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실패하면 배임죄 처벌 우려, AI 등 모험적 투자 저해"

한경협-민주당, '배임죄 문제점 개선방안' 세미나…'모호성' 개선
권칠승 "경영판단원칙 명문화, 여야 이견 없어" 개편 약속

ⓒ 뉴스1 최수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인공지능(AI) 대변혁 시대에서 국내 산업계의 신사업 투자를 촉진하려면 배임죄 등 경제형벌 합리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배임죄 처벌 규정을 유지 중인데, 그마저도 판단 기준이 모호해 적극적인 경영 판단을 위축시킨다는 설명이다.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0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주최한 '배임죄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현행 배임죄 규정이 모호해 형법상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과 예측 가능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 태스크포스(TF) 단장, 류혁선 카이스트(KAIST) 경영공학부 교수 등 정·학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안 교수는 모호한 규정 탓에 민사상 '신의칙 의무 위반'이 곧 범죄로 직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꼬집었다.

신의칙 의무는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의 의무'를 뜻한다. 법률관계를 맺은 주체(채권자·채무자)는 서로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성실하게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 한다는 대원칙이다. 민사에선 과실을 따질 때 신의칙을 얼마나 저버렸는지를 따지는데, 배임죄 규정이 모호하면 신의칙의 기준도 형해화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배임죄 규정이 '위험범' 법리를 오남용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위험범은 법익에 대한 '위험 상태'를 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법리다. 안 교수는 "현실적인 손해가 없더라도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 처벌할 수 있다"며 "실패할 수 있는 경영판단까지도 범죄로 몰아갈 소지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결국 민간 영역의 계약 위반 등도 쉽게 처벌이 가능한 '민사의 형사화'를 초래해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경영 의지를 약화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배임죄는 엄격한 편이다. 독일은 미수범은 처벌하지 않고, 업무상 배임죄나 특별배임죄 가중 규정이 없다. 일본은 고의 외에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엄격한 주관적 요건을 요구한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 규정 자체가 없고, 유사 조항이 있더라도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안 교수는 '경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하고, 배임죄는 폐지하거나 개선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기업 경영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영 판단 원칙'을 신설해야 한다"며 "이익 충돌 없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합리적 결정은 배임죄의 '임무 위배'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배임죄를 전면 폐지하고 반드시 처벌이 필요한 유형을 선별해 독자적인 구성요건으로 구체화해 입법해야 한다"며 "혹은 배임죄의 구성요건을 현행보다 정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토론에선 배임죄 개선 방향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판단 영역에서는 형사 개입을 최소화하고, 무죄추정 원칙을 명확히 하는 개편이 필요하다"고 봤다. 장진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영 판단 원칙의 엄격한 적용과 주관적 고의의 개별적 심사를 통해 단순한 경영 실패가 형사책임으로 전이되는 문제를 방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AI, 배터리,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등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배임죄로 인해 기업인들이 모험적 결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배임죄 제도의 합리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칠승 단장은 "경제계가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경영 판단 원칙의 명확화라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이 부분은 여야, 당정 간 사실상 이견이 없다"며 "배임죄 개편의 입법 형태가 어떻게 되든, 정상적 경영 판단 원칙을 배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