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FDA가 퇴출한 '타르 표기' 한국만 고집…정책 역주행 논란

단일 물진 아닌 '타르'는 성분 아닌 혼합물…표기 자체가 '저타르=덜 해롭다' 오인 부를 수도
과학·법 취지·국제 기준과 배치되는 타르 표기…'관성적 행정' 논란 속 제도 설계 재검토 필요성 대두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배지윤 기자 = 정부가 새 담배유해성관리제도에 '타르'(총입자상물질에서 니코틴·수분을 제외한 값)를 유해 성분 목록에 포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법 취지는 물론 과학적 기준과 국제 권고와 모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담배유해성관리법은 제조·수입사가 '개별 유해 성분'을 정확히 공개하도록 설계된 법이지만 타르는 단일 물질이 아닌 수천 가지 화합물이 뒤섞인 혼합물이다. 이 때문에 국민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정확성이 떨어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OECD 대다수 국가서 사라졌는데…한국은 여전히 '타르 표기' 고집

25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3일 제1차 담배유해성관리정책위원회에서 궐련·궐련형 전자담배 44종의 검사·공개 대상 성분을 확정했다. 그러나 타르가 어떤 근거로 성분 목록에 포함됐는지에 대한 과학적·법적 검토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타르 자체가 본래의 의미에서 '성분'으로 분류될 수 없다는 점이다. 타르는 성분이 아닌 담배 연기 속 총입자상물질(TPM)의 무게에서 니코틴과 수분을 제외한 값일 뿐 그 안에는 수천 개의 화학물질이 뒤섞여 있다.

이는 법이 규정하는 유해 성분 및 독성 등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단일 물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실제 미국식품의약국(FDA)도 담배 위해성 평가를 위해서는 타르가 아닌 연기에 포함된 인체에 유해하거나 유해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살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타르를 하나의 성분처럼 표시할 경우 정보 왜곡 문제도 발생한다. 담배 포장에 적힌 타르 1㎎·4㎎·6㎎은 절댓값이 아니라 필터의 구멍 개수나 흡입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수치로 필터 구멍을 많이 뚫으면 측정값은 낮아진다. 즉, 이를 근거로 '저타르=덜 해롭다'고 오인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우리나라가 회원국으로 있는 세계보건기구(WHO)도 타르는 담배규제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아니기 때문에 측정할 필요가 없으며,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담배 포장에 타르 등 성분 함량 표기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 FDA도 같은 이유에서 2009년부터 타르 수치를 라벨에 표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타르 함량을 표기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서울 시내 편의점에서 직원이 담배를 정리하고 있다. 2025.7.1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국제 기준은 필요할 때만? '선택적 수용' 비판 고조

더 큰 문제는 타르의 측정·산출 방식은 현행 유해성 관리 제도와 구조적으로 어긋난다는 점이다.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입하면 이 문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가열되기 때문에 수분 발생량이 많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궐련 담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수분·타르 산출 값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식약처와 보건복지부가 2018년 동일한 측정 방식을 사용해 두 제품군의 수분 비율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던 사례도 이러한 한계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시하는 강화포집법(ISO 20779) 역시 타르와 수분이 부정확하게 측정될 수 있으므로 사용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다.

식약처도 이를 반영해 두 번째 행정예고에서 ISO 측정법을 삭제했으며 이후 배출물 포집법으로 WHO가 권고하는 강화포집법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유해 성분 지정에서는 WHO가 제시한 9종·39종 목록을 채택하지 않았다. 일부에선 국제 기준을 부분적으로만 적용한 '선택적 수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정책위는 타르를 유해 성분 목록에 포함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래된 '타르·니코틴' 병기 관행을 그대로 답습한 결정이라는 평가와 함께 기존 관행에 의존하는 '관성적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유해 성분 목록이 다음달 12일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앞둔 만큼, 규제개혁위원회가 △법 취지 부합 여부 △과학적 타당성 △국민 오인 가능성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해 성분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혼합물인 타르를 성분처럼 규정하는 현 구조는 타당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국제 기준과도 괴리가 커 유해 성분 하나하나를 명확히 밝히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jiyounba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