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제주에 안겨 '일'을 즐겼다…제주 빈집의 대변신
스타트업 다자요의 '하천바람집 안거리'서 제주를 만끽하다
- 강은성 기자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12월 제주도 동남쪽 '표선'은 바람의 매서움이 덜했다. 내륙은 영하권 추위가 찾아오며 두꺼운 패딩을 입어야 했지만, 제주 표선에서 부는 바람엔 아직 나무 냄새, 귤 냄새가 섞여 있었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서귀포로부터 1시간 정도, 공항에서도 1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표선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커다란 전세버스를 타고 숙제하듯 명소를 쫓아다니는 관광객이 아닌, 쉼과 여유를 찾기엔 제격인 표선에는 스타트업 '다자요'가 운영하는 고급 숙박(파인스테이) '하천바람집 안거리'가 있다.
다자요는 지방소멸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빈집'을 고쳐 고급 숙박시설로 개조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관광을 활성화하는 스타트업이다. 하천바람집 안거리 역시 마을의 골칫거리 빈집이었지만 다자요가 심혈을 기울여 개조했다.
다자요는 빈집을 집주인으로부터 10년간 무상으로 빌려 리모델링한 뒤 숙박업을 하는 제주 지역 스타트업이다. 계약 종료 후에는 원래 주인에게 집을 돌려준다. 지금까지 제주도 내 13채의 집을 리모델링해 2채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다. 현재 운영 중인 집은 11채다.
하천바람집 안거리는 영화 '극한직업', '7번방의 기적'과 드라마 '무빙', '킹덤' 등으로 글로벌 인기까지 얻고 있는 류승룡 배우가 직접 개조에 참여한 집이다. 그래서 하천바람집의 또 다른 이름은 '배우의 집'이다.
류승룡 배우는 이곳을 개조하면서 빈집이 지역소멸의 상징이 아닌 부활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했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는 "지역 재생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본인의 이름을 얼마든지 홍보에 '써먹으시라' 일부러 당부까지 했다"고 전했다.
류 배우의 손길은 직접 읽었던 대본과 책, 구매한 미술품·다기 등 곳곳에 남아있었다.
류 배우의 손때가 묻은 대본집과 책이 진열된 작은 서재는 제주까지 와서도 손 놓을 수 없는 '업무'를 수행하기 안성맞춤이었다. 하천바람집 안거리는 어느 부분이든 널찍한 구조를 갖췄는데, 유독 서재만큼은 작고 아늑했다. 오히려 업무에 집중하기 좋았다.
서재 오른편으로는 큰 창이 나 있어 귤 나무가 바로 옆에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볼 수 있으니 답답한 느낌은 나지 않았다.
하천바람집 안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바로 다도실이다.
하천바람집 원래 지붕의 형태를 고스란히 살려 서까래와 들보를 그대로 노출한 디자인은 한옥의 정취를 담뿍 느끼게 했다.
넓은 공간에는 야트막한 나무 테이블 위로 아기자기한 다기들이 정갈하게 놓여있고, 벽면에도 각종 다기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다도를 전혀 몰라도 차 한잔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다도실에 있는 더블룸에서 첫날 밤을 보냈을 때는 밤새 비가 내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는데, 빗소리가 음악과도 같은 낭만을 주었다.
제주의 아름다운 돌담으로 둘러싸인 야외 욕실(자쿠지)은 힐링의 정수를 담았다. 12월에 어울리는 재즈풍의 캐럴을 틀어놓고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제주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쏟아져내린다.
찬 바람은 머리를 식히고 뜨끈한 물은 몸을 덥힐 수 있어 힐링에 최적화 된 또 다른 아이템이다.
안가에는 주방과 침실, LG전자의 고급 가전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맛집'을 찾아헤매지 않아도 근처 10분 거리에 열리는 표선오일장에서 산 제주 토산품으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또 다도실과 달리 천장이 있는 현대식 공간으로 꾸며져 여느 가정집처럼 익숙한 포근함이 더욱 강조된 공간이다.
표선오일장에서 귤을 한봉지 샀다. 귤 제철인 12월에 제주를 왔으니 귤을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제주 지역화폐인 '탐나는전'으로 구매했다. 탐나는전은 오일장 같은 전통시장 뿐만 아니라 국숫집, 고깃집 등 제주 대부분의 가게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1만 원어치 주세요" 했더니 귤 사장님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킬로에 3000원 인데, 그냥 킬로(1㎏)만 사십써게(사세요)" 했다.
너무 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너무 많았다.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준 3000원 어치는 1㎏ 정량을 훨씬 넘었고 가면서 먹으라고 양손에 한가득 귤을 더 쥐여줬다. "원래 서울에 오는 귤은 맛이 없는 거야?" 일행과 이런 대화를 나눴을 정도로 제주의 제철 귤은 천국의 맛이었다.
양이 많다 싶었는데,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귤을 다 먹고 더 사러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럴 기회가 없었다. 표선에서 이름난 국수맛집 사장님도, 짬뽕 맛집 중국집 사장님도, 어딜 가든 귤 인심이 넘쳐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시장에 저녁거리를 사러 가면 '맛 조수다게'하면서 귤을 입에 그냥 넣어줬다.
표선 하천바람집에서 불과 2㎞ 거리엔 표선해수욕장이 있다. 겨울이라 해수욕을 하는 이는 없었지만 표선의 바닷물은 투명한 옥색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표선 바닷가도 아름답지만, 기왕 제주에 온 김에 업무를 끝내놓고 짬을 내 차로 30분 거리인 성산일출봉을 찾았다.
성산일출봉 능선까지 가는 코스는 무료로 갈 수 있지만, 분화구 정상에 올라가는 코스는 관람료를 내야 한다. 이 역시 지역화폐인 '탐나는전'으로 결제가 가능했다.
탐나는전은 제주지역 내에서만 사용가능한 지역화폐다. 일반 현금과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는데 매력적인 점은 각종 할인과 적립이 쏠쏠했다.
탐나는전으로 제주 관내에서 소비를 하면 연말정산시 30%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고 전통시장에서 이용하면 소득공제율이 40%까지 높아진다. 사용금액에 따라 포인트 적립도 해주는데 적립률이 5~7%에 달해 사용할수록 이용자 혜택이 더 커지는 구조다.
제주도청 측은 "장바구니 체감물가 저감과 소상공인 매출 신장에 기여해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탐나는전을 많이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j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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