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잘 보여!"…삼성, 시각장애인용 앱 '릴루미노' 공개

1000만원대 기계 성능을 앱과 VR로... 무료보급
1~6급 시각장애인에 효험…안경형태 개발 착수

'릴루미노' 독서모드 적용시 효과를 보여주는 이미지.(삼성전자 제공) ⓒ News1

(서울=뉴스1) 이헌일 기자 = (누군지 알겠어요?) "머리는 단발이고…(혹시) 엄마야? 엄마! 잘 보여!"

시각장애를 가진 한 아이가 시각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활용해 처음으로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내뱉은 탄성이다. 이 학생은 장애 때문에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엄마가 눈앞에 있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앱 이름 릴루미노(Relúmĭno, 라틴어로 '빛을 되돌려준다')의 의미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장면이다.

◇"희망의 빛 돌려주겠다는 바람 담았다"삼성전자는 지난 18일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브리핑룸에서 릴루미노 설명회를 열었다. 앱 개발을 담당한 조정훈 CL(Creative Leader)은 "앱 이름에 저시력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을 돌려주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밝혔다.

설명회에서 상영된 릴루미노 소개 영상에는 앱 테스트 과정에서 여러 시각장애 학생들이 릴루미노를 체험해보는 모습이 담겼다. 뿌옇고, 흐리고, 왜곡된 이미지 속에서 살았던 아이들은 '기어 VR'을 착용한 뒤 "신기해"라는 말을 연발했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한빛학교'의 김찬홍 교사는 "학생들이 릴루미노를 테스트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당황했다"며 "학생들이 정말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게 되니 굉장히 신기해하고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사는 릴루미노의 현장테스트를 도왔고 직접 체험도 해봤다.

그는 "릴루미노는 학생들의 학습권, TV 시청, 컴퓨터 작업 등 다방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또한 보행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릴루미노는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프로그램인 C랩을 통해 개발된 앱이다. 빛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전맹을 제외하고 1급에서 6급의 시각장애인들은 릴루미노를 활용하면 기존에 왜곡되고 뿌옇게 보이던 사물을 기어 VR을 통해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개발팀이 중앙대학교병원과 협력해 실시한 임상시험 결과 기존 최대 교정시력이 0.1인 시각장애인은 릴루미노를 활용하면 0.8~0.9까지 향상됐다.

이 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어 VR과 함께 '갤럭시S7' 이후 출시된 삼성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에 앱을 내려받은 뒤 기어 VR에서 작동시키면 된다. 앱은 오는 20일부터 '오큘러스 스토어'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 C랩의 조정훈 '릴루미노' 개발팀 CL(Creative Leader)이 지난 18일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브리핑룸에서 릴루미노 앱을 소개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 News1

◇스마트폰·기어 VR만 있으면 무료…1000만원대 제품 성능

릴루미노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성이다. 릴루미노는 스마트폰과 기어 VR만 있으면 이용할 수 있다. 반면 비슷한 성능을 갖춘 시중의 다른 시각보조기기는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는 설명이다.

릴루미노는 기어 VR에 장착된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의 영상을 변환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준다. 릴루미노는 이를 위해 영상 속 사물의 윤곽선을 강조하고 색 밝기 및 대비를 조정한다. 또한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색을 반전한다. 흰색 바탕의 검은색 글씨를 검은색 바탕의 흰색 글씨로 바꿔주는 식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시각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 화면색상필터 기능도 담았다. 이런 기능들 덕분에 백내장, 각막혼탁 등의 질환으로 시야가 뿌옇고 빛 번짐, 굴절장애, 고도근시 등을 겪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글자나 사물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릴루미노는 섬 모양으로 일부 시야가 결손된 '암점', 시야가 줄어든 '터널 시야'를 지닌 시각장애인을 위해 이미지를 재배치하는 기능도 한다. 암점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주변 시야 영역에 배치해 볼 수 있도록 하고 터널 시야 때문에 중심부만 보이는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주변 시야를 중심부에 축소 배치해 비교적 정상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김 교사는 "저시력 장애인들은 저마다 다양한 시각 조건을 갖고 있다"며 "(릴루미노는)개인에 맞게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다는게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가 지난 18일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브리핑룸에서 '릴루미노' 앱을 사용한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 News1

◇호기심, 피드백이 개발의 원동력

릴루미노는 간단한 궁금증에서 개발이 시작된 뒤 현장의 피드백을 거쳐 완성됐다.

조정훈 CL은 "지난해 2월쯤 인터넷에서 시각장애인 중 92%가 여가활동으로 TV시청을 선호한다는 기사를 봤다"며 "처음 봤을 때는 '거짓말이다, 시각장애인이 TV시청을?'이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시각장애인 중 86%는 빛과 명암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분들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 CL은 "사전 조사를 하면서 국내 시각장애인 중 71%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렇게 누구나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활용할 방안을 생각하다가 기어 VR을 떠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릴루미노는 지난해 5월 C랩 과제로 선정된 뒤 1년 3개월여 만에 상용화에 이르렀다. 조 CL은 "9월에 첫번째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들었다"며 "매우 성능이 떨어지는 앱이었지만 현장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일단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런 테스트를 거쳐 여러 장애 패턴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꼈고 다양한 기능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개발팀은 앞으로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불편사항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후속 과제도 진행할 예정이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기어 VR보다 착용이 간편한 안경형태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C랩 과제는 원칙적으로 시작한 뒤 1년이 지나면 종료되지만 릴루미노 팀은 1년 더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게 됐다.

조 CL은 "안경타입 제품의 개발은 그동안 만났던 시각장애인분들께서 주신 숙제"라며 "지난해 연구를 시작한 뒤 기승전결을 거쳐 지금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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