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난제 앞에서, AI는 창조보다 예측을 묻는다[혁신의 창]

(서울=뉴스1) 전영준 성균관대 생명공학부 부교수 = 세계적인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예고되자 기계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인간 바둑계 최정상급 기사가 인공지능에게 완패를 당하면서 인간계는 '충격'을 받았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인간 지적 능력의 불가침 영역에 기계가 도달할 수 있다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밤하늘의 별처럼 무한에 가까운 수가 존재하는 바둑이라는 영역에서의 패배는, 정량적 계산을 넘어 직관적 판단이라는 인간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영역에서 조차 기계적 예측성과 계산가능성이 인간 능력을 앞설 수 있음을 입증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후, 인공지능은 보다 고차원적인 과학의 지형으로 진입했다. 구글 DeepMind의 AlphaFold와 미국 워싱턴 대학의 RoseTTAFold는 단백질 구조 예측이라는 생물학의 오랜 난제에 대한 실질적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인공지능이 단순한 조력자적 요소에서 대체적 지능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와 같은 성취는 기술 효율성의 차원을 넘어, 인공지능이 지식 생산의 주체로 전환될수 있다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측형 인공지능 (Predictive AI)가 역시 존재한다.

정량화된 데이터를 산업화로 전환하는 실증 지성

오늘날 인공지능의 주 화두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다. GPT, Claude, Gemini, DALL·E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s)은 텍스트와 이미지, 코드 등 비정형 데이터에서 창의적 출력을 생성함으로써 인간-기계 상호작용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탐구, 특히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는 이러한 흐름과는 다소 특이적이며 상이한 요구조건을 갖는다. 즉, “창의성”이나 “표현력”보다 실험적 검증 가능성, 통계적 유의성과 예측의 재현성, 그리고 모델의 일반화 가능성이 본질적 가치로 작용한다.

예측형 인공지능은 정량화된 각종 생체 데이터(Multi-omics 데이터, 임상 생화학 지표, 환자군 표현형 등)들을 기반으로 생명현상의 원인-결과 구조를 모델링하고 분석한다. 특정 유전자군의 돌연변이 및 발현 양상에 따른 발병 가능성 예측, 환자의 약물반응성 사전평가, 질병 진단 및 예후 분석등이 대표적인 응용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 및 생명과학 데이터는 절대 표본 수의 부족, 데이터의 이질성과 노이즈, 생명현상의 복잡성에 기인한 데이터 정형화 오류 등으로 인해 인공지능 모델들은 과대적합(overfitting)에 쉽게 노출되며, 일반화된 성능확보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정 인공지능 접근방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는 생성형과 예측형 AI의 상호보완적 활용, 그리고 기계학습·딥러닝 기반 예측 모델의 고도화 및 설명가능한 인공지능 전략의 병행이 요구된다. 즉 실용적 예측성과 임상적 적용 가능성, 그리고 산업적 전환 가능성은 바로 이 교차점에서 확보 및 실현 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생성형 인공지능이 집단지성으로 기능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기술이 지닌 창의적 생성능력을 넘어, 일반화 가능하고 높은 정확도가 요구되는 생명, 의학분야의 인과추론적 영역을 보완 할 수 있는 예측형 인공지능의 전략적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즉, 이는 곧 과학적 정확성과 임상적 책임성이라는 실증지성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생태계 전환의 관문이기도 하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예측형 인공지능의 미래

기술은 단지 기능적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서 요청되고, 작동하고, 해석되는가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는 재구성된다. 지금 우리는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파동 속에 있다. 그러나 진정 사회적 가치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럴듯한 문장”을 생성하는 것 이상을 요구받는다.

생명현상의 복잡하고 실존적인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더 정확한 예측, 더 높은 신뢰성, 더 깊은 해석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특히 생명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의료 영역에서, 기술은 단순히 문제를 푸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론적·윤리적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실천적 지성으로 작동한다.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영생의 삶’보다, (물론, 영생이 신의 축복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문 사회과학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를 여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기술과 과학에 부여해야 할 현실적 소명이다.

그러한 전환점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 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긴급하고 본질적인 연구주제는 무엇이며, 그에 적합한 인공지능 전략과 기술적 설계는 어떤 것인가?”

오늘날 유엔 분류기준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인구구조의 근본적 전환은 질병 패턴의 변화, 만성질환 증가, 치료 접근성 불균형 등 생명현상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동반한다. 여기에 더해, 신약개발의 실패율과 비용, 고위험 질환군의 표적치료 한계, 의료자원의 불균형 등은 기존 과학기술 체계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난제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이 가진 해석 가능성과 정합성, 그리고 정량적 데이터 기반의 실증적 분석력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산업화 설계가 요구된다.

이에 예측형 인공지능은 단순한 분석 툴이 아닌 바로 그 접점에 있으며, 지식 기반의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는 플랫폼이자, 정밀의료, 지능형 헬스케어, 약물 재창출, 유전체-환경 상호작용의 통합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일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각종 영역에 대한 지평을 넓혔다면, 예측형 AI는 생명의 복잡성과 질병의 불확실성을 조율하는 미래 전략의 핵심 축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더 깊이 예측하고 더 정확히 해석하는 AI” 그리고 “그 기술을 통해 보다 나은 인간의 삶과 존엄한 죽음을 설계할 수 있는 과학적 윤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의 환상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책임이다.

예측형 인공지능은 바로 그 질문에 가장 정직하게 응답할 수 있는, 오늘날 가장 현실적인 도구다.

◇전영준 성균관대 생명공학부 부교수

△오하이오 주립대 박사(종양유전체학)

△Nature, Cancer Discovery 등 저명 저널 16편 발표

△NIH/TRDRP 등 국제 펠로우십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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