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격제' 손실 보상 시작부터 난관…손실 규모 '10배' 차이
지난달 '최고액 정산위원회' 출범…10월 보상 규모 윤곽
정유사 "손실 7~8조" vs 정부 '원가 보상' 5000억~6000억
- 황진중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정부와 정유업계가 '최고가격제' 도입에 따른 손실 보상 협의에 본격 착수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정유업계가 추산하는 손실 규모와 정부가 검토하는 보상 규모 간 격차가 10배 이상 벌어지면서 정산 기준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4일 최고가격제 손실 보전액을 심의·검증하는 '최고액 정산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하고 보상 절차를 개시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손실 산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했다. 이달이나 다음 달 중 검증 등이 마무리되면 산업부는 정산위원회 검토를 거쳐 이르면 오는 10월께 최종 보상 규모를 확정할 전망이다.
이번 보전의 최대 쟁점은 손실 산정 방식이다. 정부는 실제 원가에 적정 마진을 더하는 방식으로 보상액을 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유업계는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얻을 수 있었던 시장가격 기준의 수익, 즉 기회비용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유사는 통상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을 기준으로 국내 판매가격과 수출가격을 결정한다. 수출가격(EPP)과 최고가격 간 차액에 판매 물량을 곱하는 방식이 실제 손실을 가장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셈이다.
EPP가 배럴당 120달러일 때 국내 최고가가 100달러로 제한된다고 가정하면 배럴당 발생하는 20달러 차액 손실에 실제 판매 물량인 10만 배럴을 곱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정유사가 입은 총손실액이 200만 달러로 산출돼 실제 손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업계가 추산하는 손실 규모는 최고가격제 첫 시행일인 3월 13일 이후로 현재까지 대략 7~8조 원으로 전해진다. 반면 정부가 원가 기준으로 검토하는 손실액은 5000억~6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계산 방식에 따라 10배 이상 차이가 발생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최고가격제가 소비자 부담 완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비용은 정유사가 부담한 것"이라며 "정유사가 시장가격으로 판매하지 못해 잃은 기회비용을 정부가 임의로 축소해서는 정책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휘발유와 경유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함께 생산되는 대표적인 연상품이어서 개별 제품 원가를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최고가격 간 차이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정유업계의 호실적 역시 최고가격제 손실 논의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2분기 정유사들은 국제유가 흐름과 정제 차액 개선에 힘입어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11조 3435억 원, 영업이익 9650억 원을 기록하며 정유 부문 회복을 입증했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사업 자회사인 SK에너지 역시 매출 13조 2106억 원, 영업이익 6512억 원을 기록하며 정제 차액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HD현대오일뱅크는 에너지 부문에서 중동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와 정제 차액 개선 영향으로 2분기 매출 9조 4774억 원, 영업이익 1조 8241억 원을 나타냈다.
다만 업계는 이러한 실적 개선이 최고가격제 부담이 크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정유업은 원유를 구매한 뒤 일정 기간 이후 정제해 판매하는 구조여서 국제유가 상승 국면에서는 과거 저가 원유 재고가 반영되는 '래깅 효과'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1배럴에 50달러를 주고 산 원유를 재고로 갖고 있을 때 중동 리스크 등으로 국제 유가가 100달러로 급등했다면 과거에 저렴하게 산 원유로 제품을 만들어 비싸게 팔 수 있어 단기적으로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중동 리스크가 커졌던 시기에 국제유가가 급등했지만, 정유사들은 이전에 확보한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유를 투입하면서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개선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높은 가격에 구매한 원유가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만큼 역래깅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유가가 100달러일 때 들여온 원유를 공정에 투입하는 상황인데 유가가 50달러로 하락하면 비싸게 산 원유로 만든 제품을 싼 가격에 팔아야 한다.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정부가 최근 실적 개선을 근거로 손실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이다. 정유사들은 평소에 높은 이익률을 유지하는 산업이 아니다. 적자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보전해 주지 않는 만큼 정책으로 발생한 비용이 별도로 인정되는 것과 역래깅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시점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정유사들은 호소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2분기 실적은 원유 도입 시점과 국제유가 흐름에 따른 일시적 효과가 반영된 것"이라며 "최고가격제로 인해 시장가격보다 낮게 판매한 부분에 대한 손실 보상 문제와는 별개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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