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꺾인 여행업계]① "국내선도 342% 폭등"…관광산업 덮친 '유류할증료 쇼크'
5월 유류할증료 '33단계' 유력…2016년 체계 도입 이후 최대
유럽 예약 전주 대비 50% 급감…'제2의 코로나' 우려까지
-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서울=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설마 이게 맞나 싶어서 세 번은 다시 봤어요.
5월 미국여행을 계획하던 직장인 이 모(34) 씨는 최근 항공권 예매 사이트에서 손을 멈췄다. 인천발 미국행 항공권 운임 70만 원에 유류할증료만 왕복 60만 원. 이 씨는 결국 예약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5월엔 더 오른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상반기 여행은 그냥 포기했다"고 했다.
7일 항공·여행업계에 따르면 오는 5월 국제선 유류할증료가 현행 체계상 최고 단계인 '33단계'에 도달할 것이 유력시되면서 해외여행 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4월 유류할증료가 전달보다 3배 가까이 뛰었지만 5월엔 그 위에 또 폭탄이 예고된 상황이다.
유류할증료는 국제 항공유 가격에 연동해 매달 조정되는데 최근 중동 전쟁 장기화로 항공유 가격이 상한선을 훌쩍 넘어서면서 5월 최고 단계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역대 최고 기록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22단계였다. 33단계는 유류할증료 체계가 도입된 2016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 출발 기준 여행객의 부담은 이미 한층 더 커졌다. 4월 유류할증료가 전달보다 3배 가까이 뛰면서 항공사들이 일제히 인상을 공시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미주·유럽 장거리 노선은 편도 7만 8600원에서 25만 1900원으로, 대한항공도 9만 9000원에서 30만 3000원으로 올랐다. 저비용항공사(LCC)도 예외가 없어 진에어의 푸껫 노선은 21달러에서 76달러로 3.6배 급등했다.
인천 출발 미주 노선 왕복 유류할증료는 4월 기준 최대 60만 6000원에 달한다. 4인 가족이 인천발 미국여행을 간다면 유류할증료만 242만 원이다. 여기에 5월 33단계가 현실화되면 왕복 기준 약 110만 원 수준으로 뛸 것으로 예상된다. 4인 가족 기준으로는 440만 원이다.
항공업계에선 "33단계를 터치하면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유류할증료 부과 기준의 천장인 33단계를 넘어서면 유가가 더 올라도 소비자에게 추가로 전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항공사들은 운항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놓이고, 노선 셧다운 우려까지 제기된다.
타격은 전방위적이다. 특히 장거리와 단거리 사이의 수요 양극화가 갈수록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여행사 A 관계자는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곳은 일본·중국을 비롯한 국제선 단거리 노선"이라며 "장거리 여행을 포기한 수요가 단거리로 몰리면서 일본(25%)·중국(37%)·필리핀(57%)·베트남(73%) 등 단거리 예약은 전년 대비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 대형 여행사 B 관계자는 "유류할증료가 본격 적용된 4월 1일 이후 인천 출발 유럽 여행 예약이 전주 대비 50% 급감했다"며 "한 달 전만 해도 일주일에 2300명이 유럽행 패키지를 예약했지만 지금은 1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고 말했다. 여행사 C도 인천 출발 직항 유럽 상품 예약이 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동남아는 수요가 늘었음에도 항공유 공급 부족과 결항·감편으로 실제 상품 구성에 차질이 빚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해외여행 대신 제주도·부산 등 국내여행으로 눈을 돌리려던 여행객에도 예외가 없다. 대한항공 기준 국내선 유류할증료도 5월부터 편도 3만 4100원으로 4월(7700원) 대비 342% 폭등한다.
항공업계에서는 항공권 가격 강세가 여름 성수기는 물론 가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항공유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실제 항공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최소 2~3개월의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항공사 11곳 중 5곳이 4월 이후 운항 축소를 확정하는 등 공급 축소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 유럽 항공사 관계자도 "고유가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여행 수요 위축이 불가피한 만큼 전 세계 항공업계가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한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 이번 위기를 코로나19 당시와 다른 결의 충격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금은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가는 상황이다. 여행사 A 관계자는 "취소 증가보다도 신규 예약이 전반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점이 더 큰 변수"라며 "현재와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2분기 해외여행 수요는 전년 대비 역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코로나 이후 겨우 숨통을 튼 중소여행사들의 줄도산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어렵게 팬데믹을 거쳐 겨우 정상화되고 있는 여행업계에 다시 긴 불황이 온다면 중소여행사들은 대부분 폐업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벌써 '제2의 코로나가 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며 "5월 유류할증료 공식 발표일인 16일까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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