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성과급은 어디서 오는가[박선영의 경제 인사이트]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은행은 지난 8월 반도체 성과급이 이천·화성·청주 등 수혜지역의 소비를 얼마나 늘렸는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BOK 이슈노트 제2026-20호, 반도체 수혜지역의 소비는 어떻게 될까: 지역 미시데이터로 살펴본 파급효과). 분석 결과 성과급 지급 이후 이들 지역의 월별 소비는 다른 지역보다 최대 4% 높게 나타났다.
다만 받은 성과급이 모두 소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세후 성과급 대비 소비 증가액은 21%로 추정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세후 성과급 100만원이 지급됐을 때 소비는 약 21만원 더 늘어났다는 뜻이다. 반도체 기업이 번 돈이 지역 상권으로 흘러드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성과급의 크기만으로 내수 회복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성과급을 받은 가계가 지갑을 얼마나 여는지에 앞서 살펴볼 문제가 있다. 그 성과급을 가능하게 한 미국의 인공지능(AI) 투자가 무엇에 기대어 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매출은 해외 고객사의 지출이다. 그런데 고객사가 돈을 많이 쓴다는 사실과 그 지출에서 충분한 이익을 거둔다는 사실은 별개다. 최근 해외의 논쟁은 바로 이 간극에 집중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7월 세계경제 전망에서 중동 전쟁의 충격과 AI 투자의 성장 효과가 교차하는 세계경제를 그렸다. 기술 투자는 강하지만 물가 부담은 남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9월 16일 생산성과 설비투자의 견조함을 평가하면서도, 높은 물가를 이유로 정책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했다. 미래 수익을 기다리는 AI 기업에는 자금 조달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환경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의 7월 연구보고서 'AI 투자 경쟁'은 투자 확대의 동기를 파고든다. 소수 기업이 시장을 차지하는 구조에서는 수익성이 불확실해도 투자를 멈추기 어렵다. 경쟁사가 먼저 연산 능력과 고객을 확보하면 뒤처진 기업에는 만회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모두가 같은 판단을 하면 산업 전체에는 과잉 설비가 남는다.
연구진이 기업 재무 자료와 공개 거래를 반영한 모형에서 추정한 투자 규모는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수준의 약 1.5배였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설비를 늘렸는데 실제로 벌어들이는 돈이 예상보다 적다면, 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설비를 처분해야 할 수 있다. 이 모형에서는 호황기에 투자가 많이 늘어났을수록, 기대했던 수익이 나오지 않을 때 투자를 줄이고 설비를 매각하는 규모도 커졌다.
자금의 흐름도 단순하지 않다. BIS가 지적한 '순환 금융'에서는 반도체·클라우드 기업이 AI 기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투자받은 기업은 다시 투자자의 반도체와 연산 서비스를 구매하기로 약정한다. 공급자가 댄 자금이 고객의 구매력을 만들어 공급자의 매출로 돌아오는 셈이다. 이런 거래가 기술 개발을 앞당길 수는 있다.
다만 이렇게 늘어난 주문에는 공급자가 투자해 준 돈으로 그 공급자의 제품을 사는 거래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주문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투자 관계 밖의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도 돈을 내고 AI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수요가 충분히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투자가 다음 투자를 불러오는 동안에는 반도체 수요가 강하다. 이 순환을 오래 유지하려면 언젠가 투자 관계 밖에서 돈이 들어와야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7월 말 AI 수익성을 분석하면서 의외의 지출 항목에 주목했다. 과거 기업들은 컴퓨터 하드웨어에 1달러를 투자할 때 업무 절차 개편과 인력·데이터 정비 같은 무형자산에 5~10달러를 썼다. 기계를 들여놓은 뒤 조직을 바꾸는 데 더 큰 비용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는 기계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이런 준비가 충분히 뒤따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기업들이 업무 절차와 조직 운영을 바꾸는 데 쓰는 돈, 즉 '조직자본 투자'가 경제 전체 규모인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에 비해 그것을 활용할 기업의 변화가 더디다면, 반도체 주문과 AI의 최종 매출 사이에는 시차가 길어질 수 있다.
이 시차를 곧바로 기술의 실패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스탠퍼드대의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7월 말 맥킨지 인터뷰에서 '생산성 J 곡선'을 설명했다. 업무 재설계와 재교육에 비용이 먼저 들어가고, 그 준비가 쌓인 뒤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일부 기업과 생산성 통계에서 초기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도입 효과를 무엇으로 측정하느냐에 따라 AI가 향하는 방향은 달라진다고 봤다.
인터뷰에 등장한 한 최고재무책임자는 AI 투자 수익률을 더 정확히 측정하겠다며 부서별 감원 규모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브린욜프슨은 그것이 지나치게 좁은 평가라고 지적했다. 기존 인원을 얼마나 줄였는지만 보면, 같은 인력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더 많은 고객을 상대하는 효과는 빠진다. 비용 절감은 당장 숫자로 드러나지만,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기업이 쉬운 지표만 좇으면 AI의 용도도 그 방향으로 굳어진다.
이 문제를 거시경제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 BIS 사무총장이 9월 10일 연설에서 소개한 '수요 병목' 시나리오다.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소득으로 돌아갈 돈이 AI 재투자에 집중되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소비도 줄어든다. 설비와 생산 능력은 늘어나는데 이를 뒷받침할 구매력이 따라가지 못해 성장까지 둔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성능이 좋아지는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물론 여러 가능성 중 하나다. 생산성 향상이 가격 하락과 새로운 일자리로 이어진다면 소비 기반은 오히려 넓어질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반도체 성과급은 AI 투자로 생긴 이익이 노동소득과 소비로 연결되는 한 경로다. 한국에는 미국의 AI 투자 지출이 수출대금으로 들어와 임금과 성과급으로 나뉜다. 그러나 해외에서 AI 도입의 성과를 감원과 비용 절감만으로 계산한다면, 한국이 기대하는 장기 수요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반도체 공급망의 앞단에서 늘어난 소득과 뒷단에서 사라지는 구매력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반도체 호황의 지속성을 판단할 때는 빅테크의 투자 계획과 수주 잔액에 더해, AI를 사용하는 기업이 새로 벌어들인 매출과 만들어낸 일자리를 살펴야 한다. 한쪽에서는 소비 부진을 걱정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감원을 생산성 혁명의 증거로 반기는 시각에는 모순이 있다. 한국 반도체의 주문서에는 미국 기술기업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기업의 계산서를 끝내 지탱할 사람은 소득을 얻고 지갑을 여는 세계의 소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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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거시·금융 경제학자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주요 경제·금융 정책기관의 위원회와 자문기구에서 제도 설계와 정책 평가에 참여해 왔다. '경제 인사이트'에서는 학술 연구와 정책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숫자 이면에 놓인 경제의 논리를 독자에게 차분하고 명료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특히 환율·금리·자산시장부터 금융규제, 디지털 금융과 통화 질서에 이르기까지 주요 경제 이슈를 데이터와 이론에 근거해 분석하고, 정책 결정이 시장과 가계에 어떠한 경로로 전달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