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사치재가 일상 필수품으로"…K-샴푸 50년 변천사
비누로 머리 감던 60년대…1976년 유니나·푸로틴이 대중화 개막
1991년 샴푸 파동 후 품질 고급화…해외 수출
-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샴푸가 일상 필수품인 지금과는 달리 불과 6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세숫비누나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현재의 K-샴푸 글로벌 열풍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국내 시장에서 샴푸는 언제 어떻게 대중화됐을까.
최초로 출시된 국산 샴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1967년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 전신)에서 출시한 '크림샴푸'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이미 1960년 평화유지공업연구소의 '세모론 샴푸' 광고가 여러 신문·잡지에 실린 것이 확인된다.
1968년 한 경제지 보도에 따르면 당시 국산 샴푸로 '크림샴푸'가 470g 1병당 300원, '세모론 샴푸'가 150g 1병당 5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300원은 당시 소고기 1근 값과 비슷했다. 보도에서는 샴푸에 대한 인식이 낮아 많이 쓰이지 않고, 비누제조업체들이 만들어 고급품이 없다고 지적했다.
샴푸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락희화학이 럭키로 사명을 바꾼 후 1976년 출시한 '유니나 샴푸'와 같은 해 태평양화학(아모레퍼시픽 전신)이 내놓은 '아모레 푸로틴 샴푸'가 맞붙으면서다. 올해가 50주년이 되는 셈이다. 럭키와 태평양화학은 TV와 라디오, 신문 광고에서 정면충돌하며 사실상 국내 샴푸 시장을 양분했다.
유니나는 샴푸와 린스를 세트로 묶은 최초의 제품이었다. 오미희·윤여정·이경진 등 당대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삼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유니나 1병 가격은 1350원으로 짜장면 10그릇에 해당하는 고가 소비재였다. 그럼에도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 1000만 병을 돌파했고 3년 만인 1979년에는 2000만 병을 넘었다.
유니나 광고전에 자극받은 태평양화학은 1977년 "모발은 빨래가 아닙니다"는 역사적인 광고 문구로 비누의 시대를 종결했다. 이 카피로 푸로틴 샴푸는 업계 1위 자리를 꿰찼고 1979년에는 누적 판매 3000만 병을 돌파했다. 1인 1 샴푸 시대의 시작이었다.
샴푸가 대중화되면서 시중에는 품질이 낮은 샴푸도 출시되기 시작했다. 1980년 7월 당시 보건사회부는 샴푸류 품목을 일반 공산품에서 화장품으로 변경하고 안전성 검사 등 품질관리 규제를 강화했다. 당시 국내 샴푸 시장은 약 100억 원 규모로 성장했고 상품 수는 100여 개에 달했다.
1986년 수입 자유화 이후로는 유니레버, 존슨앤드존슨, 피앤지 등 글로벌 기업의 샴푸 브랜드들이 한국에 상륙하며 소비자 선택 폭이 더 넓어졌다. 그러던 중 1991년 4월 샴푸에서 납과 비소 등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환경처 발표가 나왔다. 이른바 '샴푸 파동'이다.
소비자들 사이에 샴푸·린스 불매 운동이 벌어지며 수입 미제 비누가 불티나게 팔렸다. 화장품 업계는 적극적으로 해명 작업에 나섰지만, 판매 부진에 시달렸다. 그해 5~7월 석 달간 국산 샴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최대 30%까지 감소했다.
샴푸 파동은 역설적으로 품질 고급화 경쟁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성분을 세세히 따졌고 기능성만으로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브랜드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향기와 풍성한 거품으로 소비자 감성을 공략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샴푸 향'이 구매 결정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2000년대 이후 K-샴푸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2001년 LG생활건강이 출시한 엘라스틴은 '머리카락도 피부다'는 광고 문구로 헤어케어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배우 전지현이 전속 모델로 발탁되면서 엘라스틴은 2004년부터 19년 연속 국내 샴푸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미쟝센과 려, 애경산업은 케라시스로 엘라스틴과 경쟁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과학적 임상에 기반한 탈모와 두피 관리가 새로운 표준이 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샴푸 시장에서 탈모·두피 케어 샴푸 비중은 2015년 31.2%에서 2022년 48%로 급등했다. 두피를 피부처럼 관리하는 '스키니피케이션'이 전 세계 트렌드가 됐다.
K-샴푸는 더 이상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시장에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기준 국내 샴푸 수출액은 1억5512만 달러(약 2288억 원)로 전년 대비 38.3% 증가했다. 유니나·푸로틴 이후 반세기 동안 K-샴푸가 이룬 혁신의 결과다. 앞으로 50년 후 대한민국 샴푸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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