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1명이 회사 운명 바꾼다"…보상 체계 뜯어 고치는 기업들
삼성전자, 성과연동 주식보상 도입 공식화…"주가 100%↑ 따따블"
"파격 보상=핵심 인재" 성과급 대수술…SK하닉 "상한제 폐지"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한국 재계에 '성과 조건부 주식'(RSU·PSU)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일부 총수 일가의 '꼼수 승계' 도구라는 날 선 프레임이 씌워지며 한때 주춤했지만, 삼성전자가 최근 성과연동 주식보상(PSU) 제도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사내 공지를 통해 그룹 전 직원을 대상으로 PSU 시행을 공식화했다. PSU는 직급에 따라 200~300주를 약정한 뒤, 향후 3년간 주가 상승 폭에 따라 자사주로 지급되는 장기 성과보상제도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 CL 1~2 직원은 200주, CL 3~4 직원은 300주씩을 지급 약정하고, 3년 뒤 주가 상승 폭에 따라 지급주식 수량을 확정해 2028년부터 3년간 균등 분할 지급할 계획이다.
지급 배수는 2025년 10월15일 기준 주가와 2028년 10월13일 기준 주가를 비교해 상승률이 △20% 미만 시 0배 △20~40% 미만 시 0.5배 △40~60% 미만 시 1배 △60~80% 미만 시 1.3배 △80 ~ 100% 미만 시 1.7배 △100% 이상 시 2배다. 상승률이 20%에 못 미칠 경우는 자사주가 지급되지 않는다.
PSU는 임직원에 성과 창출의 동기를 자극하고, 동시에 주가 부양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지향한다. 예컨대 현재 200주를 약정할 경우, 3년 뒤 주가가 100% 이상 오르면 400주를 받을 수 있다. 지급 주식과 주가가 모두 두 배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따따블' 보상이다.
에코프로는 22일 창립 27주년을 맞아 임직원 2400명에게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 형태로 자사주 24만 주를 지급한다. 2023년 체결한 계약에 따른 2차 지급으로, 임직원 1인당 평균 지급액은 연봉의 20% 수준이다.
주식 성과 보상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해외 선진국에선 그 성과가 입증된 제도다. 특히 핵심 인재를 육성해 회사의 미래 성과를 창출하고, 파격적인 보상으로 새로운 인재를 유치하는 '선순환 구조'의 키(Key)로 작동한다는 평가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로 성장한 미국 엔비디아가 대표적 사례다. 한국경영학회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한 이후 5.3%였던 퇴사율은 2.7%로 하락했다. 엔비디아가 임직원들에게 약속한 막대한 성과 보상이 업무 능률 향상은 물론, 인재 이탈까지 막는 방파제가 된 것이다.
학회에 따르면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RSU를 도입, 지난해 기준 상장기업의 65% 이상이 RSU 제도를 활용 중이다. 반면 한국은 상장기업의 RSU 도입률이 0.6%에 불과하다.
오히려 총수 일가의 '꼼수 승계' 도구라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RSU 도입 행렬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현재 주식 성과 보상제를 도입한 대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두산그룹, 한화그룹, 네이버, 카카오, 에코프로, SK하이닉스 등 일부뿐이다.
한국경영학회 부회장을 지낸 이영달 뉴욕시립대 방문교수는 지난해 9월 학술세미나에서 "RSU로 혁신인재가 유치되고 그들이 혁신 활동에 몰입하면서 이것이 기업의 성과로, 또 시장가치 증대로 이어진다"며 "특히 IT기업에서 RSU가 기업의 성과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보상=인재' 공식이 굳어지면서 자사주를 넘어 성과급 제도까지 뜯어고치는 추세도 감지되고 있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달 1일 임금·단체교섭을 통해 기본급의 최대 1000%를 한도로 하는 '초과이익분배금(PS)' 상한선 기준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0% 전액을 성과급으로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호조에 올라탄 SK하이닉스는 올해 역대급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증권가에선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37조~3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SK하이닉스의 반기보고서 기준 직원 수는 3만 3625명으로, 최소치로 잡더라도 개인당 1억 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연봉 1억 원을 받는 직원의 경우, 고과에 따라 1억 1000만 원에서 1억 3000만 원 중반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올해 초 지급된 성과급 평균(연봉 1억 원 기준)인 7500만 원보다 적게는 47%에서 많게는 80% 급증한 수치다. 이미 회사 내부는 잔칫집 분위기다.
SK하이닉스가 '불문율'로 여겨지던 성과급 상한제를 폐지하면서 재계도 분주해지고 있다. 당장 삼성 계열사 노동조합들은 같은 달 기자회견을 열어 "SK하이닉스처럼 성과급 한도를 폐지하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핵심 인재 유치에 대한 기업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인재를) 더 모으고 이탈을 방지할 수 있는 보상 체계에 대한 고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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