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시간이 필요한 도시"…'세계급 미술관 무료' 美 워싱턴의 반전

독립 250주년 맞은 내셔널 몰…영화 세트장 같은 의회도서관
아메리카 유일 다빈치 회화·스미스소니언 전액 무료

웅장한 돔 건축물과 반사 연못이 어우러진 미국의 상징적인 국회의사당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워싱턴D.C=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뉴욕에서 하루 짬 내 다녀오는 곳.

미국 워싱턴 D.C.에 오랫동안 붙어 있던 수식어다. 기차로 3시간이라는 가까운 거리 탓에 당일 투어나 패키지의 '잠깐 스쳐 가는 코스'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한 워싱턴은 단 하루로는 겉핥기조차 불가능한 도시였다. 뉴스 화면으로만 보던 백악관을 직접 걷고, 도서관의 성지라 불리는 의회도서관을 지나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한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하루는 고작 한두 곳을 둘러보기에도 빠듯하다.

입장료 부담 없이 세계 수준의 문화 자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 도시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비용이 아니라 오롯이 머무를 '시간'이다.

. 올해는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미국의 건국과 역사, 정체성을 돌아보는 전시와 프로그램이 도시 전역에서 이어진다.ⓒ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유니온스테이션 밖으로 나오자, 도시의 표정도 달랐다. 맨해튼처럼 높은 건물이 시야를 가득 채우지 않았다. 넓은 도로와 낮은 건물, 녹지가 시원하게 이어진다.

워싱턴은 1910년 제정된 건축물 높이제한법(Building Height Act)에 따라 건물 높이가 제한된다. 건물이 위로 솟기보다 옆으로 정갈하게 펼쳐지는 도시다. 넓은 도로와 잔디밭, 기념관이 이어지는 풍경은 뉴욕과 확연히 달랐다. 도시의 속도도 달랐다.

더 피플스 하우스: 어 화이트 하우스 익스피리언스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백악관에서 의회도서관까지…뉴스 속 공간을 직접 걷다

백악관을 직접 들어가는 대신 찾은 곳은 백악관에서 한 블록 떨어진 '더 피플스 하우스: 어 화이트 하우스 익스피리언스'(The People's House: A White House Experience)다.

백악관 역사협회가 운영하는 체험형 박물관으로, 백악관의 역사와 대통령의 일상을 다양한 전시와 영상으로 보여준다.

실제 크기로 재현한 '대통령 집무실'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역대 대통령과 영부인들에 대한 안내를 하는 전시관ⓒ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전시장에는 백악관의 축소 모형부터 실제 크기로 재현한 '대통령 집무실'이 마련돼 있다. 집무실 책상에 직접 앉아볼 수도 있고, 스테이트 플로어의 이스트룸·그린룸·블루룸·레드룸·국빈식당 등을 360도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로즈가든을 재현한 공간과 백악관에서 일했던 직원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전시도 눈길을 끈다. 뉴스 화면으로만 접하던 백악관을 실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곳은 일반 입장이 무료이며 사전 예약 패스로 운영된다.

백악관에서 국회의사당 쪽으로 이동하면 워싱턴 관광의 중심인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 이어진다.

국회의사당은 1800년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 D.C.로 미국의 수도가 옮겨진 이래 미국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국회의사당에서 워싱턴 기념탑을 지나 링컨 기념관까지 이어지는 넓은 녹지축 양옆으로 각종 기념관과 박물관이 자리한다. 올해는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미국의 건국과 역사, 정체성을 돌아보는 전시와 프로그램이 도시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사당을 지나 이어진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으로 향했다.

국회의사당을 지나 이어진 '의회도서관'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오래된 영화 속 공간을 옮겨놓은 듯한 미국 국회의사당 도서관ⓒ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위쪽 전망 공간에서 내려다본 토머스 제퍼슨 빌딩은 높은 천장과 아치, 기둥과 금빛 장식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까지 겹치자, 실제 도서관이라기보다 오래된 영화 속 공간을 옮겨놓은 듯했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정돈돼 있어 건축물 자체를 바라보는 시간이 먼저 생긴다. 의회도서관 토머스 제퍼슨 빌딩은 무료 시간 지정 입장권을 온라인에서 예약해야 하며, 당일 입장권은 매일 오전 9시(미 동부시간)에 풀린다.

