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시켜주고 병원 같이 가요"…'민간 외교' 자처한 공유숙박 주인들

[한국만 멈춘 공유숙박③-끝] '한국의 하루'를 전하는 4人
"호텔에서 느낄 수 없는 K-문화를 알리고 있어요"

서울에서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며 공유숙박을 운영하는 사람들. 왼쪽부터 김동현 씨, 서혜원 씨, 임윤정 씨, 김미애 씨ⓒ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서울=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 홍대와 명동의 아기자기한 골목에는 깔끔하고도 힙한 '숙소'들이 있다. 매일 외국인 손님들이 이 숙소를 찾고 있는데, 이들을 맞이하는 건 호텔 직원이 아닌 '공유숙박 운영자'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숙소를 빌려주는 사업자가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일상'을 보여주는 안내자이자 민간 외교관 역할까지 담당한다. 그러나 이들의 발밑에는 여전히 10년 전 제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최근 <뉴스1>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한 카페에서 서울 각 지역에서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외도민업)을 운영 중인 네 명의 공유숙박 운영자를 만나, 그들의 하루와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제2의 삶 시작…"한국 알리는 일, 돈보다 가치 있어"

건축 설계사이자 사진가로 일하는 김동현(36·서울 마포구)씨는 "처음엔 공간을 잘 꾸미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막상 해보니 숙소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완성되는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체크인 안내뿐 아니라 한강 산책길, 동네 치킨 배달 같은 일상까지 손님과 함께 나눈다. 김 씨는 "공유숙박은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한국을 알리는 체험"이라며 "호텔에선 느낄 수 없는 로컬의 디테일을 전할 수 있다"고 했다.

서혜원(31·서울 중구·종로) 씨는 출산을 앞두고도 일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공유숙박을 선택했다.

서 씨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K팝 콘서트를 보러 오는 외국인 팬들이 많아 일정을 도와주다 보면 친구처럼 지낸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유치원 교사 경력을 살려 아이 동반 투숙객에게 지자체 축제 정보를 안내한다"며 "호텔보다 따뜻한 위로를 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미애(54·서울 마포구 아현동) 씨는 육아로 경력이 끊긴 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어비앤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호스팅을 시작했다.

김 씨는 "VMD 디자이너로 일하다 그만두고 공백이 생겼는데, 이 일을 하며 다시 나를 세웠다"고 했다. 쓰레기 요일제, 분리수거, 다국어 안내문까지 직접 제작했다. 그는 "50팀 넘게 다녀갔는데 대부분 규칙을 지킨다"며 "그게 가장 보람 있다”고 했다.

임윤정(49·서울 중구) 씨은 퇴직 후 남편과 함께 외도민업을 택했다. 임 씨는 "게스트가 모르는 나라에서 나를 믿고 온다는 감각이 생긴다"며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을 맞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유 숙박 운영자인 김동현 씨(왼쪽), 서혜원 씨 ⓒ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치킨 배달시켜주고 응급실 데려가도 즐거워"

김동현 씨는 '드라마 속 한국'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하던 손님을 아직도 기억한다.

김 씨는 "싱가포르 손님이 '한국 드라마에서 본 치킨 배달'을 꼭 해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주문해 인증사진까지 찍었다"며 "SNS에 '한국 오빠랑 치킨 먹었다'고 올렸더라"고 했다

이어 그는 "세븐틴 팬이 묵었을 땐 녹음 장비를 빌려 커버송 녹음을 도왔다"며 "그런 하루가 그 사람의 한국 체험으로 남는 게 제일 보람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혜원 씨는 슬로바키아 가족의 사연을 떠올렸다. 서 씨는 "남편은 러시아 출신 인문학 연구원, 아내는 독일인으로 두 아이와 함께 장기 체류 중이었는데 머무는 중 남편분의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던 손님은 "아버지를 잠시 모셔도 되겠냐"고 물었고 며칠 뒤 숙소 한쪽엔 영정사진과 함께 위스키·빵이 놓인 러시아식 추모상이 차려졌다. 서 씨는 "'이래서 내가 이 일을 하는구나' 싶었다"며 "누군가에겐 이 공간이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고 뿌듯해 했다.

