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1년' 상장사 10곳 중 8곳 이사회 운영방식 바꿨다

상장사 300곳 조사…사내 검토 강화·외부 자문 확대
"이사충실의무 가이드 보완·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필요"

대한상공회의소 전경.(대한상의 제공)/뉴스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골자로 한 개정 상법이 시행된 지 1년 만에 국내 상장사 10곳 중 8곳이 이사회 운영 방식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에 따른 변화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소송 증가에 대한 우려는 한층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장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법개정 1년, 경영환경 변화와 제도 안착을 위한 지원과제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84.3%가 상법 개정 이후 이사회 운영방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밝혔다.

상법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해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법안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기대하는 주주들의 찬성 의견과 경영 위축·소송 남발을 우려하는 재계의 반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경제계 핵심 현안이다.

구체적으로 '법무·준법팀 사전 검토 등 사내 점검 절차를 신설·강화했다'는 응답이 47.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외부 전문가의 법률·회계 등 자문 확대'가 45.7%, '이사별 찬반의견 등 이사회 의사록 상세 작성'이 43.7% 수준을 기록했다. 이어 '이사회 전 안건 사전 배포·검토 의견 제출 절차 도입·강화'(39.7%)와 '특별위원회 구성'(14.0%) 순으로 나타났다.

상법 개정 후 이사회 운영방식 변화(복수응답).(대한상의 제공)/뉴스1

이사회 운영 방식 변화가 기업경영에 미친 영향을 묻자 10곳 중 4곳(39.6%)은 '의사결정의 책임성이 제고되고, 지배구조 투명성이 개선되는 등 긍정적 영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10곳 중 2곳(22.4%)은 '컴플라이언스 비용 증가, 의사결정 지연 등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고 답했다.

"이사충실의무 확대 이후 소송 우려 증가"

소송 증가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도 확인됐다. 상장기업 과반(53.7%)은 이사충실의무 확대 시행 후 '주주대표소송, 손해배상청구 등 소송 우려가 커졌다'고 답한 반면, '줄었다'는 응답은 6.0%에 불과했다.

상법 개정 이후 투자·사업재편 등 주요 의사결정에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기업 10곳 중 2곳(21.7%)이 '법적 검토 강화로 주요 의사결정이 지연·보류·취소됐다'고 답했다.

지연·보류·취소된 의사결정으로는 '신사업, 인수합병(M&A) 등 신규 투자 및 사업 진출과 관련'이 30.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재무·자본 조달'(18.5%), '임원 선임·보수'(16.9%), '자산 취득·처분'(15.4%), '계열사 간 거래·구조 변경'(15.4%) 등이 뒤를 이었다.

상법 개정 후 소송 우려 변화.(대한상의 제공)/뉴스1

시행을 앞둔 제도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은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2027년 1월 시행되는 전자주주총회 의무화의 적용대상인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 가운데 '전자주주총회 개최를 위한 제도·운영체계 구축을 완료했다'는 곳은 16.0%에 그쳤다.

이어 '내부 검토 중이나 구체적 조치 착수 전'이라고 답한 기업이 34.0%로 가장 많았으며 그 외 '운영·시스템 정비 미착수'(26.0%) '플랫폼 선정, 보안·장애 대응체계 검토 등 전자주총 시스템 구축 중'(24.0%) 등이 뒤를 이었다.

전자주주총회는 주주들이 물리적인 장소에 직접 모이는 대신 온라인 화상회의 등 전자적 방식을 통해 원격으로 참여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주총회다.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해 소액주주의 접근성과 참여율을 높일 수 있어 최근 주주 권익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핵심 제도로 주목받고 있다.

2027년 7월 말까지 독립이사 선임 비율(1/4→1/3)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자산 1000억~2조 원 미만 상장사의 경우 52.8%가 후보자 선정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내부 검토 중이며 후보자 물색 전'(24.1%), '후보자 물색 중이나 후보자 선정에 난항'(11.1%), '후보자 선정 완료했으며, 차기 주총에 안건 상정 예정'(17.6%) 등으로 조사됐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관련해서는 의무소각 대상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 중 64.9%가 '아직 대응 중'이라고 응답했다. '소각 또는 보유·처분계획 승인을 완료했다'고 답한 기업은 35.1%에 이르렀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경영·재무전략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M&A 대응, 경영권 방어 등 자사주 활용전략 변경'(24.0%) '주주환원 정책을 보다 명확하게 수립'(21.1%), '매년 주주총회 승인 절차 추가 등 실무적 부담 가중'(17.0%), '스톡옵션 등 임직원 보상 설계 재검토'(11.1%), '불필요한 자사주 정리'(7.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사충실의무' 가이드라인 보완 필요…경영판단 원칙도 정해야

기업들은 새로운 상법 체계가 현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 정부와 유관기관의 정교한 정책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보완이 필요한 사항으로는 노조의 회사이익 배분 요구에 대한 판단 등 이사의 충실의무 가이드라인의 구체성을 보완 해달라(37.3%)는 목소리가 가장 컸다. 이어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20.3%), 현장 실무자를 위한 법률·컴플라이언스 교육 지원(12.7%) 등이었다.

최은락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상법 개정 이후 지난 1년간 기업들은 이사회 운영방식을 바꾸고 제도 준수에 힘써 왔다"며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려면 기업의 노력뿐만 아니라 현장사례를 반영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과 실무 부담을 덜어주는 현장 밀착형 정책 지원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