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폭염'에도 유럽엔 에어컨 특수 불가능…"설치비만 1000만원"
프랑스서 에어컨 설치 규제만 '7단계'…B2C 진입장벽에 발목
삼성·LG 'B2B·친환경 히트펌프'로 유럽 냉난방 시장 공략
- 황진중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기록적인 폭염이 유럽을 덮쳤지만 '에어컨 특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온열 질환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이유는 에어컨 관련 규제와 상상을 초월하는 설치비용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7단계 규제를 통과해야 하고 관련 인프라가 부족해 설치에만 100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달 남서유럽 지역의 가정용 에어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이는 일종의 '착시 효과'다. 시장 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매출이 조금만 늘어도 증가율은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는 구조다.
'에어컨 명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유럽에서 신축 건물 냉난방 공조 시스템 등 기업용 시장(B2B)과 고효율 히트펌프 시장에 주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 현지에서는 가정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비용만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에 이른다. 설치 전문 엔지니어 인력이 부족하고 벽면 타공, 배관 연결, 크레인 장비 동원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 소비자가 감당하기에는 설치비가 부담스럽다.
유럽의 개별 에어컨 보급률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각국 정부 차원의 강력한 규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공동주택이나 고건물 벽면에 실외기를 설치하려면 주민 동의, 도시미관 심의, 환경 영향 평가 등 최대 7단계의 행정 허가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건물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며 실외기 노출을 최소화하는 별도의 차폐 구조물을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등 규제가 엄격하다.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으로 개별 에어컨 설치 자체를 법적으로 전면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는 지역도 상당수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에어컨 사업 여건이 워낙 까다로운 지역이어서 B2C 부문은 진입 장벽이 높은 상황"이라며 "과거에도 폭염 이슈가 발생했다가 금세 잦아들었던 전례가 있어 수요가 극적으로 폭발하는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타공·실외기 설치 규제 등을 피하기 위해 이동식 에어컨이 단기 대안으로 부상했다. 실외기 설치 제약이 적어 유럽에서 폭염 때마다 수천 대씩 판매되는 반짝 특수가 나타나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이동식 에어컨을 현지에 출시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해당 제품은 지구온난화지수(GWP)가 3 이하인 친환경 냉매 'R290'을 적용해 유럽의 환경 규제 기준을 충족했다.
또한 소음에 민감한 유럽 주거 환경을 고려해 저음 모드 가동 시 '51데시벨(dB)'까지 작동 음량을 낮췄다. 침대나 소파에서 쉽게 제어할 수 있는 LED 디스플레이와 제어판, 리모컨 기능을 탑재해 편의성을 높였다.
다만 이동식 에어컨은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신축 건물을 중심으로 기술력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벽걸이 에어컨 등 프리미엄 제품군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개별 가정용 시장이 아닌 신축 건물과 상업용 시설을 아우르는 B2B 냉난방 공조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냉난방 공조 시장 공략의 중심은 고효율 히트펌프다. 히트펌프는 이름에 포함된 '히트'(Heat)라는 단어 때문에 겨울철 난방 전용 기기로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에어컨과 동일하게 냉매의 압축, 응축, 팽창, 증발 사이클을 이용해 냉방과 난방, 온수 공급까지 해결할 수 있는 전천후 시스템이다.
여름철에는 실내의 뜨거운 공기를 밖으로 배출해 공간을 시원하게 만들고, 겨울철에는 이 사이클을 역으로 돌려 외부 공기나 지열에서 열에너지를 끌어와 실내를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히트펌프는 또 뛰어난 친환경성과 에너지 효율을 갖추고 있다. 화석 연료를 직접 태우지 않고 전기를 사용해 열에너지를 이동시켜 투입 전력 대비 최대 3~5배의 열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LG전자의 실증 데이터에 따르면 히트펌프 시스템 도입 시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90% 가까이 절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유럽의 엄격한 환경 규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GWP가 낮은 R290 등 차세대 친환경 냉매가 활용된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유럽 히트펌프 시장은 2024년 142억 달러(약 21조 원)에서 연평균 19.3% 성장해 2034년 826억 달러(약 125조 원)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신축 건물 위주 B2B 거래로 에어컨 등 고부가가치 냉난방 공조 시스템을 주로 공급하고 있다"면서 "유럽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어 친환경 냉난방 시스템인 히트펌프를 활용해 현지 공략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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