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장비 '제동'…삼성·SK하닉, 中 공장 생산확대 차질 우려

美, 삼성전자·SK하이닉스 中법인 반도체 장비 반입 허용 철회
미중 패권 경쟁에 새우등 터지는 형국…품목관세 불안감 여전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촬영한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 AFP=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중국 공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정부가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 허용을 철회하면서 생산 확대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조치가 현실화하면 중국에서 고성능 칩을 생산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

이미 미국의 반도체 품목 관세 조치 가능성이 제기되고 미국 정부가 이들 기업에 약속했던 보조금 지급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위기감이 커져만 가고 있는 형국이다.

수십조원 쏟아부었는데…중국 반도체 공장 장비 반입 제동

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법인을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다. VEU는 미국의 개별 허가 없이도 미국으로부터 특정 품목을 반입할 수 있는 예외적인 지위다.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를 들여올 때마다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의 경우 관보 정식 게시일인 9월 2일부터 120일 후인 오는 12월 31일부터 시행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중국에 막대한 설비 투자를 했고 그 결과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의 30~40%,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D램 전체 생산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텔에서 인수한 다례의 낸드 생산법인 역시 VEU 명단에서 제외됐다.

VEU 지위 상실이 현실화하면 우리나라 주요 반도체 기업의 중국 공장에 사실상 첨단 장비 도입이 어려워지고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 공장에선 주로 범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추후 첨단 공정 전환 역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위기는 우리나라의 수출 성적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중대 현안인 까닭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발표한 '2025년 8월 수출입동향(잠정) 결과, 8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 늘어 3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역대 8월 중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배경에는 반도체 수출액이 151억 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면서 전체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와 VEU 명단과 관련해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자부는 "그간 미국 상무부와 VEU 제도의 조정 가능성에 관해 긴밀히 소통해 왔다"며 "우리 기업에 대한 영향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 전경. (SK하이닉스 제공) ⓒ News1 DB
반도체 품목 관세 위기감 여전…美 정부 보조금 지급도 불투명

반도체 업계를 강타한 위기는 이뿐이 아니다. 미국의 반도체 품목 관세 등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관세 문제는 여전히 숨어있는 복병이다. 미국이 반도체 품목의 경우 우리나라에 대해선 최혜국 대우를 약속했다고 하지만 문서화가 이뤄지지 않아 업계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철강 파생제품에 대한 관세로 전자업계는 올해 2분기부터 직격탄을 맞았기에 반도체 역시 품목 관세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미 투자에 대해 약속했던 보조금 문제 역시 불투명하기만 하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 2곳과 R&D 시설 1곳 등을 짓기로 하면서 37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미국으로부터 47억 50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인디애나주에 HBM 패키징 공장과 R&D 시설 설립을 발표하면서 38억 7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투자에 따른 보조금은 4억 5800만 달러다.

보조금 지급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류가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약속을 뒤집으려 하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에 대한 칩스법 보조금을 전액 출자로 전환, 10% 지분을 확보하기도 했다.

주요 기업 수장들은 이처럼 불확실성이 만연한 상황을 맞아 광폭 행보를 예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31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출장 소감과 미국의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반출 규제 등을 묻는 말에 "일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함께한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현지에서 반도체 시장 점검 등을 한 것으로 보인다.

goodd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