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바뀐지 언젠데"…관행 고집 공공기관에 중소 급식업체 '울상'

대기업 유리한 평기 기준 내세워…법 개정도 '무시'
중소 급식업체 '들러리'로 전락…공공기관 기준 변경해야

ⓒ News1 DB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지금 기준대로라면 중소 급식업체들은 사실상 '들러리' 밖에 안 됩니다"

한 중소 급식업체 관계자가 공공기관의 구내식당 용역 입찰 기준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름 오랜 시간 준비해 왔지만, 평가가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과 영업이익 등을 평가하는 선정 기준에 중소 급식업체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신용등급'만 평가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공공기관들은 여전히 과거 기준을 내세웠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이 개정된 법을 무시하고, 구내식당 선정 기준에 중소 업체들이 불리한 항목들을 여전히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 평가 세부기준'에 따르면 공공기관 용역계약 입찰 공고 시 참여기업의 경영상태 평가는 '신용등급'만으로 해야 한다.

그동안은 신용등급과 부채비율은 물론 매출액과 영업이익·현금흐름 등으로 평가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 상태에 대한 중복평가 요소를 제거하고 중소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법이 개정됐다.

중소기업은 신용등급이 좋더라도 투자비중이 높을 경우 대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서류 심사에서 불리한 구조였던 셈이다.

산업은행 심사평가 기준표 ⓒ 뉴스1

그러나 경찰청 산하기관인 경찰수사연수원과 중앙경찰학교는 물론 산업은행까지 개정 전 기준으로 입찰공고를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경찰학교는 지난 29일 구내식당 위탁관리업체 제안요청서를 공고하면서 정량평가 배점한도를 40점을 배정해 놨다.

정량평가에서는 주로 용역수행 실적이나 단체급식 경력은 물론 부채비율과 신뢰도 등을 따진다. 반면 정성평가에서는 업체들의 발표를 통해 운영 계획 등을 심사한다.

개정된 평가기준에 따르면 정량평가 점수는 20점 이하여야 하며, 신용평가등급 외에 부채비율 등을 심사 항목에 포함하면 안 된다.

그러나 중앙경찰학교는 부채비율을 심사항목에 포함시켰다. 이대로라면 중소업체들은 정량심사 단계에서 대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정량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고배를 마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 단체급식 대기업인 삼성웰스토리(부채비율 54%)와 아워홈(부채비율 60%) 외에는 대부분 업체들의 부채비율이 100%를 훌쩍 웃돈다.

국책은행 중 하나인 산업은행도 지난 25일 구내식당 위탁운영사업자 선정에 관한 입찰 공고를 게시하면서 특정 대기업이 아니면 아예 서류심사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운영 능력을 검증하는 기업 신뢰도 부문에 신용등급은 물론 부채비율과 유동비율을 추가 심사 항목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또 집단 급식소 운영실적(중식 기준 700식 이상)과 HACCP 인증자격(식약처인증, 집단급식소에 한함) 등의 평가 항목도 제시했다.

사실상 대기업 외에는 입찰해도 기준 미달인 셈이다. 중소업체들은 응찰한다 하더라도 대기업의 들러리 역할만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서 발표한 공공기관의 기준을 충족하는 중소기업은 찾기 어렵다"며 "중소기업은 서류심사에서 제대로 점수를 받을 수 없도록 평가 기준이 설계돼 있어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과도한 기준을 제시한 것 같다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말했다.

특히 법이 바뀌었음에도 공공기관이 지키지 않고 있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구내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살펴야지, 참여기업의 경영 상태를 당락의 잣대로 삼는 것은 중소기업은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법 준수를 가장 먼저 해야 할 공공기관들이 과거의 기준으로 입찰 공고를 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