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 속 '숨은 뇌관' 중동 리스크…장기화에 공급망 경고등

중동 의존도 높은 '헬륨·브롬' 공급 차질 우려
삼성전자·SK하닉 공급망 개편 총력…'실물 확보형' 조달 시급

1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무산담주 해안에 있는 선박의 모습. 2026.04.12.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국내 반도체 산업이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경신하며 초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중동 전쟁 장기화로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당장 수출과 생산에는 큰 차질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헬륨·브롬 등 핵심 소재는 대체가 어려워 생산 차질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일부 중간재의 높은 중동 의존도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가격 인상까지 감수하며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300억 달러 수출 돌파 뒤의 그림자… 헬륨·브롬 '공급망 경고등'

15일 관세청에 따르면 3월 반도체 수출은 사상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돌파(328억 3000만 달러)했고, 4월 초에도 역대 최대 흐름을 이어가며 국내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호황 속에서도 공급망 불안이라는 구조적 리스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발간한 '중동 지정학 리스크 확대에 따른 산업 공급망 핵심 품목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중동 전쟁 장기화 시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산업 소재 공급 차질이 확산되며 '중간재 공급망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헬륨과 브롬은 대표적인 취약 품목으로 꼽힌다. 헬륨은 웨이퍼 냉각과 세정에 쓰이는 필수 가스로 높은 열전도율 때문에 사실상 대체가 불가능하다. 브롬 역시 식각 공정에 활용되며 일부 공정에서는 대체재가 제한적이다.

문제는 수입 구조다. 국내 헬륨의 약 65%는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고 브롬은 이스라엘 의존도가 90%를 웃돈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공급 차질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카타르 헬륨 생산시설이 공격을 받아 가동을 중단하면서 헬륨 가격이 급등했고 공급 중단 우려까지 제기됐다. 헬륨은 원가 비중이 1%도 안 되지만 공급이 끊기면 공정 자체가 멈추는 '병목 자원'이라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약 6개월 수준의 재고와 일부 재사용 시스템으로 단기 대응이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 경우 재고로 버티는 데 한계가 있고 공급망 불안은 결국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삼성전자·SK하닉 공급망 체질 개선 총력…'실물 확보형' 조달 시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같은 위기감 속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공급망 체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사는 헬륨 가격이 50% 이상 폭등한 상황에서도 에어프로덕츠 등 글로벌 가스 기업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물량 확보에 나섰다. 또한 카타르 외에도 미국, 호주, 알제리 등으로 수입처를 넓히는 '공급망 다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다만 무역협회는 단순한 공급처 다변화를 넘어 '실물 확보형 조달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계약보다 실제 물량을 확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헬륨 재사용 기술과 같은 자립형 공정 확보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외부 공급이 끊겨도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및 핵심 소재 기술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급망 대응과 함께 반도체 수요 둔화 대비를 위한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유가 상승과 물류비 증가로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이 급등하면서 투자 지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양사는 빅테크와 3~5년 단위의 장기 공급 계약(LTA)을 확대해 경기 변동성을 줄이고 고정적 판매처를 확보, 안정적 수익을 내기 위한 전략이다.

앞서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 18일 주주총회에서 "고객사들과 공급 계약을 현재의 연 단위, 분기 단위에서 3~5년의 다년 공급 계약으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