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파국 막았지만 '상처투성이'…갈등 봉합 숙제(종합)
사업부 갈등·공급망 신뢰 흔들…'원 삼성' 시험대 올랐다
삼성전자 "보다 성숙하고 건설적인 노사관계 구축할 것"
- 양새롬 기자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삼성전자(005930) 노사가 총파업을 1시간여 앞둔 20일 밤 극적으로 성과급 개편에 잠정 합의하며 파국은 피했지만, 후유증은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 협상 과정에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 부문과 모바일·가전을 맡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간 이해관계 충돌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내부 균열이 예상보다 깊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분석이다.
노사는 DS 특별성과급 신설과 성과급 배분 구조 개편 등을 통해 가까스로 접점을 찾았지만, 사업부별 형평성 논란과 내부 신뢰 훼손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삼성전자가 '무노조 경영 이후'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보상·소통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보고 있다.
이번 노사 잠정 합의안의 핵심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한 점이다.
노사는 DS부문 사업 성과의 10.5%를 특별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했고 지급 상한도 없애기로 했다. 특별성과급은 현금이 아닌 전액 자사주로 지급된다.
배분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성과급 재원의 40%는 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 등 3개 사업부에 균등 배분하고, 나머지 60%는 사업부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적자 사업부에는 공동 지급률의 60%만 지급하는 기준도 포함됐다. 다만 노사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해당 제도의 적용 시점을 2027년으로 1년 유예하기로 했다.
총파업을 막기 위해 노사가 '형평성'과 '시장 원칙'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았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DS부문 요구를 반영해 특별성과급과 상한 폐지를 수용하면서도, 현금 대신 자사주 지급과 적자 사업부 페널티 유지 등을 통해 기존 성과주의 원칙 훼손을 최소화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합의가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반도체 업황에 따라 사업부별 실적 변동성이 큰 구조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또한 이번 합의안은 DS 부문을 중심으로 설계돼 상대적으로 DX부문이 소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DS와 DX를 아우르는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숙제도 떠안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이 지켜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DS와 DX간 격차가 더욱 극명해졌다"며 "한 회사 안에서 사업부별 성과급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원팀'은 사실상 불가능해 진다"고 지적했다.
이번 갈등 과정에서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삼성전자 내부 조직 균열이다. 특히 DS 부문과 DX 부문 간 이해관계 충돌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면서 사실상 '한 지붕 두 회사'처럼 움직였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DX 소속 일부 조합원들은 교섭권을 가진 DS 중심 최대 노조가 사실상 반도체 사업부 위주로 협상을 이끌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최근 한 달 사이 초기업노조 소속 DX 부문 조합원 약 5000명이 탈퇴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일부는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교섭 중단 가처분 신청 절차에도 돌입했다.
DX 부문 직원들로 구성된 '삼성전자 직원 권리 회복 법률대응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직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요구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노조 집행부를 공개 비판했다.
DX 부문 조합원 위주로 구성된 삼성전자 내 제2·3 노조인 삼성전자노동조합(SECU·동행)과 전국삼성전자 노동조합(NSEU) 수원지부는 아예 노태문 대표이사와의 공식 면담을 사측에 요청한 상태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이 부진할 때 모바일·가전 사업이 이를 보완하는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해 왔다. 사업부 간 시너지를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와 위기 대응 능력을 확보해 온 셈이다.
하지만 이번 협상 과정에서는 사업부별 이해관계가 정면충돌하며 내부 결속력이 흔들리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사갈등보다 더 어려운 게 노노갈등"이라며 "노사 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소할 수 있지만 노노갈등은 신뢰 문제가 얽혀 있어 훨씬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 중재로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았지만 사업부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구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비슷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총파업 위기까지 치달은 과정 자체가 삼성전자 브랜드 신뢰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 업계가 더 민감하게 보는 부분은 생산 차질에 따른 직접 피해보다 '신뢰 상실'이다.
반도체 공급 계약은 단순 가격 경쟁보다 안정적인 납기와 생산 지속 가능성이 핵심 평가 요소로 꼽힌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은 공급 안정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만큼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질 경우 대체 공급처 검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글로벌 AI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노사 갈등 장기화 자체가 고객사 관계와 브랜드 신뢰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협력사와 지역 경제까지 긴장했던 점도 적잖은 부담으로 남았다.
또한 이번 합의가 사실상 정부와 중앙노동위원회의 막판 중재 속에 성사됐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삼성전자 노사가 자율 교섭만으로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향후 임단협 때마다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전자가 '무노조 경영 이후'에 걸맞은 노사 협의 구조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삼성전자 노사는 이번 과정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무노조 경영에서 유노조 경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미숙함과 과도한 대응으로 불필요한 진통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도 20일 밤 입장문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겸허한 자세로 보다 성숙하고 건설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flyhighr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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