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126원·경유 210원↑ '이례적' 폭등 왜…사재기? 담합?
휘발유·경유 전국가 3년만에 1800원 돌파…매일 20~70원씩 올라
소비자도 주유소도 '패닉 바잉'…호르무즈 봉쇄 發 '물가 폭탄'
- 최동현 기자, 한재준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한재준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못 본 기현상이다."
중동 상황 여파로 국제 유가 변동성이 급변하면서 국내 주유소 휘발유·경유 전국 평균 가격이 5일 나란히 리터(L)당 1800원을 돌파했다. 휘발유는 닷새 만에 126원이 올랐고, 경유는 무려 210원 급등했다.
주유소 기름값은 국민 일상과 직결된 필수 소비재 물가다. 정유업계에서도 "이례적인 폭등"이라는 반응이 나올 만큼 시장 불안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대응책 마련을 주문하는 등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정오 기준 휘발유의 전국 평균 가격은 L당 1821.98원으로 전날(1777원)보다 44.98원 올랐다. 경유의 전국 평균 가격은 L당 1811.03원으로 전날(1729원)보다 82.03원 뛰었다.
휘발유 전국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2022년 8월12일(1805.9원) 이후 3년 7개월, 경유 전국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돌파한 것은 2022년 12월12일(1807.38원) 이후 3년 2개월 만이다.
특히 물가가 높은 서울권 기름값은 휘발유 1882.85원, 경유 1883.47원으로 1900원대를 향하고 있다. 업계에선 "중동 상황이 장기화하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L당 2000원 선을 넘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이례적인 급등세다. 전국 평균가 기준 휘발유는 이달 1일 L당 1695.89원이었지만 이튿날(2일)엔 1702.07원, 3일엔 1723.04원, 4일엔 1777.48원으로 솟았다. 같은 기간 경유는 1600.85원(1일)→1607.39원(2일)→1634.62(3일)→1728.77원(4원)으로 폭등했다.
통상 기름값은 L당 일평균 소수점, 일주일 간격으로는 10원 안팎에서 변동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추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2월 말~3월 초에도 L당 100원이 오르는데 휘발유는 13일, 경유는 11일이 걸렸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없었던 이례적인 가격 상승"이라며 "국제 유가나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국내 가격에 반영되는 시차(1~3주)는 돌발적인 리스크가 있을 땐 주기가 빨라지는 경향이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초유의 상황"이라고 했다.
시장 내 불안 심리가 커지자 결국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임시 국무회의에서 "아직 객관적으로 심각한 수급 차질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리터당 200원 가까이 올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면서 "위기 상황을 이용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석유사업법 23조에 보면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최고 가격을 지정하도록 돼 있다"며 "오늘 오후 가격을 점검해 높은 경우 고시를 통해 최고가를 지정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가격 담합'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인데, 정유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유 업계는 '패닉 바잉'(공포 매수)과 국제 유류 제품 가격 급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국내 수입되는 중동 원유의 95%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전국 주유소와 대리점까지 '패닉 바잉'(공포 매수) 움직임이 이중으로 생겨났다. 또 주유소의 가격 재량권도 커졌지만 이는 정유사가 개입할 수 없는 변수라는 것이다.
먼저 국내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유가와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나눠서 따져봐야 한다. 국제 유가는 원유(두바이유) 그 자체의 가격,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원유를 정제·가공해 만든 상품(휘발유, 경유, 등유)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국제 유가는 통상 2~3주 뒤에 국내 가격에 반영된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도 국내 유가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긴 하지만, 중간에 유통비와 생산비 등 마진이 붙고 가격도 일주일 정도 선반영된다. 주유소는 정유사로부터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 휘발유와 경유를 받아와 소비자에 판매하는 구조다.
실제 국제 휘발유(92RON) 가격은 4일 기준 배럴당 99.66달러로 2일(90.31달러)보다 사흘 만에 10달러 가까이 올랐다. 경유는 4일 기준 배럴당 145.13달러로 2일(115.13달러)보다 26% 넘게 폭등했다.
항공유에 쓰이는 등유의 가격 상승세는 더 심각하다. 등유는 지난달 27일 배럴당 93.55달러로 100달러 미만이었지만, 이달 2일에는 116.44달러로 올라섰다. 4일에는 231.41달러로 전날(130.24달러)보다 하루 새 100달러 폭등했다.
소비자들은 유가 급등이 예상되자 서둘러 차에 기름을 채웠고, 주유소와 대리점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공급 차질이 예상되자 평소보다 빨리 기름을 받아두려고 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개별 주유소의 '가격 재량권'이 커진 것도 문제다. 평시에는 주변 주유소와 가격을 맞혀야 해 10원 안팎에서 가격을 조정하지만, 가격이 하루 50~70원씩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선 주유소의 재량권도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유소의 가격 재량권은 정유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관건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장기화 여부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은 국내 도입되는 중동 원유의 95%가 지나는 젖줄"이라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운항을 언제 허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여파의 크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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