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간접흡연⑤]금연구역 확대에 뿔난 환경미화원 "차라리 흡연부스 늘려라"

[금연의날]청소차 '눈에 띄는 곳'만 치워, 구석청소는 '미화원몫'
"거리가 꽁초들도 쓰레기통 됐다, 미화원만 죽어난다"

서울 강남역 인근 고층 빌딩 샛길. 담배꽁초들이 쓰레기들과 나뒹둘고 있다..2018.05.02ⓒ News1이승환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차라리 흡연부스 늘리는 게 나을 듯혀. 맨날 아침에 꽁초 치우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서울 명동 한 건물 환경미화원 성모씨(여·81)의 말이다. 그는 지난 29일 오전 7시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건물 앞거리 꽁초들을 쓸고 있었다. 전날 저녁에 꽁초들을 치워도 소용없다. 아침이면 빗자루를 든 성씨의 눈 앞에는 꽁초들이 수북하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길거리 흡연자들이 부쩍 늘었다. 원래 성씨는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던 '처녀·총각'들을 원망했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요 건물 총각·처녀 종업원들이 잠깐 짬날 때 담배 피우고 후다닥 들어가부러. 담배 피울 데가 주변에 없으니 여기서 피우고 꽁초를 버리겄지. 거리만 더러워지고……" 송씨의 말이다.

미화원 생활 10년째인 유모씨(70) 생각도 성씨와 큰 차이가 없다. 그는 구부정한 허리를 더 숙여 거리 곳곳에 틀어박힌 꽁초들을 훑어 봤다. "흡연자들이 꽁초를 버린 것도 모자라 침까지 뱉어 힘들다"고 유씨는 말했다.

그의 한달 수입은 80만원 정도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많이 벌지"라고 위안을 삼다가도 하루 7시간 정도 일한 뒤 퇴근하면 온 몸이 쑤신다.

유씨는 "차라리 흡연부스를 많이 만들어 거기서 피우게 했으면 좋겠다"며 "부스에 꽁초들이 몰려 있을 테니, 치우기 편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미화원 생활 2년째인 이모씨(69)도 같은 말을 한다. 이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유커(중국인 관광객), 일본인, 미국인 가릴 것 없이 담배를 피운다"며 "아주 지긋지긋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관광객 탓만 하기 어렵다고 이씨는 덧붙였다. 명동거리 내 실외 흡연부스는 단 한 곳이다. 워낙 없다보니 상당 수 관광객은 흡연부스가 있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이씨는 "실내 금연은 사실상 전면 금지가 됐으니 거리에서 피우는 것 아니겠나"라며 "매일 꽁초를 치우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명동 한 건물 환경미화원이 버려진 꽁초 등을 치우고 있다. 2018.05.03ⓒ News1 이승환 기자

그나마 거리 한복판이나 큰 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청소차를 동원해 꽁초들을 포함한 쓰레기들을 흡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소차들이 '눈에 띄는 곳'만 지나간다는 점이다.

모퉁이나 거리 구석에 버려진 꽁초들은 그대로인 셈이다. 이 꽁초들은 건물주가 고용한 미화원들이 치워야 한다. 거리에서 만난 미화원들은 "정부가 직무유기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금연 정책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미화원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흡연카페를 금연 시설로 지정하는 내용의 관련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놨다. 이 시행령으로 오는 7월부터 흡연카페도 이제 '금연카페'가 된다.

이같은 조치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실내 흡연자들까지 거리로 나와 담배를 피워 미화원들의 부담이 늘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금연공간만 늘린다고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금연지역에는 어김없이 흡연 '사각지대'가 들어섰다. 서울 강남역 5번 출구역 인근 고층 빌딩 샛길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 등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보세요. 여기가 쓰레기통이지, 길입니까." 유학원 직원 곽모씨(42)가 혀를 차며 말했다. 곽씨가 가리킨 샛길에는 어림잡아도 100개 이상의 꽁초가 음료수 병 등과 나뒹굴었다. 오전 내내 내린 비로 고인 물에 둥둥 떠다니는 꽁초들도 보였다. 쓰레기 더미 위로 '금연'이라고 붉은색으로 적힌 안내표지가 세워져 있었다.

"흡연자들 잘한 것 없지요. 그런데 흡연부스가 주변에 한 곳이라도 있다면 이렇게까지 했겠습니까…(중략)…청소차가 이곳을 '미화'하는 것을 본 적 없네요. 환경 미화원만 죽어나는 거지요."

말을 마친 곽씨는 담배를 끄고서 자신이 '쓰레기통'이라고 부른 샛길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실제로 서울 시내에서 흡연부스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약 986만명이 사는 서울의 흡연시설은 단 52곳에 불과하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mr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