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공장서 즐기는 수제맥주, 220년 수산시장…워싱턴의 색다른 변신
기념관 찍고 떠나던 관광에서 '동네 탐방'으로 확장
수변공원부터 라틴 컬처 상권까지…즐길거리 가득
-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워싱턴D.C=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 국회의사당과 링컨기념관이 워싱턴의 전부는 아니다. 내셔널 몰을 벗어나면 강변을 따라 조깅하고 오래된 시장에서 현지 문화를 즐기는 진짜 일상이 기다린다. 쇠퇴한 해군기지와 100년 전통시장이 가장 트렌디한 동네로 재탄생한 곳. 박물관 밖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워싱턴을 즐기는 판도가 새로워진다.
워싱턴 남동쪽 아나코스티아강변에 자리한 네이비 야드(Navy Yard)는 미국 해군의 역사와 함께해 온 산업 공간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 일대에는 워싱턴 네이비 야드를 비롯해 금속 폐기물 야적장, 콘크리트·아스팔트 공장, 자동차 정비소 등이 자리했다. 이후 산업 기능이 쇠퇴하면서 한동안 활기를 잃었지만, 1995년 해군 작전 관련 사무실이 이전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재생이 시작됐다.
지금의 풍경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아파트와 레스토랑, 카페가 들어섰고 강변에는 공원과 산책로가 조성됐다.
특히 '더 야즈'(The Yards)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강변 공간에 들어서면 과거 산업시설이 있던 자리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다. 넓은 보행로와 녹지가 이어지고, 강을 따라 사람들이 오간다.
바로 옆에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홈구장인 내셔널스 파크가 있다. 야구 시즌에는 경기 전후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동네에도 활기가 더해진다.
네이비 야드에서는 과거 산업시설을 활용한 공간도 만날 수 있다. 1919년 지어진 옛 보일러 제조시설에는 양조장 겸 레스토랑 블루재킷(Bluejacket)이 들어서 있다.
높은 천장 아래 대형 양조 설비가 자리하고, 자체 양조 맥주와 음식이 함께 나온다. 맥주에 수제 감자튀김볼에 해산물 요리를 곁들여 저녁을 먹일 수 있다. 건물 곳곳에는 과거 산업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군함과 군수물자를 만들던 공간이 지금은 산책하고 야구를 보고 식사를 하는 일상적인 동네가 됐다. 과거의 건물과 지형은 일부 남았지만 공간의 쓰임은 크게 달라졌다.
워싱턴에서 의외였던 것은 해산물이었다. 정치와 역사로 먼저 기억되는 도시지만, 포토맥강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강변을 따라 식당과 시장, 공연장과 공원이 이어지고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식문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 더 워프(The Wharf)다.
포토맥강과 워싱턴 채널이 만나는 사우스웨스트 워터프런트에 자리한 수변지구로, 강을 따라 약 1.6㎞ 이어진다.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뿐 아니라 공연장과 공원, 선착장 등이 들어서 있어 식사부터 공연, 산책, 수상 활동까지 한곳에서 즐길 수 있다.
2017년 첫 문을 연 뒤 수변을 따라 새로운 상권과 여가 공간이 형성됐다.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1805년 문을 연 메인 애비뉴 수산시장(Municipal Fish Market)이 더 워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야외 수산시장으로, 지금도 꽃게와 굴, 조개, 새우, 생선 등을 판매한다. 시장에서 해산물을 사거나 바로 먹은 뒤 강변 공원과 광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더 워프에서는 강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물길을 따라 이동할 수도 있다. 선착장에서는 워터택시가 출발해 포토맥강을 따라 조지타운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메릴랜드주 내셔널 하버를 연결한다. 강변에서 식사를 하고 산책한 뒤 배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식으로 여행 동선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현지인 명소는 유니온 마켓(Union Market)이었다.
처음에는 '시장 건물 하나를 둘러보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장 안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걸어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유니온 마켓은 시장 건물 하나에 그치지 않고, 시장을 중심으로 레스토랑과 카페, 로컬 브랜드 숍, 디자인숍 등이 주변 거리까지 이어지는 '마켓 디스트릭트'에 가깝다.
현재 유니온 마켓 디스트릭트는 역사적인 시장 건물을 중심으로 18만 2108㎡(약 5만 5000평)규모로 확장됐다.
시장 건물에는 수십 곳의 식음료·독립 상인이 들어서고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상점, 문화·여가 공간이 이어진다. 인근의 라 코세차(La Cosecha)처럼 라틴아메리카 음식과 문화를 내세운 공간도 함께 자리한다.
역사도 흥미롭다. 유니온 마켓의 뿌리는 1931년 문을 연 유니온 터미널 마켓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장에는 700개 판매 공간이 마련돼 육류와 생선, 유제품, 농산물 등을 판매했다. 이후 시장 기능이 쇠퇴했고, 2012년 화재를 계기로 기존 건물이 재생되면서 지금의 유니온 마켓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장에서 더 눈에 띈 것은 시장의 이용 방식이었다.
점심시간에 찾으니 관광객만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오고,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노트북을 펴놓고 일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공간은 현대적으로 정돈돼 있지만 대형 체인점만 들어선 것도 아니다. 독립 상인과 로컬 브랜드, 식당 등이 함께 자리하면서 오래된 시장을 중심으로 하나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워싱턴은 내셔널 몰에만 머물러서는 도시의 일부만 보게 된다.
네이비 야드에서는 산업과 해군의 흔적이 남은 공간이 지금의 수변 생활권으로 바뀐 모습을 볼 수 있고, 더 워프에서는 오래된 수산시장과 새로운 식음료 공간이 이어진다. 유니온 마켓에서는 오래된 시장 건물을 중심으로 식당과 상점이 모인 새로운 동네가 형성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조지타운(Georgetown)까지 더하면 또 다른 도시의 표정이 나온다.
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가운데 하나인 조지타운에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골목, 상점과 레스토랑이 이어진다. 포토맥강변에서는 산책과 자전거, 카약 등 수변 활동도 즐길 수 있다.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도 찾는 생활권이다.
이런 도시의 모습은 관광객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워싱턴 D.C.를 찾은 방문객은 272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국제관광객은 210만명으로 전체의 8%를 차지했고, 한국은 캐나다·인도·영국·독일·중국·프랑스·멕시코에 이어 8번째 국제 관광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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