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구금 사태 일단락 수순…더 복잡해진 대미투자 방정식
'불합리한' 비자 민낯 드러나…생산시설 준공 지연으로 부담 늘어
美 제조업 생태계 새로 꾸려야…미국 투자 기업 고심 또 고심
- 박기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미국에 구금됐던 300여명의 우리 근로자가 조만간 풀려날 예정이어서 사태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기업인들의 미국 출장에 제동이 걸렸고 현지에 건설 중인 생산시설 완공 일정도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른 비용 부담도 기업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대목이다.
특히 미국 출장에 단기 상용 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이용했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면서 비자 문제가 정리될 때까지는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 또 이번 단속이 공장 가동 이후는 물론 공장 건설 과정에서도 현지인 채용을 압박하는 차원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도 부담이다.
조지아주 포크스턴 시설에 구금된 우리 국민 300여명을 태울 대한항공 전세기가 10일 오전 10시 21분쯤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전세기는 11일 오전 3시 30분(현지시각으로 10일 오후 2시 30분)쯤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순연됐다. 외교부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조지아주에 구금된 우리 국민들의 현지시간 10일 출발은 미국 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며 "가급적 조속한 출발을 위해 미국 측과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언급한 '미국 측 사정'이 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20년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베터리아메리카의 미국 현지 공장에서 협력업체 소속 한국인 근로자 10여명이 관광비자로 일하다 체포된 후 구치소 수감 15시간 만에 풀려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미국 재입국과 관련해 추가적인 불이익을 받지 않게 미국과 대강의 합의도 한 상태다.
우리 국민에 대한 구금 사태는 해결 국면이지만 기업들 입장에선 투자 계획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투자가 진행된다면 제2의 조지아 사태가 또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 현지 인력까지 충원하려면 시간도 걸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비용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대미 투자 방정식은 복잡해졌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비자 문제다. 이번과 같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선 전문직(H-1B)이나 주재원(L1·E2) 비자를 이용해야 하는데 절차를 거치는 데만 최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향후 미국 내 우리 국민의 안전과 기업의 원만한 경영 활동을 위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비자 쿼터 확보 등 구조적 문제 해결에 관심과 지원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역시 미국과 비자 제도 개선을 협의 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에 생산시설을 마련하면 원청뿐 아니라 하청기업도 함께 해야 하는 구조"라며 "직원들이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누가 미국으로 가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 역시 현재의 비자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전문가들을 데려와 우리 국민이 훈련받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우리는 전체 상황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미 투자와 관련해 외국 기업들이 전문 인력들을 미국으로 데려올 경우 비자 발급 확대 및 비자 발급 시스템 개편 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조지아주 공장에서 발생한 단속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규칙이나 비자 규정, 법적 조항 등에 변경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국토안보부와 상무부가 이 문제를 공동으로 검토 중이라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예상되는 미국 내 생산시설 준공 지연과 비용 상승은 기업들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미 간 관세 협상을 통해 우리 기업들은 미국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기존에도 미국 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등의 투자는 꾸준히 이뤄졌다.
미국 정부의 단속 대상이 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은 내년부터 가동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가동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배터리를 공급받을 예정인 완성차 업체의 생산 일정 역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따라 우리나라의 조선 분야 숙련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데 기업들은 이번 사태 파장으로 출장을 자제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미국 투자 계획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예정됐던 일정은 밀리지 않겠느냐"며 "이는 비용 문제로 연결되기에 기업들의 애로 사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조업 생태계를 새로 꾸리는 동시에 기술 유출도 차단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한미 관세 협상으로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하기로 한 우리 기업들의 고심은 미국의 인건비는 비싼데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결국 비싼 비용으로 인력을 고용해 교육까지 해가면서 제조업 생태계를 다시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유한 양산을 위한 응용 기술 유출도 막아야 하는 처지다. 미국이 비자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언급한 미국 인력에 대한 교육은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기업들 입장에선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양산을 위한 응용 기술이 일부 유출될 수밖에 없다"며 "다만 미국의 원천 기술이 강하기에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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