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항공기 ‘엔진장이’…“정직한 정비, 수백명 목숨 달려있죠”

[명장을 만나다-김용기]41년간 대한항공 20여종 항공기 엔진 정비담당

김용기 대한항공 항공기 엔진 정비 명장 ⓒ News1

(서울=뉴스1) 류종은 기자 = "자동차는 운행 중에 고장이 나면 세워서 정비를 할 수 있지만, 항공기는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고장을 예방할 수 있는 정비가 필요합니다. 이상징후가 보이는데 내가 조금 편하자고 지나쳐 버리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를 정비할 때는 정직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에 위치한 '대한항공 원동기 정비공장'에서 만난 김용기 대한항공 명장(60)은 항공기의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 정비를 책임지고 있다. 특히 30여년간 공항에서 발생하는 긴급상황을 수습하는 '5분 대기조'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고를 예방했다고 자부했다.

김 명장이 대한항공과 연을 맺은 것은 4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74년 2월 한독실업고등학교(現 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항공기 도장이나 랜딩기어의 타이어 정비 등을 배웠다. 하지만 그해 가을 공군에 입대하면서 항공기 엔진 정비 실무를 맡게 됐다.

김 명장은 "대한항공에 입사했을 당시에는 정비 업무를 300여명이 맡고 있었고, 점보기는 1대밖에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며 "당시 공군과 대한항공이 협약을 맺으면서 공군 기술병으로 입대하면 공군 경력을 인정받으면서 복직까지 보장됐고, 덕분에 그때부터 '엔진장이'가 됐다"고 말했다.

김 명장은 40여년간 근무하면서 20여종의 비행기에 들어가는 1000여개의 엔진을 정비했다. 과거 대한항공의 주력기였던 B707, 화물기인 DC10, '점보기'라고 불리는 B747, 대통령 전용기 등 국내에서 운항했던 대부분의 항공기 엔진은 그의 손을 거쳐간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항공기 엔진은 1만6000여가지의 부품이 들어간다. 디지털 장비와 아날로그 장비가 복잡하게 섞여 있어서 기종이 바뀔 때마다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해야 한다.

김 명장은 "새로운 기종이 들어올 때마다 항공기, 엔진, 부품 등에 대한 교육을 하는데, 그것을 이수해야 정비를 제대로 할 수 있고 자격도 갖출 수 있다"며 "40여년간 계속해서 공부하고, 교육을 받다보니 웬만한 엔진에 대해서는 빨리 이해하고 정비할 수 있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김 명장은 운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엔진에 이상이 생겼을 때 '응급처치'를 하는 '엔진정비지원반'에 근무했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전에는 김포국제공항에서 근무했고, 2001년부터는 인천국제공항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당시 그의 주요 업무는 빠르고 정확하게 엔진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당장 날아가야 했다.

김 명장은 "2000년 3월 싱가포르 공항에서 DC10 화물기가 착륙할 때 새가 엔진에 빨려들어가는 바람에 엔진이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해 급히 출장을 간 적이 있다"며 "늦은 밤 도착해서 다음날 오후 2시까지 엔진 정비를 마쳤는데, DC10의 엔진은 높이 12m 정도 되는 곳에 장착돼 있어서 정비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후배에게 B777-300ER 정비에 대해 알려주는 김용기 명장ⓒ News1

그는 항공기 엔진 수명이 '무한대'라고 설명했다. 통상 2만시간의 비행을 마치면 완전 분해해서 정비를 받는다. 이때 수명이 다된 부품은 새걸로 바꾸고, 나머지 부분을 수리해서 '새 엔진'으로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자동차는 10년 타기 힘들지만, 항공기는 30~50년 운항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2만시간이 되기 전에도 중간검사를 받고, 매번 운항을 마치고 나면 크고 작은 검사를 받는다.

김 명장의 인생도 2만시간을 채우고 새롭게 태어나는 항공기 엔진과 닮아 있다. 그는 2011년 8월 37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했다. 하지만 한달여 만에 회사에서 재채용했다. 명장으로서 회사에 남아 후배들에게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전해 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공항이 아닌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대한항공 원동기 정비공장'에서 B777-300ER에 장착되는 엔진 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0년 사내 명장제도를 만들었다.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현장 근무경력이 20년이 넘으면서도 그룹장 이상의 보직에 임명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철저하게 현장 경험을 쌓은 사람만이 '명장' 타이틀을 달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내에서는 '명장=현장 전문가'로 통한다. 또 품성도 탁월해야 한다. 최근 3년간 근무성적이 우수해야 하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 하는 등 다른 직원들의 모범이 돼야 한다.

명장을 선발하는 과정도 몹시 까다롭다. 우선 명장으로 추천할 만한 직원이 있을 경우 팀장급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기술능력을 평가한 후 최고의 기술 능력 소지자를 뽑아 '명장'의 타이틀을 부여한다. 명장이 되면 회사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별도의 명장복을 입을 수 있으며 정년 퇴직 후 만 60세 이전까지 본인이 원할 경우 우선적으로 재채용된다. 다시 채용될 경우 기존의 호칭과 복장은 그대로 통용된다.

김 명장은 2001년 선정된 대한항공의 4번째 명장이자, 마지막 명장이다. 대한항공에서 현재 사내 명장제도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김 명장은 유능한 후배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5호 명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바람대로 최근 회사 측에서도 명장제도를 부활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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