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콕 집은 '한화'…美 핵추진잠수함, 필리에서 만든다

美필리조선소 인수 1년 만에 '마스가' 연계 핵잠 건조 목표 공식화
"미 설계·운용+한화 제조역량…韓핵잠은 거제, 美핵잠은 필리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를 취재진이 둘러보고 있다. 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 1년을 맞아 열린 이날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한화 측은 미국의 핵추진잠수함을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겠다고 밝혔다. 2025.12.22. ⓒ News1 류정민 특파원

(필라델피아=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인 한국의 한화그룹이 필라델피아 조선소 인수 1년 만에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톰 앤더슨(Tom Anderson) 한화디펜스USA 조선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우리는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대비해 이미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만든 경험이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앤더슨 사장은 미 해군 소장 출신으로, 군 함정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를 지냈으며, 현재 미국 내 조선 사업 및 조선소 운영, 미래 전략 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한화가 필리조선소에서 미국의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경우 설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설계를 기반으로 시간과 노력을 훨씬 앞당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 정상의 조선업 협력 의지가 확고한만큼, 미국의 설계, 운용 능력과 한국의 건조 역량이 결합하면 단기간 내 한화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미디어데이 행사 당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첨단 무기를 갖춘 대규모 전함을 도입하는 '황금 함대'(Golden Fleet) 구상을 발표하면서, "해군은 한국 회사와 일할 것이다. '한화'라는 좋은 회사로 최근 50억 달러(약 7.2조 원)를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라고 콕 집어 언급했다.

이에 따라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양국 간 조선업 협력이 상선과 군함뿐만 아니라 핵추진잠수함으로도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해 12월 한화가 인수한 한화필리조선소는 양국 조선업 협력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방미 때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이곳을 찾은 바 있으며,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해군성 장관 등 양국의 최고위급 관계자들이 잇달아 방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미 해군력 계획을 '황금 선단'(Golden Fleet) 건조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5.12.25. ⓒ AFP=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이날 앤더슨 사장은 미 해군이 75년간 핵추진잠수함을 설계, 건조, 운용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경우 1억 7700만 마일(약 2억 8500만 킬로미터, 지구 약 7100바퀴)을 안전하게 항해한 세계 최고 성능형 공격형 잠수함"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미 20척 이상 건조된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은 새로운 함정을 처음부터 개발·건조하는 것과 달리 제한된 기간 내에 충분히 제조 역량 확보가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톰 앤더슨 사장은 잠수함 건조 분야에서 축적된 한화오션의 기술력과 70년 넘게 핵추진잠수함을 설계·건조·운용해 온 미 해군의 노하우를 접목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한국의 조선업 협력업체를 포함한 공급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 해군을 위해 건조되는 잠수함의 생산 일정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 조선소의 강력한 공급망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2054년까지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을 66척 수준으로 확대 보유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현재 24번 함까지 취역했다. 20년 안에 40여 척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매년 2척 규모의 생산능력이 필요한데 현실은 연간 1.2척 수준이다.

또한, AUKUS(오커스, 호주·영국·미국 삼자 안보협정)에 따라 호주에 3~5척의 잠수함을 제공하기로 했으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기존 핵추진잠수함의 3분의 1이 정비 중이거나 정비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30년대 전력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알렉스 웡(Alex Wong) 한화그룹 CSO(글로벌 최고전략 책임자)는 미국 정부가 핵추진잠수함 산업 기반을 확대 및 강화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게 될 핵추진잠수함이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글로벌 동맹국 수출까지 염두에 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웡 CSO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수석부보좌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부대표,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 등을 역임하며 한반도 및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1년 9월, AUKUS를 출범시키면서 동맹국의 핵추진잠수함 역량 확대와 새로운 핵추진잠수함 설계를 공동개발하기 위한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 체제에서 재확인 및 강화됐다는 점을 짚었다.

웡 CSO는 "미국은 버지니아급 잠수함 설계를 중심으로 한 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이는 미 해군은 물론 한미 동맹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화 측은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의에 따라 추진되는 한국의 핵추진원자력 잠수함 보유 추진과 관련, '한국의 핵잠은 거제조선소에서 건조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톰 앤더슨 한화디펜스USA 조선사업부문 사장이 한화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 계획에 대해 밝히고 있다. 2025.12.25. ⓒ News1 류정민 특파원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알렉스 웡(Alex Wong) 한화그룹 CSO(글로벌 최고전략 책임자)가 한화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 계획에 대해 밝히고 있다. 2025.12.25. ⓒ News1 류정민 특파원

알렉스 웡은 "한화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을 건조해 온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각국 정부가 어떤 유형의 잠수함을 건조하기를 원하는지를 결정한다면, 한화는 그 결정에 맞춰 대응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라고 말했다.

한화 측은 "한화필리조선소에서는 미국 핵추진잠수함을 건조,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는 한국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한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필리조선소는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최적의 입지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는 조선소(코네티컷 HII Newport News, 버지니아 GE Groton)와 인접해 있어 직접적인 협업과 현장 경험 공유, 부품과 모듈 운송에 유리하다. 미 해군 원자로국과 해군 핵추진 프로그램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필리조선소에서 미국의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경우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전문가들이 미국 핵추진 잠수함 설계·생산·시험·정비 등 모든 단계에 투입되면서 핵심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축적할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이 글로벌 핵추진잠수함 산업 생태계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조종우 한화필리조선소장은 "향후 필리조선소에서 미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본격화되면 국내 협력업체의 글로벌 공급망 편입과 지역 산업 전반의 동반성장으로 이어 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부산·경남 지역 16개 조선소 및 협력업체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데이비드 김 필리조선소 최고경영자(CEO)는 "한화필리조선소의 전략은 '듀얼 유즈(dual-use) 조선소'이다. 즉 상선 분야에서 이미 확보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하되, 동시에 해군 함정 등 군용 선박 건조 가능성도 함께 갖춘 조선소로 운영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명명식에 참석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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