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 오징어 수출1위 한국…지금은 '수출강국'
'59년 美스웨터 300장이 첫 수출품...2011년부터 4년째 '1조달러' 달성
- 박기락 기자
(서울=뉴스1) 박기락 기자 =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역사는 수출의 성장와 궤를 같이한다. 광복직후 한천, 중석 등 천연자원이 중심이었던 우리 수출품목은 현재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등 첨단기술 중심으로 변모했다. 한국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수출을 통해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과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 수 있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수출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1940~1950년대...수출 태동기
1940년대 한국경제는 행정부재로 인한 혼란과 산업기반의 북한 편중으로 자립경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수입 원조 중심의 열악한 상태를 이어갔다. 당시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품은 한천, 중석과 같은 천연자원과 경공업 상품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국과의 정크무역, 일본과의 밀무역의 성행으로 국내 무역 업체들의 수출애로 해소관련 건의가 빗발쳤다.
정크선 무역을 제외하고 광복 이후 최초로 우리나라에 입항한 무역선은 '페리오드호'다. 1947년 인천항에 입항한 이 배는 마카오로부터 식염 2100톤, 생고무 45톤, 캐나다지(紙) 40톤과 기타 긴급물자 500톤을 적재하고 있었다. 1년 후인 1948년 2월 우리나라 국적 최초의 무역선 앵도환이 부산항을 출항했다. 이 배에는 홍콩과 마카오로 향하는 건어물과 한천이 실려있었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 후 원조수입이 급증하면서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수출입균형 정책, 경제 부흥이 중요 과제로 떠오른 시기였다. 수출품은 여전히 중석과 같은 광산물과 쌀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1959년에는 1980년대까지 주요 수출품목에 이름을 올린 섬유 수출이 최초로 이뤄졌다. 지금의 혜양섬유 전신인 동광 메리야스공장에서 미국에 스웨터 300장을 선적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섬유 수출이다.
◇1960~1990년대...본격적인 도약기
1960년대는 수출입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온국민이 수출에 매달려 한국경제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시기다. 여전히 주요 수출품은 철광석, 중석이었지만 가발, 신발과 같은 공산품을 비롯해 선박과 석유화학 제품의 최초 수출이 이뤄지기도 했다.
1970년대 도약의 기폭제가 된 수출진흥법 공포(1962년), 내국신용장제도 채택(1965년), 수출업체 조세감면(1965년) 등 다양한 수출진흥책도 1960년대 마련됐다.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우리나라가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중요한 시발점이 됐다.
1964년 수출 1억달러를 기록한 우리나라는 1977년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게 된다. 1970년대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국제통화질서의 재편으로 인한 국내경기 둔화를 수출로 극복하고자 온국민이 수출목표 달성에 역량을 결집했던 시기였다.
1975년에는 종합무역상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삼성물산이 종합무역상사 제1호로 지정됐으며 이듬해 7월에는 에콰도르에 포니 자동차 5대를 수출하며 우리나라 최초로 자동차 수출이 이뤄졌다.
1980년대는 2차 오일쇼크의 영향과 정치적 불안에서 벗어나 개방화, 자유화 정책이 강력히 추진된 시기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국제금리, 달러가치, 국제유가가 한꺼번에 하락하는 이른바 3저 현상에 힘입어 1986-1989년 4년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선박, 의류, 신발이었다. 미국, 일본과의 교역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대미무역흑자 증가로 미국의 수입규제 강화, 원화절상, 대일 무역적자 등이 중요 현안으로 부상했다.
1990년대 우리 경제는 OECD가입, 수입자유화 등 개방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의 수출이 본궤도에 진입했으며 1995년 수출 1000억 달러를 달성하는 성과도 거뒀다. 반면 중국, 아세안(ASEAN)의 추격이 더욱 거세지고 무역수지 적자의 급증으로 사상초유의 외환위기를 겪는 등 어려움도 겪었다.
1992년에는 우리나라가 최초로 휴대폰을 수출한 해다. 당시 수출된 휴대폰은 1988년 삼성전자가 개발한 애니콜 SC2000으로 이른 바 '벽돌폰'으로 불리기도 했다. 같은해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수교로 대중국 시장진출이 본격화돼 중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하지만 이듬해 중국이 긴축경제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대응방안을 강구한 시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수출산업도 변혁기를 맞게 된다. 당시 정부는 수출기업의 금융, 외환, 물류 등 종합적인 수출지원체제 를 구축해 수출확대에 총력을 기울였다.
◇2000년 이후, 무역 2조달러 시대 준비할 때2000년대 이후 세계경제 회복으로 우리나라 주요 생산품인 반도체, 휴대폰 등 IT제품과 자동차의 수출호조는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나라 수출은 2004년 2000억달러 돌파에 이어, 2006년에는 3000억달러, 2008년에는 4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 등 후발경쟁국의 약진으로 해외시장에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FTA 등을 통한 해외시장의 안정적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무역은 2011년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한 이후 세계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다소 부진했으나 2014년 무역규모는 2011년 실적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이후 4년 연속 무역 1조달러를 달성했으며 교역 순위도 9위에서 8위로 재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는 무역 1조달러 상회 국가 중에서 독일, 중국, 네덜란드에 이어 무역흑자 4위를 수성했다. 무역 상위 10개국 중 자원수출과 재수출입이 아닌 자국 제조기반으로 흑자를 이룬 나라는 독일, 중국과 함께 한국 정도다. 한편 선진국과의 경쟁 격화, 신흥국의 거센 추격으로 우리나라가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무역 2조달러 달성을 위한 새로운 무역전략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내수기업의 수출기업화,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통해 보다 많은 기업들이 수출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문화콘텐츠, 의료, 소프트웨어 등 서비스 산업의 수출산업화, 무역과 문화의 융합을 통한 수출상품 고급화 등을 통해 새로운 수출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및 활용을 통한 해외시장 확대, 신흥시장 개척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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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15년 을미년은 1945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되는 해다. 우리는 해방 후 분단과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 등을 거치며 고단한 삶을 이어온 동시에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눈부신 성취를 거둔 자랑스런 역사를 써왔다. 광복 70년 기획을 통해 땀과 눈물, 탄성의 궤적을 되짚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통찰을 찾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