내렸고 같은해 11월 금강산 관광도 개시했다.
무엇보다 남북 경협이 꽃을 피울 수 있게 한 드라마틱한 사건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이다. 정 명예회장은 1998년 6월 1차 방북 때 소 500마리, 10월 2차 방북 때 501마리 등 총 1001마리를 몰고 휴전선을 넘는 장관을 연출했다. 2차 방북 한달 뒤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을 계기로 막을 내릴 때까지 10년간 수많은 남한 관광객들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뿐만 아니라 2000년 6월15일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고 대규모 대북 지원 및 경협 합의서를 도출했다. 같은 해 8월 현대아산과 북측간 개성공단 개발합의서가 체결됐다. 이 과정에서 정 명예회장이 숨은 공로자 역할을 했다. 다만 정 회장이 2001년 3월21일 별세하면서 개성공단 조성 사업의 주도권은 사실상 정부로 넘어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12월15일에는 리빙아트 스테인리스 냄비가 첫 경협 제품으로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점차 불어나 2006년 11월 기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1만여명을 돌파했고 2007년 1월 말에는 누적 생산액이 1억달러를 넘어섰다. 1989년 1870만달러에 불과했던 남북 교역액도 2007년 17억9800만달러로 95배나 늘어났다.
◇금강산관광객 피격·천안함 사건 등으로 '경협 중단'
남북 경협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금강산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 등을 계기로 남북 경협에 한파가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데 이어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대북 경제 제재인 5·24 조치가 발표되면서 남북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5·24 조치에는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 투자를 전면 금지하고 공단 체류 인원도 평소의 50~60%로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남북관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로 위태롭게 유지되던 개성공단은 2013년 4월26일 잠정 중단 사태를 맞았다. 업계의 호소 끝에 9월16일 재개됐지만 북한이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2월 전면 폐쇄됐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남북 경협의 명맥은 사실상 개성공단이 지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남과 북이 30년간 이어온 남북 협력 및 교류는 전면 중단됐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북 교역액은 100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참여정부 시절 18억달러와 비교하면 사실상 멈춰선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해정·이용화 연구위원은 올해 초 낸 '新 남북경협의 과제와 시사점-남북 경협 30년 평가'에서 "1988년 시작해 올해로 30년 맞은 남북 경협은 정치·군사적 요인에 직접 영향을 받으며 부침을 겪었다"며 "도입기와 성장기, 정체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남북 경협 재개를 위해서는 남북기본협정 체결 및 남북관계 제도화를 추진해 정책 추진에 일관성을 도모해야 한다"며 "북핵 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이 있을 경우 국제사회의 지지와 이해를 구해야 한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남북 경협이 평화에 기여한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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