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설명보다 채용 상담 먼저"…세미콘 2026 인재 쟁탈전 후끈

국내 소부장에 외국계 기업까지 가세…"인재 확보 산업 차원 과제"
삼성전자·SK하닉 사장단 총출동, 신기술 '신경전' 팽팽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세미콘 코리아 2026 원익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로봇 손 '알레그로 핸드' 등을 살펴보고 있다. 국제 반도체 제조 장비 재료 협회(SEMI) 주관으로 오는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반도체 기업 간 최신 기술·시장 동향을 공유하고 상호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열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엔비디아, 인텔 등 국내외 약 550개 반도체 기업이 참여했으며 부스는 2409개로 역대 최대 규모다. 2026.2.11 ⓒ 뉴스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삼성이나 SK만 보고 온 건 아니에요. 장비 회사들도 생각보다 많아서 상담을 받아보려고요."(동국대 기계공학과 윤모씨)"요즘은 기술 경쟁보다 인재 경쟁이 더 치열합니다. 오늘 부스에선 장비 설명보다 채용 설명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반도체 업계 관계자)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세미콘 코리아 2026' 현장은 인공지능(AI) 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열기를 증명하듯 인산인해를 이뤘다. 역대 최대 규모로 문을 연 세미콘 코리아가 반도체 기술 경연 못지 않은 '인재 쟁탈전'의 무대가 펼쳐졌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슈퍼 사이클 진입과 함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까지 우수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사실상 대형 채용 박람회장으로 바뀌었다.

사전 등록자만 7만5000명을 넘어선 이번 행사는 550개 기업, 2400여 개 부스 규모로 코엑스 전관과 인근 호텔까지 공간을 확장해 열렸다. 반도체 산업이 메가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기대감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고,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사람'이었다.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세미콘 코리아 2026를 찾은 관계자와 관람객 등이 길게 줄 서 있다. 국제 반도체 제조 장비 재료 협회(SEMI) 주관으로 오는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엔비디아, 인텔 등 국내외 약 550개 반도체 기업이 참여한다. 부스 규모는 2409개로 역대 최대 규모다. 2026.2.11 ⓒ 뉴스1 안은나 기자
소부장에 외국계 기업까지 뛰어든 인재 전쟁…"인재 확보 산업 차원 과제"

이날 전시 부스 현장에서 신제품 식각 장비 모형보다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채용 상담 진행 중'이라는 안내판이었다. 상담 테이블에는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한 중소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반도체 기업이 아니다. 소부장 기업이 없었다면 지금의 K반도체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우수 인재가 대기업으로만 쏠리면서 채용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 됐다"고 털어놨다.

실제 올해 세미콘 현장은 기술 홍보 못지않게 채용 홍보 열기로 달아올랐다. 세메스, 원익코퍼레이션, PSK 등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별도 채용 안내 공간을 마련하거나 현장 상담을 진행했다.

외국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램리서치, KLA, ASM, 도쿄일렉트론(TEL) 등 글로벌 장비 기업들도 한국 인재 확보에 공을 들였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전공 학생들의 기술 이해도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며 "오전에 이미 오후 채용 상담까지 마감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건국대에 재학 중인 한 취업준비생은 "대기업뿐 아니라 장비 기업들도 근무환경이 많이 개선됐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확인하러 왔다"며 "AI 반도체 시장이 커지는 만큼 기회도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다. 소부장 기업 관계자들은 '관심은 늘었지만 결국 삼성·SK로 쏠린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소부장 기업 1~3년 차 엔지니어 이직률은 대기업보다 2배 이상 높다. 숙련 인력이 성장하면 더 높은 연봉과 처우를 제시하는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한 소부장 업체 임원은 "HBM과 AI 반도체가 아무리 성장해도 허리가 되는 중견·중소기업에 사람이 없으면 생태계는 흔들린다"며 "인재 확보는 기업 차원을 넘어 산업 차원의 과제"라고 말했다.

송재혁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이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에서 '제타플롭스(ZFLOPS) 시대를 넘어, 다음 단계는?'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6.2.11 ⓒ 뉴스1 안은나 기자
삼성·SK 사장단 총출동… HBM 주도권 다툼 속 "생태계 협업" 한목소리

인재 확보를 향한 소부장 기업들의 사투가 벌어지는 사이, 기조연설 현장에서는 한국 반도체의 두 기둥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수장들이 기술 리더십 신경전을 벌였다.

송재혁 삼성전자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은 기조연설에서 6세대 HBM(HBM4) 양산 출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송 사장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대응했던 삼성의 원래 모습을 다시 보여주겠다"며 기존 대비 성능을 2.8배 높인 '삼성 커스텀 HBM'과 적층 한계를 극복한 'zHBM' 등 차세대 로드맵을 대거 공개했다. 현장에는 삼성의 투자 전략을 총괄하는 김용관 사장도 참석해 도쿄일렉트론(TEL), ASM 등 핵심 장비사 부스를 돌며 실질적인 설비 투자 집행을 위한 공급망 점검에 나섰다.

이성훈 SK하이닉스 R&D 공정담당 부사장이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에서 '메모리 기술의 전환점'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6.2.11 ⓒ 뉴스1 안은나 기자

SK하이닉스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이성훈 연구개발(R&D) 공정 담당 부사장은 "앞으로의 10년은 지금까지 없었던 기술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AI 기반의 R&D 전환과 협업 생태계 구축을 제안했다. 특히 그는 "데이터 관리와 AI 모델은 한 기업의 숙제가 아닌 생태계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하며 협력사와의 상생 모델인 '테크 플랫폼' 전략을 부각했다.

이번 '세미콘 코리아 2026'은 AI 시대를 이끌 HBM 등 첨단 반도체의 화려한 미래를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사람'이 없으면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산업계의 위기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1등 기업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소부장 기업들의 인재 갈증이 피부로 느껴졌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