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벽 허문 대한항공 1기 파일럿, 35년 꿈에서 깨다[금준혁의 온에어]

대한항공 이문재 기장…항공정비에서 민간 출신 1호 조종사까지
지난달 말 정년퇴임…"다시 태어나도 비행, 꿈도 하늘에서 꾸겠다"

편집자주 ...하루에도 수십만명이 오가는 공항, 하루하루가 생방송입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비행기와 승객이지요. 이 수많은 '설렘'들을 무사히 실어나르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항공사와 공항의 온갖 조연들이 움직입니다. 이들에게서 듣는 하늘 이야기, '온에어'입니다.

대한항공 이문재 기장(대한항공 제공)

(서울=뉴스1) 금준혁 기자 = 조종사가 군(軍)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있었다. 민간 기업임에도 자체적으로 조종사를 육성할 수 없어 공군 출신 조종사가 민항기 운항을 도맡던 시절이다.

1989년 처음으로 그 벽이 깨졌다. 대한항공이 출범 20년만에 민간인 조종사 양성에 나선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500명의 민간인 중 45명을 선발해 제주 비행훈련원에서 KAL(대한항공의 약칭)맨을 키웠다. 대한항공 1기이자 대한민국 1호 민간 출신 조종사들이다.

◇35년 KAL맨 이문재 기장…"천운 따른 내 삶"

지난 5월24일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에서 35년의 비행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앞둔 1호 KAL맨 이문재 기장을 만났다. 그는 5월 26일 미국 아틀란타 노선을 끝으로 지난달 31일 정년퇴임을 했다.

하늘에서 일평생을 보낸 자신의 삶을 '천운'이 따랐다고 표현한다. 그냥 운도 아니고 하늘이 내려준 천운이다. 뱃사람이 바다에 경외심을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조종사는 감히 꿀 수조차 없는 꿈이었다. 그의 시작도 항공정비에서 비롯된다. 82년도에 한국항공대를 기계공학과로 입학하고 헬기 정비병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이곳에서 첫번째 천운을 만났다. 원주 비행장에서 사령관 전용기를 정비하고 함께 타는 승무병이 된 것이다. 대학교에서 이론으로만 접했던 비행기를 직접 정비하고, 정비한 비행기를 직접 타본 시기가 바로 이때다.

비행을 알게 된 시기라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대한항공에서 조립한 500MD의 정비 교본을 자대에 가서 번역했다"며 "(한국어 교본이 없어) 두달동안 영한사전을 펼쳐놓고 공부를 했는데 '비행기가 이런 거구나', '항공 용어가 이런 거구나'라는 걸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이후 조종사로서 비행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조종사 교육체계가 발달한 지금은 더더욱 정비사 출신의 조종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전역 후에도 민간 출신으로 조종사가 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육군 준사관을 지원하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조종사를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막자는 생각에서 대학을 우선 졸업하자고 했다"며 "1987년부터 정비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듬해 대한항공 제주 비행훈련원 모집 공고가 나왔고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던 하나하나의 갈림길에서 천운이 그를 운명처럼 하늘길로 인도한 것이다.

대한항공 이문재 기장(대한항공 제공)

◇'하늘의 여왕'과 함께한 전성기…"아버지는 외계인이었다"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불혹(不惑)과 하늘의 명을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의 사이, 그가 꼽는 전성기다.

이 기장은 "나이로 따지면 46세에서 51세가 모든 면에서 전성기였다"며 "당시 탔던 B747-400에 추억도 많고 애정이 특히 간다"고 했다. 반세기동안 하늘을 누비다 올해를 끝으로 생산이 중단된 '하늘의 여왕' B747은 그의 오랜 벗이다. 6년간 B747-400의 조종대를 잡았고 8년간 A380을 몰다 퇴임 전까지도 후속작인 B747-8로 돌아와 조종석을 맡았다.

그렇게 2만시간을 사고없이 하늘에서 보낸 그에게도 아쉬움은 남는다. 아이들에게 '외계인' 같은 아버지였다고 말한다. 이 기장은 "지금 되돌아보면 항상 나를 위주로 생활했다"며 "애들이 어릴 때 엄마가 잠깐 재우고 시장을 갔는데 엄마가 안보이니 울었다. 아빠가 옆에 있어도 (낯서니) 계속 울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서운함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아빠의 감으로 안다"며 "여행도 졸업식도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섭섭함 대신 아버지의 길을 택했다. 그는 "첫째를 말리기 위해 다른 학과도 보내봤지만 대학원을 졸업할 때쯤 결국 파일럿을 도전하겠다는 큰아들을 말릴 수 없었다"며 "힘든 길인 것을 알기에 부모 입장에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마저도 지난해 조종사의 길을 향해 떠났다. 선배 기장이자 아버지인 이 기장은 두 아들을 막는 대신 훗날 대한항공의 기장이 되길 바라며 먼발치서 응원하고 있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두 아들을 얘기하는 아버지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대한항공 이문재 기장(대한항공 제공)

◇"비행 관둘 준비 아직 안돼"…마지막 여정 나선 영원한 KAL맨

지금도 1989년 제주도 훈련원에서 처음으로 했던 8분짜리 단독 비행을 잊지 못한다. 그는 "통과하지 못하면 짐을 싸야 하니 절실했다"며 "산 한 바퀴를 도는데 왜 이렇게 긴지 80분을 난 것 같았다"고 웃었다.

조종대를 놓는다는 일, 상상할 수 없었다. 이 기장은 "지난해 11월 정도 되니까 정년 퇴임이 와 닿았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비행을 관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천운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퇴임 후 최대 3년간 단기계약으로 대한항공에서 계약직 조종사로 근무하는 재채용 심사를 봤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탓에 1년 단위로 하는 신체검사도 6개월마다 진행해야 하고 문제가 있을 시 즉시 퇴직해야 하는 등 여러 제약이 따른다.

더 비행하고 싶었다는 결심이 확고했다. 그는 "스무살부터 항공을 시작해 40년이 넘었다"며 "한길을 걸어왔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비행을 할 것 같다. 꿈을 꿔도 하늘에서 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문재 기장은 바람대로 재채용 심사에 통과해 오는 6월7일부터 마지막 3년의 여정을 시작한다. 누구보다 하늘에 가까웠던 그의 천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rma1921k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