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만 30달러'…정유업계, 일단 계약 유가 떨어지면 '독박'

'단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비싸게 불러도 무조건 '계약'
래깅 효과 우려…국제 유가 하락시 정유업계 손실만 '수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고한 가운데 유조선이 오만 무스카트에 정박해 있는 모습. 2026.03.07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두바이유, 브렌트유,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원유 구매 시장 운영 시간대가 다 다르기에 모든 정유사의 본사, 해외법인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산 원유 수요가 늘면서 미국 해외 지사는 야근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가가 하락하면 수 조원대 손실이 불가피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지금은 원유 조달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중동 상황 장기화로 거의 모든 국가가 원유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프리미엄이 3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 이외 지역에서 단 한 방울의 물량이라도 확보하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원유를 구할 수만 있다면 가격과 물량에 관계없이 일단 계약에 나서고 있다.

역설적으로 정유업계는 지금의 총력전이 추후 '독박'을 쓸 수 있다는 불안감도 상당하다. 원유 물량 확보를 위해 말도 안 되는 가격에도 일단 계약부터 하고 있지만 유가가 떨어지면 모두 정유사가 손실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30달러 이상 프리미엄에도 계약

1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널뛰기 하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 직전인 2월 평균 대비 4월 1~10일, 두바이유는 배럴당 41.55달러, 브렌트유는 32.79달러, WTI는 39.18달러 상승했다.

정유사는 이 가격에 배럴당 15~30달러에 달하는 프리미엄까지 지불하면서 원유를 도입하고 있다. 1월 초 2달러 미만에 불과했던 프리미엄은 전쟁이 한창이던 3월 중순 15달러까지 올랐다가 이달 초에는 3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원유 프리미엄은 특정 지역·품질의 원유가 국제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WTI 대비 더 비싸게 거래되는 가격 차이를 뜻한다. 원유를 구입해 석유 제품을 파는 정유사 입장에선 프리미엄 확대로 원유 도입비가 오르면 정제마진이 축소된다.

또한 장기계약 원유 물량 원가에 해당하는 원유 공식판매가격(OSP)은 5월 19.5달러(아랍에미리트 기준)까지 치솟았다.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 2022년 8월의 9.8달러보다 두 배가량 많다. 6월 역시 높은 수준으로 산정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모두 원가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유사들은 수입의 70%를 차지했던 중동산 원유 수급이 막히면서 타지역에서 물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으로 수급처를 급히 확대했고 공해상에 떠 있는 러시아산 원유 도입까지 검토할 정도로 수급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붙으면서 비싼 가격에도 원유 확보가 쉽지도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대만, 태국의 정유사들이 앞다퉈 미국산 원유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6월까지는 계획된 가동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봉쇄 장기화로 7월 투입 물량을 구하기 위해 원유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박' 알면서도 원유 확보 총력전…조 단위 적자 불가피

업계의 고민은 올해 2분기부터 조 단위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데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현재와 같은 고가로 확보한 재고 가치가 급락, 재고 손실이 대규모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직 우리나라에 도착하지 않은 수십 대의 초대형원유수송선(VLCC)에 실린 원유는 유가 급락이 이뤄지면 고스란히 정유사의 손실로 반영될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원유를 구입한 후 판매할 때까지 시간차로 발생하는 손실인 래깅 효과에 대한 우려다. 통상적으로 원유를 구입한 후 국내로 반입할 때까지는 1~2개월가량 걸린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유가 널뛰기로 리스크가 상당해 일각에선 정유 설비를 끄고 버티는 방법이 낫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있을 정도"라며 "이런 불안감에도 장기적인 상황을 대비해야 하기에 정유사들이 원유 도입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goodd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