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부펀드, 전략산업 키우는 펀드로…초장기 투자 기반 마련해야"
'주요국 국부펀드 현황·시사점' 보고서…韓 KIC 운용자산 세계 14위
"수익 내는 전략투자 원칙·안정적 재원 확충 구조·투명한 운용 필요"
- 박기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국부펀드를 단순히 자산을 굴리고 쌓는 역할을 넘어 전략산업과 공급망을 키우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미 세계 주요 국부펀드들이 단순 자산 운용을 넘어 첨단전략산업과 공급망을 선점하는 국가전략자본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8일 발표한 '주요국 국부펀드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글로벌 국부펀드 순자산총액(AUM·Assets Under Management)은 15조 달러로 2000년(1조 달러) 대비 15배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한국투자공사(KIC)가 운용하는 국부펀드는 AUM 2320억 달러로 세계 14위 수준이다.
글로벌 국부펀드 분석기관 Global SWF에 따르면 2025년 한 해에만 11개의 국부펀드가 새로 설립되는 등 역할이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도 이 흐름에 올라타야 하며, 특히 민간과 정책금융이 구조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초장기·대규모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며 "정부가 지난 14일 기존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 펀드에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하고 '종합형 국부펀드'로 확대·개편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런 역할에 맞게 설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반도체·AI 등 국내외 전략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할 한국형 국부펀드를 KIC를 통해 추진하기로 했다. KIC는 한국투자공사법에 따라 2005년 7월 설립된 해외투자 전문기관이다. 정부와 한국은행, 공공기금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산을 해외에 투자하며 우리나라 국부펀드 역할을 해왔다. 정부가 별도 기관을 설립하는 대신 KIC를 저축형과 전략형 기능을 모두 갖춘 종합형 국부펀드로 확대 개편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KIC에 국내외 전략투자를 전담하는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하기로 했다. 기존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위탁계정과는 분리 운영해 대외 신뢰도와 운용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전략산업과 경제안보 분야에 장기 자금을 공급할 계획이다. 전략투자계정은 정부 출자와 기부금, 운용수익 등을 재원으로 국내외 전략산업과 기간산업, 경제안보 관련 분야에 장기 투자하는 역할을 맡는다.
보고서는 우선 전 세계 국부펀드를 운용 목적에 따라 경제개발 펀드(기업 지분 보유 등을 통해 자국 전략산업 육성, 경제구조 전환), 저축성 펀드(자원 수익이나 재정 흑자를 투자·운용해 미래세대에 이전), 안정화 펀드(원자재가·환율·경기 등 외부충격으로부터 재정·경제를 완충) 등 3가지로 구분했다.
현재 국부펀드 운용자산 상위권에는 노르웨이 GPFG(1위), 중국 SAFE IC(2위)·CIC(3위), UAE ADIA(5위) 등 저축성 펀드들이 주로 포진해 있지만, 최근에는 사우디 PIF(4위), 싱가포르 테마섹(10위), UAE 무바달라(11위) 등 경제개발 펀드가 AI, 반도체,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 분야 투자를 확대하며 국부펀드의 역할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잠재성장률 하락, 기술패권 경쟁, 공급망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개발 기능을 강화한 '종합형 국부펀드' 도입을 서두르되, 이미 운용 중인 다른 공적 투자기구와의 중복 방지를 위해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부펀드는 국가 차원의 초장기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 핵심광물 광산 지분 확보, 원천기술 기업 M&A, AI 전력망 등 수십 년이 걸리는 전략자산에 국부펀드를 집중시켜야만 두 펀드 간 역할 중복을 피하고 확실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각 기구의 참여 범위와 역할, 공동 투자 시 의사결정 기준과 우선순위 등을 법제화 단계에서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경제개발 펀드의 구체적인 사례로 싱가포르 테마섹, 사우디 PIF, UAE 아부다비 무바달라를 제시하고, 한국형 국부펀드 설계에 참고할 시사점도 도출했다.
테마섹과 무바달라는 정부 소유 기구이면서도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상업적 원칙을 철저히 지켜 왔다. 무바달라는 미국 AMD가 반도체 제조 부문을 분사할 때 대규모 출자로 인수, 미국 대표 파운드리인 글로벌파운드리를 설립하고 재생에너지 기업 마스다르를 키워내는 등 UAE의 탈석유 경제 전환을 이끌기도 했다. 보고서는 해외에서 전략 자산을 직접 인수해 국내 산업 역량을 키우는 이 같은 접근법은 해외 핵심광물·원천기술 확보 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짚었다.
또 세 펀드는 모두 수익을 재투자하고 채권 발행 등으로 외부 자금을 활용해 스스로 재원을 불려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전략투자는 한 번의 승부가 아니라 장기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익 내는 전략투자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일자리 창출, 지역균형발전 등 다른 정책 목표는 별도 수단으로 추진하고, 펀드의 투자 판단과는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경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재원 확충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제 논리에 따른 투자 결정과 투명성·공적 책임성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goodd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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