임윤정 씨는 비 오는 명절 아침, 아픈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간 일을 잊지 못한다. 그는 "다섯 살 아이가 아프다며 택시가 안 잡힌다고 하길래 직접 픽업해 병원으로 데려가고 약까지 챙겨드렸다"고 회상했다.

임 씨가 며칠 뒤 받은 메시지엔 '한국의 따뜻함에 감동했다'는 글이 있었다. 임 씨는 "그날 이후로 '이게 공유숙박의 본질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김미애 씨는 '바로 응답·바로 액션'을 원칙으로 삼는다. 김 씨는 "시설 문제나 냄새 민원이 생기면 바로 달려간다"며 "비대면을 선호하는 손님도 있지만, 필요할 때 즉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그 덕분에 '다시 오겠다'는 메시지를 자주 받는다"며 "결국 신뢰가 쌓여야 손님이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공유 숙박 운영자 김미애 씨(왼쪽), 임윤정 씨 ⓒ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주민동의가 제일 큰 벽"… 20년 전에 머문 제도

김동현 씨는 "주민동의가 제일 큰 벽"이라며 "인테리어 공사도 동의 안 해주는데 '외국인 숙박'에 도장을 찍을 리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동의서를 들고 다니면 오히려 이웃의 경계심이 커진다"며 "'외국인 드나드는 집'으로 낙인찍히면 설명이 안 통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마포구에서 아파트로 영업신고증 받은 사례가 1년 넘게 없다는 말도 들었다"며 "제도는 20년 전 홈스테이 수준에서 멈춰 있다"고 답답해 했다.

서혜원 씨는 "행정 정보 접근이 너무 어렵다"며 "중구청은 그나마 자료가 있었지만 종로구청은 검색조차 안 됐다"고 말했다.

그는 "유일하게 뜨는 게 2003년 홈스테이 공고였다"며 "관광은 트렌드가 빠른데 행정은 월드컵 시즌에 멈춰 있다"고 지적했다. 서 씨는 "내국인 제한 때문에 '한국계 외국인' 손님을 받을 때마다 여권 사진이나 IP 주소를 확인해야 한다"며 "차별의 책임을 운영자에게 떠넘기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김미애 씨는 "주민동의 때문에 계약이 무산된 적도 있다"며 "옆집에서 얼굴도 안 보여주고 거절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했다. 김 씨는 "실거주 의무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집주인이 함께 있어야 한국 문화를 체험한다는 건 형식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마다 기준이 달라 하루는 '위·아래·옆집만 동의', 다른 날은 '50% 이상'이라 한다"며 "점검을 나와도 중요한 걸 놓치기 일쑤"라고 했다.

임윤정 씨는 "규정을 지키려는 사람만 손해 보는 구조"라며 "여성 운영자에게 실거주 강제는 오히려 안전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 안전을 이유로 만든 제도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완화보다 제대로 된 관리가 필요해"

김동현 씨는 "핵심은 막는 게 아니라 관리"라며 "문체부가 일관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지자체는 확인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서혜원 씨는 "가장 시급한 건 행정 포털의 표준화"라며 "구청마다 서식과 절차가 달라 아무도 신고를 못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 축제나 K팝 공연 정보를 운영자에게 공유하면 손님 안내에 바로 쓸 수 있다"며 "현장은 이미 진화 중인데 제도만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애 씨는 "주민동의 대신 사후관리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지자체별 기준 통일은 필수고, 교육 프로그램 같은 현장형 지원이 이어져야 신규 운영자도 덜 헤맨다"고 했다.

임윤정 씨는 "지자체가 인증패를 만들어 '이곳은 인증된 공유숙박'이라는 신뢰 표시를 눈에 띄게 해야 한다"며 "전용번호를 함께 표기해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거주는 근접 대응으로 대체하고 지역 프로그램과 연계해 운영하면 된다"며 "우리가 원하는 건 규제 완화가 아니라 현실에 맞는 관리 체계"라고 강조했다.

seulb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