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는데 살이 빠져요"…13살 시추에게 숨어 있던 질환은

더케어동물의료센터, 반려견 간문맥 단락 증례

노령견이 식욕이 좋은데도 체중이 줄고 쉽게 지친다면 단순 노화가 아닌 질병의 신호일 수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클립아트코리아). ⓒ 뉴스1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노령견이 식욕은 여전히 좋은데도 체중이 줄고 예전보다 쉽게 지친다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고령의 반려견에게서는 활동량 감소나 체중 변화가 흔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단순한 노화처럼 보이는 변화 뒤에 선천적인 간 혈관 이상 질환이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13살 시추(시츄) '삐삐' 역시 그랬다.

29일 구리 24시 더케어동물의료센터에 따르면 삐삐는 내원 당시 식욕은 정상이었지만 체중이 계속 줄고 활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정밀 검사 끝에 밝혀진 원인은 바로 간문맥 단락(PSS, Portosystemic Shunt)이었다.

"잘 먹는데 왜 살이 빠질까"…작은 변화에서 시작된 의심

삐삐 보호자가 가장 걱정한 부분은 식욕은 그대로인데 점점 말라간다는 점이었다. 산책하러 나가도 금세 지치고 전반적인 기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13살인 삐삐는 증상만 보면 특정 질환을 바로 떠올리기 어려운 매우 비특이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유경호 더케어동물의료센터 대표원장은 "식욕은 유지되는데 체중이 감소한다는 패턴 자체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문맥 단락은 장에서 흡수된 혈액이 정상적으로 간을 거치지 않고 비정상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바로 순환하는 선천성 혈관 이상 질환이다.

정상적인 경우에는 영양분과 독성 물질이 먼저 간으로 들어가 해독과 대사를 거친 뒤 몸 전체로 전달된다. 그러나 간문맥 단락이 있으면 간이 충분한 혈류를 공급받지 못하고 암모니아 같은 독성 물질이 체내를 그대로 순환하게 된다.

이 때문에 식욕은 정상인데도 체중이 줄거나 쉽게 피곤해한다. 심한 경우 발작이나 멍한 행동 같은 신경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X-ray에서 보인 '작은 간'…진단의 출발점
흉부 엑스레이 검사 결과 확인된 소간증(더케어동물의료센터 제공) ⓒ 뉴스1

흉복부 엑스레이(X-ray) 검사에서는 간 크기가 정상보다 작아 보이는 '소간증(Microhepatica)' 소견이 확인됐다.

소간증은 간문맥 단락 환자에서 비교적 자주 관찰되는 대표적인 영상 소견이다. 간으로 충분한 혈류가 공급되지 않으면 간 성장과 기능이 저하되면서 실제 크기 자체가 작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X-ray에서 큰 이상이 없다고 느끼기 쉽지만 의료진에게는 이런 작은 변화가 중요한 진단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사례에서도 X-ray에서 확인된 작은 간이 이후 혈액검사와 CT 검사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출발점이 됐다.

이후 진행된 혈액검사에서는 간 기능 이상을 시사하는 수치들이 확인됐다.

삐삐의 검사에서는 ALP, ALT, AST 등 간 수치 상승과 함께 담즙산(Bile Acids) 수치가 많이 증가해 있었다. 암모니아 수치 역시 정상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다.

특히 담즙산 검사는 간문맥 단락 진단에서 매우 중요한 검사다. 정상적인 경우 담즙산은 간에서 처리되지만 간문맥 단락이 있으면 혈액이 간을 우회하기 때문에 혈중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암모니아 수치 상승 역시 간이 독성 물질을 충분히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심할 경우 간성뇌증 같은 합병증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요로결석 병력도 중요한 힌트였다. 삐삐에게는 과거 '암모늄 유레이트 결석' 병력도 있었다.

이 결석은 일반적인 요로결석과 달리 간 기능 이상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간이 암모니아와 요산을 제대로 대사하지 못하면 이 물질들이 소변으로 배출되면서 특징적인 결석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과거 결석 병력 역시 단순 비뇨기 질환이 아니라 간문맥 단락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였던 셈이다.

CT로 최종 확인된 간문맥 단락
조영 증강 CT 검사로 선천적인 간혈관 이상을 확인한 모습(더케어동물의료센터 제공) ⓒ 뉴스1

최종적으로 진행한 조영 증강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사에서는 혈액이 정상적으로 간을 거치지 않고, 비정상적인 혈관을 통해 다른 큰 혈관으로 바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확인됐다. 즉, 간이 해야 할 해독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X-ray, 혈액검사, 담즙산 검사, 과거 병력에서 조금씩 드러났던 단서들이 CT를 통해 구조적으로 확진된 것이다.

의료진은 이를 통해 삐삐의 체중 감소와 활력 저하 원인이 단순 노화가 아니라 선천적인 간혈관 이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문맥 단락은 수술적 교정이 가능한 질환이지만 모든 반려동물에게 수술이 최선은 아니다.

삐삐는 다행히 발작이나 심각한 신경 증상은 없는 상태였다. 의료진은 나이와 현재 증상 정도, 마취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선 내과적 치료를 선택했다.

치료는 간 부담을 줄이고 독성 물질 축적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식이 조절과 약물 치료,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함께 이뤄졌다.

그 결과 삐삐는 치료 후 체중이 다시 증가했다. 산책 시 활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보호자 역시 "예전보다 훨씬 활력이 좋아졌다"고 변화를 체감했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현재 삐삐는 정기적인 혈액검사와 간 기능 평가를 통해 안정적으로 관리받고 있다.

유경호 대표원장은 "식욕은 좋은데 체중이 줄고 활력이 떨어진다면 단순 노화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X-ray에서 간이 작아 보이거나 과거 암모늄 유레이트 결석 병력이 있다면 간문맥 단락 가능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은 이상 신호들을 하나씩 연결하는 과정이 정확한 진단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더케어동물의료센터는 MRI·CT·내시경·초음파 등 정밀 진단 장비와 내과·외과·영상의학 협진 시스템을 기반으로 중증·고난도 질환 진료를 운영하고 있다. 구리·남양주 지역에서 MRI와 CT를 모두 보유한 동물병원으로 석·박사 출신 의료진이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해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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