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못 들어와…주차비 내놔" 도넘은 택배고객 갑질
단지 내 녹지조성 아파트, 안전 이유로 택배차 진입금지
일부 병원, 주차비까지 요구…근로환경·사회적 인식 개선돼야
- 양종곤 기자
(서울=뉴스1) 양종곤 기자 = 배송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택배 근로조건의 열악한 수준과 사회적인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게 이 같은 갈등을 부추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진입 막아놓고…"왜 집까지 배송하지 않느냐"항의
7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전국 단위로 신축 아파트 가운데 지상에 주차장을 없애거나 녹지를 조성한 상당수 아파트는 택배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이 지역의 택배회사가 배송 중단을 결정한 사실이 일반에 알려지기도 있다.
아파트 측은 지상에 도로가 없는데다 택배차량이 들어올 경우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진입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몇 몇 고급 아파트는 택배차량 진입이 집값이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아파트는 단지 지하주차장을 통해 택배차량 진입을 허가하거나 경비실에 물품을 맡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아파트가 이 안을 수용한 상황은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개별적으로 택배회사에 '왜 집 앞까지 배송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A택배회사 관계자는 "일부 단지는 지하주차장 높이가 일반 택배차량의 적재함 보다 낮아 진입이 안 된다"며 "경비실도 분실 우려가 있는 택배물품을 맡길 꺼려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아파트 지역의 택배기사는 택배차량을 단지 밖에 주차하고 손수레에 물품을 적재해 나르거나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는 소형차량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택배기사 입장에서 만족할만한 대안이 아니다. 택배차량을 이용하지 않으면 노동강도는 더 세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더 많은 물품을 나를수록 벌어들이는 수익이 늘어나는데 손수레와 소형차량을 이용하면 수익이 줄 수 밖에 없다. 물품 1개 기준으로 택배기사 수입은 700원 정도다. 택배기사는 일요일도 쉬지 않고 하루 약 140개를 배송해야 300만원 가량 수익이 가능하다. 일에 능숙하지 않는 택배기사의 월 수익은 200만원 초중반에 그친다.
◇주차비 청구·공장진입 불허·배송시간 일방적 결정
택배기사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택배업계에서는 아파트 주민들이 택배기사의 엘리베이터 탑승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상당수 택배기사는 배송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는 상황을 대비해 엘리베이터를 잡아두거나 상층부 버튼을 눌러놓기 때문이다.
A택배회사의 한 택배기사는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젊은 택배기사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며 "내가 타고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반드시 타고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A택배회사의 다른 택배기사는 본사에 주차 문제를 해결해달라면서 민원을 제기했다. 회사에 따르면 일부 병원은 배송을 위해 주차한 상황을 알면서도 주차비를 받고 있었다. 택배기사가 낸 주차비는 업무 상 비용이지만 기사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택배기사는 본사와 계약을 맺은 대리점주와 재계약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는데 대리점별로 비용처리 기준이 제각각이다.
B택배회사의 택배기사들도 속앓이가 심하다. B택배회사 관계자는 "일부 공장은 택배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어 고객이 올 때까지 택배기사가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C대학 기숙사는 택배배송 시간을 정해두고 있는데 교통 등 갑작스러운 변수로 배송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억울해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택배회사는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택배기사에게 대고객 서비스를 강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인 택배기사의 하루 일과를 보면 오전 6시께 택배터미널로 출근해 오전 8~11시까지 물품을 분류하고 물품을 자신의 택배차량에 싣는 상차 작업을 한다. 배송은 정오가 다 되서야 시작되는데 일에 능숙하지 못한 택배기사는 오후 9시가 넘어서도 퇴근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고객은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채 집 앞까지 배달해야 한다는 원칙만 강요하고 있다고 업계는 하소연한다. 지연 배송, 물품 파손은 정당한 보상 사유다. 이 점을 악용하는 '블랙 컨슈머'가 늘어나고 있지만 고객과 갈등이 자칫 온라인 상 비난여론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택배회사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C택배회사 관계자는 "아파트 녹지조성, 고객의 서비스요구 등 배송환경이 바뀌는 속도를 배송 인력,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업계 경쟁은 심화되고 있는데 택배기사 수익인 배송단가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어 고객을 맞춰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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