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100일]재계 '내우외환'…규제 혁파 기대가 실망으로
노조법·상법 등 '기업 옥죄기' 법안 줄줄이…경영권 위협 위기감
해외 경쟁도 버거운데 안에서까지…'채찍 아닌 당근 필요'
- 박기호 기자,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김성식 기자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우리 기업이 체감하는 고충은 상상 이상이다.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데 기업들을 옥죄는 법안이 잇달아 통과되면서 경영 환경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경제계와 소통을 빠르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대가 컸는데 주요 입법 사안에 대해선 기업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에 대한 경제계 평가를 요약한 말이다. '트럼프 관세'와 중국의 추격 등 해외 요인만으로도 힘든데 우리 정부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상법 등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경제계가 제시한 각종 우려와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으면서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상호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 등에 경제계가 총력 지원에 나섰지만 돌아오는 것은 당근이 아닌 채찍이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고 배임죄 등 과도한 경제 형벌 개선을 약속한 데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경제계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이뤄진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을 대표적인 기업 옥죄기 법안으로 보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제계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사용자 지위 기준으로 기업인의 경영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지속해서 제기했다. 두 차례 이뤄진 상법 개정은 이사회 책임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업들은 경영권 분쟁과 소송 리스크가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경제계는 당초 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기에 '무조건적인 반대'보다 대안을 제시하면서 절충을 시도했다. 하지만 속도전으로 빠르게 입법이 된 데다 경제계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반응이 많다.
한 재계 관계자는 "상법과 노조법 개정에 대한 우려가 너무 큰데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법이나 상법 개정은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당연한 제도화 수순으로 봤지만 생각보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급박하게 이뤄졌다"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기업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 당시 재계의 큰 어른으로 불리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경총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에 나섰는데도 입장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정부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손 회장이 요청한 사용자 범위 현행 유지, 사업 경영상 결정 노동쟁의 대상 제외, 시행 1년 유예 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당장 노란봉투법은 시행 전임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팽배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노조의 쟁의 투쟁 활동을 기업은 넋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자동차 산업은 1~2개 부품업체에서만 파업해도 전체 완성차 생산이 중단될 수 있어 좌불안석인 상황이다. 임단협 시 기업이 기댈 곳은 이제 노조의 선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와 기업들의 대미 투자 약속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 공동화 위기가 현실화한 마당에 노조법 개정으로 쟁의 행위에 기름을 붓게 됐다"며 "최소한 파업 시 대체 근로를 허용하는 등 기업이 대비할 수 있는 카드라도 함께 제시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협력 업체가 많은 조선 산업에서도 비명이 나온다. 조선업의 경우 납기 지연 시 고객사에 1척당 수백억 원의 지연 배상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해외 고객의 신뢰를 잃어 수주 경쟁력이 약화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노사 관계에서 지나치게 노조 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불만도 감지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노동계 숙원 사업을 풀어주면서 정상적인 회사 운영에 필요한 방패는 주지 않았다"며 "기업이 살아야 국민도 살아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가 부서 약칭을 고용부에서 노동부로 변경하지 않았느냐"며 정부가 친기업이 아닌 친노동계 행보를 보인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성공적인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마련했고 이 대통령 역시 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경제계가 몸서리치는 규제를 밀어붙이는 행보는 모순됐다는 반응도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이 대통령이 기업과 소통을 확대하고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제도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나와줘야 하는데 아직은 실체가 없이 뜬구름 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대재해 근절을 위해 정부가 산업재해에 칼을 빼 든 데 대해서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강력한 처벌 기조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건설경기가 최악의 상황인데 기업들을 더욱 위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로 건설사 임원진이 전원 사표를 제출한 것을 지적하면서 "과도한 기업 때리기 결과"라고 꼬집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완전히 100%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악은 막았다"며 "불확실성이 일부 진정된 점은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적극적인 소통 등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취임 후에 경제계 인사들과 여러 차례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 현장을 찾아 K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를 밝힌 점 역시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재계는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경제계에선 기업의 성장을 막는 규제 철폐를 비롯해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에 방점을 둔 중대재해 감축 방안 등을 지속해서 요청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기업은 자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데 우리나라 기업은 각종 규제 등으로 몸이 무거워 보인다"며 "지금이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어렵게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대적인 지원을 해야 할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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