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없어서 못 파는' 일품진로, 주당 입맛잡은 비결 '정성'
"200㎏ 오크통 일주일에 2~3번 위치 바꿔줍니다"…철테도 엄격 관리
코냑 오크통서 '야심작' 숙성중…일품진로 아성 잇는다
- 윤수희 기자
(서울=뉴스1) 윤수희 기자 = "앞으로도 1년에 1만병 이상 생산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지난 9일 경기 이천시 부발읍 공장에서 만난 하이트진로의 증류주 제조파트 담당 서동은 과장은 '일품진로' 브랜드의 생산 방향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7월 출시된 '일품진로19년산'은 출고가만 9만8000원으로 9000병 한정 출시됐다. 고급 주점이나 레스토랑, 호텔 등에서 20만원 넘는 가격으로 팔리기 때문에 여러모로 '귀하신 몸'이다.
그럼에도 일부 주류 수집가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여러 병씩 사모으거나 한 번 맛보기 위해 수소문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급 위스키와 또 다른 맛으로 국산 고급 증류주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일품진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될까.
◇일품진로, 정성 또 정성…오랜 시간 수작업으로 생산
이천 공장에 위치한 일품진로 오크통 저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층층이 쌓여있는 5000여개의 오크통이 장관을 이뤘다. 8층으로 구성된 철제 프레임에는 한 줄에 18개씩 오크통이 가지런히 나열돼 있다. 일품진로19년산은 같은 줄에 있던 오크통의 원액으로 만들어지는데 9000병이 생산된다.
미국에서 수입한 이 오크통은 버번 위스키를 담아 숙성하던 통이다. 통 밑바닥에는 통 번호와 주입년을 표기한다. 몸통 가운데에는 훗날 술을 빼낼 수 있도록 구멍을 낸 뒤 헝겊을 덧댄 나무 마개로 막는다.
올바른 증류를 위해서는 마개가 위로 향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맨 앞줄부터 맨 안쪽 끝 오크통을 굴릴 때마다 시작 방향이 다 다르다고 한다. 오크통의 위치에 따라 마개 위치를 왼쪽 아래, 오른쪽 위 등 특정 방향에 놓고 굴려야하는 식이다.
통 무게만 65㎏, 원액까지 담겨 있을 경우 200㎏이 넘는 오크통을 옮긴 후에도 일정 주기에 맞춰 통의 위치와 방향을 바꿔줘야 한다. 미세한 온도와 습도 차이 만으로도 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통을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옮겨야한다.
이 모든 과정은 여러 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철제 프레임 사이의 좁은 틈을 이동하며 운반하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정해진 오크통을 옮겨주는 수고를 감당해야 양질의 술 맛을 낼 수 있다.
200ℓ 분량의 소주 원액을 보관할 수 있는 오크통에 둘러있는 철테 역시 엄격한 관리를 필요로 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한 이 철테는 오크통이 벌어지는 현상을 막아준다. 5년이 넘어 철테가 녹슬기 시작하면 갈아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철테를 제때 바꿔주지 않으면 오크통이 터지면서 아까운 술을 다 버리게 되는데, 이날 기자가 둘러본 오크통 중 많은 오크통의 철테가 새것으로 바뀌어있어 세월의 흔적을 짐작하게 했다.
이처럼 증류주를 만드는 과정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꾸준히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소주는 배합탱크에서 균질화 작업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제품으로 탄생한다.
◇프랑스산 오크통 수입…프리미엄 소주 시장 입지 굳힌다
하이트진로는 일품진로의 아성을 잇기 위해 또 다른 야심작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 코냐크 지역에서 '코냑'을 숙성하는 대형 오크통을 수입, 2년 넘게 숙성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오크통의 용량은 무려 1만ℓ로, 높이 3.6m, 지름은 2.4m에 달한다.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오크통에서 숙성한 술은 단맛이 더 강하다. 한 통에서 나오는 용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통 하나당 몇천 병의 제품을 생산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기간 숙성을 해야 제일 맛있는 술이 나올지 현재 연구 중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한 통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오크통을 대량으로 구비한 업체는 거의 없다. 하이트진로는 일품진로의 점유율이 전체 소주 시장에서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우리 술로도 양질의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갖는다.
더불어 일품진로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가 크다는 것도 지속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만든 배경이다. 2006년 4월 담근 10년 숙성 프리미엄 증류주 '일품진로'는 출시 10년째 되는 2016년 6월 기준 누적 판매량 200만병 판매를 돌파했다.
이후 2014년 102.4%, 2015년 192.1%, 2016년 37%, 2017년 39.2% 등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을 이어오다 2017년부터 원액 부족으로 인해 판매량이 주춤했다. 10년산 제품을 처음부터 대량 생산한 탓이다.
이에 하이트진로는 라인업 정비에 나섰다. 우선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2014년 창립 90주년 기념주로 출시된 '진로 1924'를 지난해 재출시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일품진로 18년산'을 선보이며 프리미엄 소주 시장을 개척했다. 18년 이상 숙성된 최상급 품질의 원액을 사용한 이 제품은 6000병 한정 출시하는 희소성과 맞물려 품귀 현상을 빚었다.
앞으로도 하이트진로는 매년 생산량 조절을 통해 최대 1만병 이상 출시하지 않을 계획이다. 워낙 구하기 어렵다보니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의 창립 100주년인 2024년 출시될 '일품진로 25년산'의 경우 그 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20년 이상 숙성된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은 하이트진로의 오랜 역사와 축적된 기술이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해 프리미엄 소주 시장 확대 및 세계에 소주를 알리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ysh@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