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납사 '단비' 추가 수입 난항…원유 구하기 왜 더 어렵나

3일치 불과한 '임시 수혈'…제재·물류 장벽에 추가 도입 '첩첩산중'
덩치 큰 원유 '사중고'… 1400만 배럴 해협 고립에 대체선 막막

중동상황 장기화로 나프타 수급 차질로 인해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생산 시설 가동 중단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3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소재 기업 등에 따르면 LG화학 여수공장은 이날부터 여수산단 내 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사측은 나프타 공급이 원활해질 때까지 1공장만 가동할 예정이다. 사진은 25일 여수산단내 NCC 2공장 모습. 2026.3.25 ⓒ 뉴스1 김성준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러시아산 나프타(납사) 2만 7000톤이 긴급 수혈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이번 도입분은 국내 3~4일 치 사용량에 불과해 공급망 붕괴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근본적인 해갈보다는 가동 중단을 막기 위한 '버티기용'에 그칠 전망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원유 수입 정상화'다. 하지만 원유는 나프타보다 수입 단위가 더 커 대체선 확보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비축유 스와프 등으로 숨통을 터주면서 최악의 상황을 방어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산 나프타 3일 치 분량… 제재·물류 장벽에 추가 도입 '첩첩산중'

2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이 이번에 들여온 러시아산 나프타 2만 7000톤은 미 행정부의 한시적 제재 완화 조치를 활용해 가까스로 확보한 물량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공장 가동률을 최저로 낮춘 상황에서도 3~4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양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추가 수입 전망은 어둡다. 우선 시간적 제약이 발목을 잡는다. 러시아산 물량은 오는 11일까지 하역과 대금 결제를 모두 마쳐야 하는데, 물리적인 운송 기간과 금융 절차를 고려하면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도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동춘 LG화학 사장도 "미국 제재 허용 범위 내에서 일부 물량을 확보했지만, 추가 구입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수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업계 관계자는 "남은 재고로 최대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확보되는 물량에 맞춰 끌 수 있는 공장은 하나씩 더 끄고, 그 물량으로 최대한 오래 돌리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했다.

정부가 외교 채널을 가동해 미국 재무부로부터 제재 예외 확인을 받는 등 백방으로 뛰고 있으나,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는 여전히 완고하다. 러시아산 원료로 만든 제품을 수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2차 제재' 리스크 때문에 기업들은 선뜻 추가 계약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자국 화폐로 징수하겠다는 초강수를 두면서 중동 외 지역으로 도입선을 돌리려는 경쟁이 격화돼 물량 확보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자 오만 무스카트항 인근에 루오지아산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 ⓒ로이터=뉴스1 ⓒ 로이터=뉴스1
원유 거래단위 더 크고 물량 확보 경쟁 치열…불확실성에 신규 장기계약도 머뭇

나프타보다 심각한 것은 원유다. 나프타는 비교적 소량으로 쪼개서 구매하거나 중소형 선박으로 운송이 가능하다 하지만 원유는 대형 유조선(VLCC)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유연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현재 이란의 봉쇄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는 국내 정유사 물량 1400만 배럴을 실은 선박 7척이 고립된 상태다.

정부는 정유 4사에 2000만 배럴 규모의 '비축유 스와프(맞교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업이 해외에서 대체 물량을 선적한 것이 확인되면 정부 비축유를 먼저 내주고, 나중에 대체 물량이 도착하면 다시 채워 넣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재고 부족을 메우는 '돌려막기'일 뿐 근본 대책은 아니다.

특히 대체 원유 확보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중동 대신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원유를 가져올 경우 운송 기간이 기존 20일에서 최대 50일까지 늘어난다. 폭등한 해상 운임과 원료 가격은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자동차와 가전 등 핵심 산업의 부품 재고가 1~1.5개월분 수준"이라며 "6월 말까지는 비축유와 대체 물량으로 버틴다 하더라도 그 이후 상황은 낙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결국 에너지 공급망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해 온 구조적 취약성이 전쟁이라는 변수를 만나 실물 경제의 뇌관이 된 모양새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와 원유 수급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수액 팩 등 보건 의료용품부터 자동차 부품까지 산업 전반의 생산 차질이 도미노처럼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