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1호' 승인, 석화 구조조정 신호탄…지원 규모 '아쉽다'

민관 협력으로 빚어낸 '대산 모델'…설비 통합·고부가 전환 이정표
전기료 등 '핵심 갈증' 해소 숙제…여수·울산 '눈치 싸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6.2.25 ⓒ 뉴스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롯데케미칼(011170) 대산 사업장을 분리해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는 '대산 1호 프로젝트'가 정부의 승인을 받으면서 석유화학 산업 구조 개편이 본격 시작됐다. 정부가 총 10조 원 규모의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서 여수·울산 등 다른 산단으로 구조조정이 확산할지 주목된다.

석유화학 업계는 금융과 세제, 전기료 할인 등 다각도의 지원안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지원 규모에 대해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민관 협력으로 빚어낸 '대산 모델'… 설비 통합과 고부가 전환 이정표

정부는 25일 산업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대산 산업단지 내 롯데케미칼 사업장을 분리해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는 사업재편 계획을 최종 승인하고 2조1000억원 이상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110만톤 규모의 롯데케미칼 나프타분해설비(NCC)가 가동 중단 효과를 내게 되며 통합법인은 연내 설립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재편안은 단순한 설비 감축을 넘어 '정부-기업-채권단'이 공동 책임을 지는 구조조정 모델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1조2000억 원 증자를 통한 자구 노력을 약속했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은 신규 자금 1조원 지원과 1조원 규모의 영구채 전환, 7조9000억원 채무 상환 유예 등 금융 안전판을 마련했다.

비금융 부문에서도 △세제 감면 △인허가 간소화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에 따른 전기요금 4~5% 경감 △고용 지원 △연구개발(R&D) 투자 등 전방위 지원책이 담겼다. 특히 고탄성 경량 소재, 이차전지 전해액 용매, 바이오 기반 친환경 제품 등 고부가 분야로의 전환을 전제로 지원을 설계했다는 점에서 '조건부 지원' 원칙이 구체화했다는 평가다.

정부가 2028년 흑자 전환을 목표로 제시한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조정을 통한 단기 생존을 넘어 산업 체질 개선을 공식 목표로 명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감산과 고부가 전환을 동시에 요구하며 지원을 연계한 것은 기존과 다른 접근"이라며 "적어도 구조개편 논의가 선언적 수준을 넘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대산 1호 사업재편 구조. 롯데케미칼의 대산 사업장을 분리해, 기존 롯데케미칼-HD현대오일뱅크 합작법인인 'HD현대케미칼'에 합병시킨다. 합병 후 지분 구조는 5대5가 된다. 통합법인은 이후 NCC와 다운스트림(D/S) 설비 일부를 가동 중단, 생산량 감축을 진행한다. (산업통상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2.24/뉴스1
전기료 등 '핵심 갈증' 해소 숙제…여수·울산의 복잡한 셈법 풀릴까

그럼에도 이번 승인이 곧바로 전국적 재편 확산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여수와 울산 산단은 기업 간 이해관계와 신규 투자 변수 등이 얽히며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천억원대 자금 투입과 설비 감축을 둘러싼 셈법이 복잡한 만큼 대산 1호의 조건과 지원 수준이 일종의 '기준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지원 방안의 한계도 지적한다. 전기요금 부담 완화가 분산에너지특구를 통한 4~5% 경감 수준에 그치면서 업계가 요구해 온 직접적 요금 인하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4~5%의 경감 효과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고정비 절감에 사활을 건 다른 산단 기업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당기기에는 유인책이 다소 약하다는 지적이다.

금융 지원 역시 자구 노력을 전제로 한 구조여서 재무 여력이 취약한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감축 규모가 국내 전체 과잉 설비를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도 변수다. 대산 1호가 110만톤 NCC 가동 중단 효과를 내더라도 중국발 증설과 글로벌 수요 둔화라는 구조적 압박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미 여수는 기업 간 설비 감축 규모를 두고 줄다리기가 팽팽하고 울산은 에쓰오일의 대규모 신규 투자로 물량이 늘어날 예정이어서 기존 업체들의 감산 의지를 꺾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산 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다른 산단도 협상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지원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판단되면 다시 관망 기조가 짙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기업 자구 노력이 클수록 더 많은 지원이 가능하다는 정부 메시지가 실제 후속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구현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결국 대산 1호는 출발점일 뿐이다. 여수·울산이 뒤따라야 구조조정 효과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 정부는 "확실히 노력하면 확실히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으나 여수와 울산은 대산보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신구 설비의 격차가 얽혀 있어 사업 재편안 도출이 더딜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남은 산단의 재편 성공 여부는 이번에 마련된 '석유화학특별법'의 실효성과 향후 도출될 '화학산업 생태계 종합지원 대책'이 얼마나 기업들의 실질적인 비용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첫 단추는 끼워졌지만 연쇄 재편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후속 협상과 추가 지원 설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