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zHBM, SK하닉 HBF '차세대 메모리' 공개…'초격차' 기술력

속도↑ 가격↓ 전력 소비 최소화…'K 반도체 신화' 계속
AI 추론 시대 겨냥 구조 혁신 제시…신기술 주도권 확보 나서

삼성전자가 개발한 차세대 반도체 'zHBM' 목업 모형.(삼성전자 제공)/뉴스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나란히 차세대 메모리를 공개하며 초격차 기술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고성능 컴퓨팅(HPC) 중심에서 추론 분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메모리 패러다임 선점 경쟁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기존 고대역폭메모리(HBM) 적층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메모리 구조 자체를 혁신하는 기술을 제시하면서 차세대 AI 인프라 시장 주도권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메모리·스토리지 행사 '메모리와 저장장치의 미래'(FMS 2026)에서 각각 새로운 메모리 아키텍처와 차세대 낸드 기술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zHBM'으로 메모리 구조 혁신 제시

삼성전자는 차세대 3차원(3D) 메모리 아키텍처 'zHBM'과 차세대 낸드 설루션 'zNAND-O'를 앞세웠다. zHBM은 기존처럼 AI 가속기 옆에 HBM을 배치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AI 가속기 상단에 메모리를 직접 수직 적층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가속기와 메모리 간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여 데이터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병목현상을 최소화하고 성능과 전력 효율을 동시에 높인 것이 핵심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zHBM 기반 시스템은 기존 HBM5 기반 시스템 대비 최대 8배 높은 시스템 성능과 최대 3배 향상된 전력 효율을 구현할 수 있다. 열 저항도 절반 수준으로 낮춰 AI 데이터센터의 주요 과제로 꼽히는 발열 문제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메모리와 AI 가속기 사이 공간에 고객 맞춤형 설계 회로(IP)를 탑재할 수 있다. 용량 확대와 성능 최적화 등 고객 요구에 맞춘 설계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메모리와 AI 반도체를 함께 최적화하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구상이다.

함께 공개한 'zNAND-O'는 수직 연결 기술(TSV)에 기반을 둔 3D 패키징 기술을 적용한 초저지연 낸드 설루션이다. 기존 낸드플래시가 칩 외부의 계단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았다면, 칩 내부에 고속 엘리베이터인 TSV를 설치한 셈이다. 데이터가 오가는 길을 최단 거리로 뚫어 지연 없는 초고속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zNAND-O를 통해 온디바이스 AI를 비롯한 다양한 AI 추론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데이터 로딩 속도와 응답성을 높여 AI PC와 스마트폰, 로봇 등 인터넷 연결 없이 AI를 수행하는 기기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400단 이상을 구현한 10세대 'V10 BV-NAND'도 처음 공개했다. 웨이퍼 본딩과 3스택 기술을 적용해 집적도를 이전 세대보다 약 58% 높였고 읽기·쓰기 성능과 입출력 속도도 개선했다.

HBM4E와 차세대 HBM5, LPDDR5X-PIM, 기업용 SSD 등 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제품군도 함께 선보이며 D램과 낸드, 스토리지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과시했다.

SK하이닉스가 차세대 스토리지 기술인 HBF의 첫 표준 규격을 공개했다.(SK하이닉스 제공)/뉴스1
SK하이닉스, HBM 다음은 'HBF'…새로운 메모리 제시

SK하이닉스는 HBM 이후 AI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메모리 계층 '고대역폭 플래시'(HBF)를 전면에 내세웠다. HBF는 HBM과 낸드 기반 스토리지 사이를 연결하는 차세대 메모리다. 낸드의 대용량 저장 능력과 기존 플래시보다 높은 데이터 전송 성능을 함께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업계에 따르면 AI 추론 서비스 확산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 규모가 급증하면서 HBM만으로는 용량과 비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HBF는 자주 사용하는 데이터는 HBM에서, 대용량 데이터는 HBF에서 처리하는 계층형 메모리 구조 구현의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낸드플래시 메모리 활용도를 높여 전체 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에는 S램과 HBM, 낸드로 구조가 이어졌다면 새로운 AI 구조는 S램, HBM, HBF, 대용량 낸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시스템 전체의 성능과 비용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행사에서 샌디스크와 공동 개발한 HBF의 첫 표준 규격도 공개했다. 최대 512기가바이트(GB) 용량과 초당 최대 3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지원한다. 반도체 표준 연결 규격인 'UCIe 기반 개방형 인터페이스'를 적용해 GPU와 CPU 등 다양한 AI 프로세서와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구글과 텐스토렌트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을 중심으로 생태계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또 차세대 375단 4D 낸드를 처음 공개했다. 이전 세대보다 전력 대비 성능을 2.5배 높인 것이 특징이다. 2027년 초 이를 적용한 고성능 기업용 SSD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차세대 낸드플래시 'zNAND-O' 목업 모형.(삼성전자 제공)/뉴스1
HBM 경쟁 넘어 'AI 메모리 아키텍처' 시대로

업계는 이번 FMS 2026을 계기로 AI 메모리 경쟁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그동안에는 HBM의 적층 수와 대역폭 경쟁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메모리와 AI 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D램과 낸드, 스토리지를 하나의 계층 구조로 최적화하는 'AI 메모리 아키텍처'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AI 메모리 아키텍처는 반도체나 컴퓨터 시스템 안에서 칩과 메모리, 소프트웨어가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연산하는 전체적인 '작동 규칙과 설계도'다. 부품이 어떻게 구축된 것인지를 넘어 전체 시스템이 빠르고 전력을 적게 쓰도록 돕는 종합적인 구조를 의미한다.

업계는 생성형 AI를 넘어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AI 인프라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메모리의 성능뿐 아니라 전력 효율과 발열, 용량 확장성 등을 확보하는 기술이 차세대 반도체 시장의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3D 적층 기반의 zHBM을, SK하이닉스는 계층형 메모리인 HBF를 통해 서로 다른 방식의 차세대 메모리 비전을 제시했다"며 "향후 경쟁은 단순히 더 빠른 메모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 메모리 구조를 구현하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