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기기 호황 2030년대 중반까지 지속"…효성重, HVDC 기술 독립
[뉴스1 초대석]한영성 효성重 연구소장 "韓, 전력망 투자 부족"
"100% 독자 기술, 로열티 종속 벗어나…E-스태콤, 27년 상용화"
- 대담=서명훈 산업1부장, 황진중 기자
(안양=뉴스1) 대담=서명훈 산업1부장 황진중 기자
"현재 전력기기 호황은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인 성장 국면입니다.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술 국산화와 변압기, 스태콤 등 전력기기 설루션을 통해 글로벌 전력망 패러디임 변화를 주도할 것입니다."
한영성 효성중공업 연구소장이 2030년대 중반까지 전력기기 초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 26일 경기도 안양공장에 있는 기술원에서 뉴스1과 만나 "국내와 미국·유럽 등 주요국들은 전력 분야 과제를 해결하고자 전력망 현대화 구축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초고압직류송전(HVDC)과 에너지 고속도로를 적기에 구축하고 계통 안정화 설비 포트폴리오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성중공업은 수주잔고가 2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전력 분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 자동화와 디지털 트윈 기술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1000억 원을 투자해 양주 200㎿급 전압형 HVDC 상용화에 성공한 실적을 바탕으로, 2038년까지 서해안 구간 등에 도입될 2GW급 대용량 HVDC 독자 기술 자립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미 시장을 겨냥해서는 세계 최대 용량 800㎸ 7000A 가스절연개폐장치GCB)를 새롭게 선보였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의 핵심인 E-스태콤과 반도체 변압기(SST)의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한 소장은 효성중공업 강점으로 전력기기 납품을 넘어 고객의 전력 계통 문제를 해결하는 토털 엔지니어링 기업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전력망의 물리적 관성이 줄어들면서 계통 안정성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인버터 기반의 발전이 늘어남에 따라 주파수와 전압이 흔들리는 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 소장은 "발전 측면의 재생에너지와 수요 측면의 AI 데이터센터는 전례 없는 전력망 난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면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적 발전량 특성은 전력 수급 밸런싱이 어렵고, AI 데이터센터는 도시 수준의 대규모 전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효성중공업은 기존 장치에 초고속 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해 가상 관성 기능을 제공하는 E-스태콤 개발에 나서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1초 단위 급격한 부하 변동을 실시간으로 상쇄해 계통을 안정화하는 이 기술은 미래 전력망의 필수 인프라로 평가받고 있다.
한 연구소장은 "AI 데이터센터는 연산 과정에서 전력이 급변동해 계통 안정도를 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전력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SST와 같은 첨단 기술들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효성중공업은 표준화 제품 납품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복잡한 전력망 문제를 분석해 최적의 시스템을 제안하는 전력 설루션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제품 개발 단계부터 전력 계통 시뮬레이션과 제어 알고리즘을 고도화해 변압기와 전력전자 제품을 결합한 복합 설루션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한 연구소장은 "효성중공업은 설계 자동화를 넘어 개발에서 서비스까지 연결하는 전주기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고객의 전력망 환경을 사전에 분석하고 최적 설루션을 제안하며 설치 이후에는 상태 진단과 보전을 고도화하는 토탈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 연구소장과의 일문일답.
-현재 전력기기 업황과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가.
▶역대 최고 수준의 호황이 맞다. 매켄지 등 주요 기관은 전기차와 데이터센터 확대로 2050년 글로벌 전력 수요가 2023년 대비 약 2배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전기화의 본격적인 시작과 노후 전력망 교체 시기가 맞물리면서, 전력 수요 증가는 2030년대 중반까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호황을 이끌 것으로 전망한다. 송전망 투자가 필수적이나 대용량 전력기기를 공급할 제조사가 극소수라 2030년 이후에도 공급 부족 현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센터와 AI의 성장이 전력 산업 패러다임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은.
▶미국 텍사스 전력관리기관(ERCOT)의 경우 향후 10년 내 한국 전체 전력량을 상회하는 135GW 규모의 데이터센터 설치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반면 송전망 확충은 심각한 민원 등으로 10년 이상 걸려 속도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은 당장 1~2년 내 사업 개시를 원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사업자가 스스로 발전소를 짓고 전력망을 자체 구축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며 산업 패러다임이 크게 변하고 있다.
-거대한 데이터센터 전력을 신재생 에너지나 소형 모듈 원전(SMR) 등으로 감당할 수 있나.
▶신재생 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출력이 변하는 간헐성 때문에 단독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매우 어렵다. SMR 역시 1기의 용량이 수십~300㎿ 수준에 불과해 5GW 이상의 거대한 전력을 요구하는 대형 데이터센터를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고자 최근에는 도심 주변에 수십~수백 ㎿급 소형 데이터센터를 분산 배치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묶어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처럼 활용하는 방식이 개발돼 있다.
-국내 전력망 투자 상황은 충분하다고 보는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망 운영 수준도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봄철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면 기저 전력인 원자력의 출력까지 제어해야 할 만큼 계통이 매우 불안정해진다. 첨단산업은 전력을 대규모로 소비하는 만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국가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심각한 민원으로 기존 교류(AC) 송전선로 추가 건설이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직류(DC) 방식의 전압형 HVDC와 에너지 고속도로를 적기에 구축하고 계통 안정화 설비 포트폴리오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HVDC 국산화 로드맵과 대용량화의 난제는.