신고전주의 대리석 건물인 웨스트빌딩ⓒ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미국 유일 다빈치부터 '피콕룸'까지…세계급 미술관·박물관의 향연

문제는 워싱턴에 역사와 정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과 국립 아시아미술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 등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 단지에 들어서는 순간 여행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길어진다.

국립미술관은 신고전주의 대리석 건물인 웨스트빌딩과 I.M. 페이가 설계한 현대적 이스트빌딩 두 동으로 구성돼 있다. 1941년 문을 연 웨스트빌딩에는 고흐, 베르메르, 모네, 렘브란트, 엘 그레코 등 거장들의 진품이 이어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네브라 데 벤치'(Ginevra de' Benci)ⓒ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가장 많은 박물관들이 몰려 있는 고흐 자화상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워싱턴 국립미술관 이스트 건물에선 미국 국기를 테마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네브라 데 벤치'(Ginevra de' Benci) 앞에서 발걸음이 오래 멈췄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소장된 다빈치 회화로, 작은 초상화가 뿜어내는 섬세함이 인상적이다.

자연광과 분수, 식물이 어우러진 가든 코트에서 쉬어간 뒤 지하 통로를 통해 이스트빌딩으로 넘어가면 피카소, 마티스, 폴록, 워홀 등 현대미술의 세계가 펼쳐진다. 주요 공간과 특별전 입장료는 전액 무료다.

영국 선박업자의 저택 식당을 통째로 옮겨온 피콕룸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힌두교 석조 조각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모습ⓒ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바로 인근의 스미스소니언 산하 국립 아시아미술관도 놓칠 수 없다.

새클러 갤러리에서는 중국 고대 청동기와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대형 불교·힌두교 석조 조각을 볼 수 있다.

프리어 갤러리에서는 '피콕룸'(Peacock Room)이 단연 눈길을 끈다. 19세기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영국 선박업자의 저택 식당을 파랑과 초록, 금빛 공작 문양으로 채운 방을 런던에서 통째로 옮겨왔다. 특정 작품 하나를 보는 차원을 넘어 방 전체라는 예술 공간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매혹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 역시 입장료는 무료다.

워싱턴 에서 즐길 수 있는 무료 명소만 100곳이 넘는다.ⓒ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100곳 넘는 무료 명소…돈보다 필요한 건 시간

워싱턴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는 동안 지갑을 열 일은 거의 없다. 스미스소니언 산하 17개 박물관·갤러리를 비롯해 국립미술관, 의회도서관, 백악관 투어 등 워싱턴 관광청이 소개하는 무료 명소만 100곳이 넘는다.

일부 인기 시설은 무료라도 시간 지정 예약이 필요하지만,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다른 관광 도시와는 여행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비용 부담 없이 역사, 예술, 과학을 접할 수 있는 공공 문화시설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명 장소를 빠르게 찍고 지나가는 여행보다 한 공간에 진득하게 머무는 시간이 중요해진다.

실제로 국립미술관에서는 교복을 입고 인솔 교사를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한국인 중학생 단체도 만날 수 있어 교육여행으로서의 매력도 명확하다.

워싱턴 빅버스를 이용하면 워싱턴 주요 명소는 다 둘러볼 수 있다. ⓒ 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넓은 내셔널 몰 일대와 도심 명소들을 효율적으로 둘러보고 싶다면 2층 투어버스인 '빅버스'(Big Bus)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요 박물관과 국회의사당, 링컨 기념관 등 핵심 거점마다 자유롭게 '승하차'할 수 있어, 넓은 거리를 걷다 지칠 때쯤 바람을 맞으며 도심 풍경을 조망하고 다음 목표지로 이동하기에 제격이다.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seulb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