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의 역설…제조업, 피지컬 AI 도입 더 빨라진다
[피지컬AI, 한강의 기적2.0]⑧ 제조업, 인건비·국경 한계 극복 가능
보호무역 확산에 제조업 현지화 필수…피지컬 AI로 리스크 최소화
- 박기범 기자, 박주평 기자, 신은빈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박주평 신은빈 기자 = 피지컬 인공지능(AI)이 '보호무역' 시대 제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제조업은 '현지 생산 체제' 구축이 필수다. 하지만 높은 인건비와 제조 인력의 숙련도는 현지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제조업체들은 피지컬 AI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표준화된 피지컬 AI를 투입하면 생산량과 품질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국경이 더 이상 제조업의 장애물이 되지 않는 셈이다. 인건비 상승과 노사 리스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장기적 관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국내 기업들이 피지컬 AI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 제조기업들은 이미 제조 현장의 자동화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을 피지컬 AI가 발전할 수 있는 최적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피지컬 AI 경쟁력은 제조 표준의 자동화에 있다. 반도체 DS 부문은 이미 대부분 사업장을 100%에 가까운 자동화 체제로 운영 중이다. 자동화 공정의 핵심 장비인 '오버헤드트랜스포테이션'(OHT)로, 반도체 공장 내부인 클린룸에서 반도체 웨이퍼가 담긴 상자(푸브·Foup)를 각각의 공정으로 옮긴다. 통합 관제 시스템에서는 실시간으로 OHT의 경로를 안내하고 운행 상태를 체크한다.
삼성전자는 나아가 엔비디아와 협력해 화성캠퍼스를 AI 팩토리로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공정→운영→장비→품질관리 등 모든 과정을 AI로 구동하고,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를 AI가 실시간 수집·학습·판단함으로써 수율 상승, 생산 일정 예측 정확도 향상 등 효과가 기대된다.
완성차 산업처럼 노동 집약도가 높은 분야에서는 피지컬 AI의 전략적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파업이나 인력 공백은 곧바로 생산 차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테슬라의 '옵티머스' 등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휴머노이드 로봇과 산업용 로보틱스에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첨단 제조시설 HMGICS(현대차그룹 싱가포르 혁신센터)를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와 현대차 울산 EV 전용공장, 기아 화성 EVO Plant 등 주요 생산 거점에 로보틱스와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근로자와 로봇이 협업하는 제조 환경을 통해 인력 변동성에 따른 생산 충격을 완화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SK그룹은 산업용 AI 전문회사 '가우스랩스'를 지난 2020년 설립한 이후 SK하이닉스의 제조 현장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AI 설루션을 개발했다. 가우스랩스가 개발한 가상 계측 AI 설루션 '판옵테스 VM'은 센서 데이터를 통해 제조 공정 결과를 예측한다. SK하이닉스는 이를 활용한 스마트팩토리를 통해 지난해 HBM 생산성을 31% 높이고, 관련 매출을 전년 대비 4.5배 끌어올렸다.
SK는 엔비디아 GPU와 제조 AI 플랫폼 '옴니버스'를 활용한 제조 AI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있다. 이 클라우드는 SK하이닉스 등 SK그룹 제조 분야 멤버사는 물론 정부, 제조업과 관련된 공공기관, 국내 스타트업 등 외부 수요처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될 예정이다.
LG전자는 피지컬 AI의 효과를 가장 명확한 숫자로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WEF) 등대공장으로 선정된 창원과 미국 테네시 공장은 AI·IoT·빅데이터를 공장과 공급망 전반에 통합했다. 그 결과 생산성 17% 개선, 에너지 효율 30% 향상, 품질 비용 70% 감소라는 성과를 냈다.
LG가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축적한 제조 AI와 스마트팩토리 노하우를 외부 기업에 공급하며 사업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피지컬 AI가 내부 효율화 단계를 넘어 새로운 B2B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같은 AI 중심의 제조업 변화는 생산 효율 제고에 그치지 않는다. 미·중 갈등과 각국의 산업 보호 정책 속에서 관세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생산기지 현지화 압박에 대응할 전략적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공장을 옮기는 순간 발생하는 비용이다. 숙련 인력 확보와 노무 리스크, 생산 안정화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전 결정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다. 피지컬 AI는 이 구조적 약점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공정 판단과 운영의 상당 부분을 AI가 담당하면서 임금 수준과 노동 숙련도, 노사 환경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진다.
제조 경쟁력의 중심이 사람에서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이동할수록, 보호무역 환경 속 기업의 전략적 선택지는 넓어진다. 인구 감소와 보호무역이 상수가 된 시대에, 사람과 국경에 덜 묶인 제조 시스템을 누가 먼저 구축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피지컬 AI는 위기를 견디는 비용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선택지를 넓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pkb1@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피지컬 AI. 인공지능 로봇을 포함해 움직이는 AI를 뜻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피지컬 AI가 산업·생활 전반에 투입돼 경제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자동화 공장부터 신약개발, 건설 등 활용범위에 한계가 없다. 경부 고속도로가 한강의 기적을 일궜듯 일하는 AI는 인구절벽·생산성 저하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유력한 해법이다. 제조업(몸체)·반도체(두뇌)·통신(신경망) 삼박자를 갖춘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2.0' 성공 공식을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