▶핵심은 HVDC 국산화다. 정부와의 교감을 통해 당진 서해안 구간 등 2038년까지 2GW급 HVDC 국산화 프로젝트 4개 정도를 효성 주도로 진행 중이다. 2GW급 개발은 차세대 모듈형 MMC 방식을 적용해 컨버터 모듈을 적층하고 확장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모듈이 대규모로 통합되는 만큼 내진 등 구조적 안정성 확보는 물론, 대전류 운전에 따른 절연 협조와 열관리 설계를 고도화하는 엔지니어링 역량이 관건이다.
-과거 제품 개발 과정에서 겪은 뼈저린 실패 경험이 현재의 혁신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약 17년 전 제주도에서 20㎿ HVDC 실증을 진행할 때 일이다. 엔지니어가 시뮬레이션 결과만 믿고 실제 기기에 수치를 그대로 적용했다가 엄청난 과전압이 발생해 연결된 풍력 발전기들이 연쇄 고장 나는 대형 사고가 났다. 한 달간 연구소 인력 30명이 매달려 복구해야 했다. 이 뼈저린 경험을 거울삼아, 양주 200㎿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실제 설치 전 실시간 디지털 시뮬레이터(RTDS)를 활용해 상상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수년간 철저히 검증해 성공할 수 있었다.
-수주잔고 20조 원 돌파 등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과거 개별 엔지니어의 경험에 의존하던 방식을 벗어나, 설계 자동화와 디지털 트윈을 연구개발(R&D) 핵심 전략으로 도입했다. 핵심 제품군의 설계 데이터와 고장 이력을 디지털 라이브러리로 축적해 초기 설계 사양을 신속히 산출해 낸다. HVDC 분야는 실시간 계통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별 설비를 넘어 광역계통 수준의 안정도 이슈까지 사전에 완벽히 검증하는 환경을 구축해 납기 경쟁력과 정밀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독일이나 일본 등 경쟁사 대비 효성 HVDC 제어기만의 차별화된 강점은.
▶해외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100% 독자 기술로 자립화해 로열티 종속에서 벗어났다. 효성은 2011년부터 독자적인 제어 기술을 설계해 제어기 성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 기반 디바이스(FPGA)를 적용해 제어 주기를 10마이크로초(µs) 수준으로 구현해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기술 자립 덕분에 고장 분석이나 제어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현장 대응 면에서도 훨씬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에 스태콤과 E-스태콤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데이터센터는 AI 학습과 추론 과정에서 부하가 1초, 심지어 밀리초 단위로 30%씩 급격히 변동한다. 기존 발전기로는 이 급변을 감당하지 못해 터빈 축이 물리적으로 파손되거나 전력 품질이 심각하게 저하된다. E-스태콤은 초고속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해 전압 변동을 빠르게 보상함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유효 전력을 공급해 계통을 굳건하게 안정화해 준다. 글로벌 파트너들과 협력해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개발 중이다.
-북미 시장의 특수한 전력망 환경을 반영한 제품 개발 성과는.
▶최근 미국 최대 전력 전시회에서 북미 전력망 전환 수요에 맞춘 세계 최대 용량 800㎸ 7000A GCB를 선보였다. 기존 제품과 크기는 유지하면서 대전류 차단 성능을 극대화해 765㎸ 송전망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초로 개발한 22.9㎸ SST는 전력 변환과 변압을 통합해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장비로, 미래 데이터센터의 효율성을 책임질 핵심 설루션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력 산업 인재 육성 현황과 정부 등 관련 기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전문 인력 확보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며, 해외 유출 우려도 매우 크다. 현장에서 기술적 논의를 주도할 인재를 키워내려면 최소 4년 이상이 소요돼 기업 자체 프로그램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학과처럼 전력전자에 특화된 전력 학과 신설 등을 적극 추진해 주기를 건의한다. 또 조 원 단위 자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실증 사업은 기업 단독으로 감당할 수 없으므로, 국가 차원에서 기술 검증을 위한 장을 마련해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주길 바란다.
☞ 한영성 효성중공업 연구소장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에서 학사부터 박사 학위를 모두 받았다. 2012년 효성 중공업PG 스태콤 사업팀 팀장을 지내는 등 전압형 컨버터(VSC) 등 전력 변환 장치에 관한 핵심 연구를 수행하며 현장 중심의 R&D 역량을 쌓았다.
2017년 효성 중공업연구소 혁신제품개발 담당을 거쳐, 2022년 효성중공업 연구소 신사업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이후 연구소장을 맡아 초고압직류송전(HVDC), 스태콤(STATCOM),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계통 안정성과 직결되는 핵심 설비의 기술 고도화를 이끄는 등 연구·기술통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최근 전력망 인프라의 사이버 보안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전력 핵심 설비 설계 단계부터 보안 시스템을 내재화해 산업용 사이버 보안 국제표준인 'IEC 62443-4-1' 인증 획득을 이끌었다.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전력 설루션을 제시해 효성중공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 기술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2025년 12월에는 한국전기산업진흥회에서 주관하는 '전기기기 산업발전 유공자' 포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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