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의를 무너뜨린 쿠팡'

서울 광진구 쿠팡 본사. ⓒ 뉴스1 구윤성 기자
서울 광진구 쿠팡 본사. ⓒ 뉴스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이철 기자

"늦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정지된 조사 때문에 무너진 정의를 다시 세우는 노력을 끝까지 해야죠".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9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한 말이다. 쿠팡의 반발로 중단됐던 현장조사를 재개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공정위는 지난달 쿠팡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조사에 나섰지만 쿠팡은 사전 서면 통지가 없었다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쿠팡은 이후 현장조사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본안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은 공정위의 조사 효력을 잠정 정지했다가 지난 23일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본안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쿠팡은 대규모유통업법 조사에는 행정조사기본법이 적용되는 만큼 사전 서면 통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공정위는 대규모유통업법이 시행된 이후 사전 통지 없이 현장조사를 해왔고 조사 실효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절차라고 맞선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쿠팡이 공정위 조사를 거부한 것이 적절했는지도 별개의 문제다. 위법 행위가 확인된다면 기업 규모나 영향력과 관계없이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 경쟁당국의 수장이 조사 대상 기업을 두고 '무너진 정의'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공정위는 기업의 위법 여부를 조사하고 제재하는 기관이다. 그렇기에 조사 대상 기업에 대해 누구보다 냉정하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은 현장조사의 법적 근거와 절차를 둘러싼 다툼이다. 집행정지 신청은 기각됐지만 현장조사 처분 자체의 적법성을 다투는 본안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경쟁당국 수장이 '정의'라는 가치 판단을 앞세우면 법률과 절차를 둘러싼 공방은 자칫 선과 악의 대결로 변질될 수 있다.

서울 시내 한 쿠팡 물류센터에 주차된 배송차량. 2025.12.30 ⓒ 뉴스1 김도우 기자

쿠팡을 두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쿠팡은 막대한 자금을 물류센터와 배송망에 투자하며 국내 유통시장의 배송 경쟁을 촉발했다. 동시에 국내 최대 수준의 유통 플랫폼으로 성장한 만큼 그에 걸맞은 법적·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법의 적용과 행정절차에 이의를 제기하고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것 역시 법이 보장한 권리다.

제도에 허점이 있다면 고치면 된다. 주 위원장도 "교묘하게 공정위 조사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도록 기존 규정들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한 법 집행과 감정적인 법 집행은 다르다.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은 쿠팡을 '정의를 무너뜨린 기업'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증거에 따라 조사하고 위법이 확인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보다 강한 이유도 목소리가 커서가 아니다. 법과 절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끝까지 세워야 할 것은 추상적인 '정의'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과 절차의 원칙이다.

ir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