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아성 흔드는 中 가전군단…기술력도, 스케일도 달라졌다

[IFA 2025 결산 下]中로청, 가성비 꼬리표 떼고 종합가전 진화
AI까지 탑재한 中 가전 빅3…쫓기는 삼성·LG, '초격차 전략' 시급

독일 베를린 IFA2025 중국 하이센스 부스에 전시된 RGB-미니LED TV 앞에 참관객들이 붐비고 있다.2025.9.5/뉴스1 최동현 기자

(베를린=뉴스1) 최동현 기자

"중국의 공세는 더 강해질 것이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이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 IFA 2025 전시장을 둘러본 후 "TV사업은 한국 업계가 다 어렵다"며 한 말이다.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는 LG전자 수장도 인정하듯 중국 가전업체의 추격이 매섭다. 올해 IFA에선 '아직은 한 수 아래'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중국 업체들은 인공지능(AI)과 프리미엄 사양으로 무장한 신제품을 보란 듯 쏟아냈다.

가성비 떼고 프리미엄 장착…'종합가전'으로 발돋움

IFA 2025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각). 중국 로봇청소기 업체 '로보락'의 부스에는 오전부터 세계 각국의 취재진 수백 명이 몰리며 북새통을 이뤘다. 대부분의 업체가 부스를 채 완성도 못한 것과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로보락이 신제품의 성능과 출시가를 공개할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내년 출시 예정인 '로보락 4 in 1 클리닝 콤보'도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세탁기·건조기·로봇청소기(쓸기·닦기) 4가지 기능을 한데 모은 제품으로, 세탁기를 로봇청소기의 '스테이션'으로 활용해 인테리어 완성도와 공간 효율을 동시에 높였다. 세탁기와 스테이션이 배수관을 공유하는 점도 특징이다. 국내 가전업계 관계자도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감탄했다.

로보락 4 in 1 클리닝 콤보 시연 장면.2025.9.4/뉴스1 최동현 기자

글로벌 로봇청소기 시장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은 후발주자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중국 '빅4' 업체(로보락·에코백스·드리미·샤오미)가 과반인 54.1%를 차지했다. 특히 로보락은 미국 25% 관세에도 북미 시장 출하량이 전년 대비 65.3% 급증하며 승승장구했다.

중국 로봇청소기 업체들의 '변신'도 감지된다. 한국 제품보다 싼값에 파는 가성비 전략을 버리고 '프리미엄'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로봇청소기뿐 아니라 세탁기·냉장고·TV·에어컨 등 대형 가전까지 손을 뻗으며 '종합가전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높은 기술력과 시장 장악력을 발판 삼은 것이다.

양산싱 드리미 글로벌 TV사업부 영업이사는 서유럽과 러시아 출시를 앞둔 100인치 미니 LED 4K TV 신제품을 소개하며 "올해부터 세탁기, TV, 냉장고, 에어컨까지 새로운 카테고리를 선보일 것"이라며 "단순히 바닥 청소만 하는 회사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아우르는 가전기업이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TCL AI 집사로봇 '에이미'(AiMe)(왼쪽), 하이얼 자체 AI 애플리케이션 'hOn' 구동 화면. 2025.9.5/뉴스1 최동현 기자
AI까지 탑재한 中 가전군단…삼성·LG 턱밑까지 왔다

중국 3대 가전업체인 TCL·하이센스·하이얼은 고도화된 디스플레이 기술과 자체 AI 생태계를 내세우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강점인 'AI홈'을 맹추격했다. 중국 기업의 기술력은 여전히 추격자 위치에 있지만, 기술 격차를 좁히는 속도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지배적 평가다.

TCL은 163인치 RGB 마이크로 LED TV를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115형 마이크로 RGB TV'를 의식한 듯, 부스 입구 최전선에 해당 모델과 '세계 최대' 수식어를 붙인 115인치 QD(퀀텀닷)-미니 LED TV를 나란히 전시했다.

하이센스도 RGB-미니LED TV와 마이크로LED TV를 앞세웠다. TCL과 경쟁하듯 1인치 더 큰 116인치 크기 TV를 전시하고 '세계 최대' 문구를 붙였다. 사물이나 그림이 움직이는 장면을 액자처럼 만든 '데코TV'는 삼성전자의 '아트TV'를 연상케 했다.

하이얼은 'AI로 구동하는 가전'(Powered by AI) 표어를 부스 곳곳에 설치하고 자체 AI 애플리케이션 'hOn'으로 자사 가전제품이나 산하 브랜드 캔디, 후버의 제품을 제어하는 AI가전 생태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TCL은 삼성전자(볼리), LG전자(Q9)와 유사한 AI 집사로봇 '에이미'(AiMe)를 공개했다. TCL이 AI 동반자(컴패니언)로 명명한 에이미는 집 안을 돌아다니며 가전을 제어하고 사용자와 소통하는 'AI홈 허브' 역할을 한다.

중국의 위협은 이미 현실이다.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는 지난 5일 하이센스의 TV 출하량이 삼성전자를 추월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이에 대해 "TV 사업은 어렵다. 한국 업체가 다 어렵다"고 인정하면서 "중국의 공세가 당분간 강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 'IFA2025' 개막을 앞둔 4일(현지시각) 독일 메세 베를린(Messe Berlin) 건물 앞에 IFA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2025.9.4 ⓒ News1 최동현 기자
'초격차 전략' 급한 삼성·LG…AI고도화·B2B 띄웠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초격차 전략'을 수립 중이다. 삼성전자는 AI 고도화와 모바일-가전 연계를 통한 'AI홈 경쟁력'을, LG전자는 중국 업체가 아직 진입하지 못한 전장과 냉난방공조 등 B2B(기업 간 거래)를 특화 분야로 설정했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 사장은 4일 베를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2030년까지 모든 업무에 AI를 적용해 'AI 드리븐 컴퍼니(AI Driven Company)'로 거듭나겠다"며 "혁신 DNA를 바탕으로 AI 홈 역시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현실화해 글로벌 선구자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5일 LG전자 부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장(VS사업)와 냉난방공조(ES사업본부)를 기업 간 거래(B2B)의 쌍두마차로 LG전자의 질적 성장을 끌고 나갈 것"이라며 B2B, 비(非)하드웨어(Non-HW), 구독, D2C(소비자 직접 판매) 4대 신성장사업에 더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를 더 이상 '패스트팔로워'(후발주자)로 부르기 무색할 수준"이라며 "(한국 기업이) 따돌리는 속도보다 따라잡히는 속도가 더 빠르다. 상당 부분은 이미 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장, 새 모멘텀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