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로 가야한다" 가족 설득한 삼성家 장남…이재용 회장도 '격려'

美 시민권 포기하고 현역병보다 2배 길게 복무 "의지 강했다"
SK 차녀 최민정 軍 후배 된다…재계 노블레스 오블리주 조명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9일 일본 출장을 마치고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CBAC)로 귀국하고 있다. 2025.4.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삼성가(家) 4세인 이지호 씨가 해군 장교 입대를 위해 부친인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을 직접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국적자가 사병이 아닌 장교로 복무하려면 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은 장남의 결정에 반색하며 격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지호 씨는 오는 15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학사사관후보생으로 입영한다. 11주간 장교 교육 훈련을 받고 12월 1일 해군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다. 훈련 기간과 임관 후 의무복무기간을 합친 군 생활 기간은 39개월이다.

지호 씨의 '장교 입대'는 한국 재계에선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2000년 미국 출생으로 한국 국적과 미국 시민권을 가진 '선천적 복수국적자'다. 복수국적자가 일반 사병이 아닌 장교로 복무하려면 외국 시민권을 포기해야 한다.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병역의무 대상자가 자원 입영을 신청한 사례는 한 해 평균 1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현역병 입대가 대부분이고, 장교는 극소수다. 일반 사병(18~21개월)보다 복무 기간이 최대 2.1배 긴 데다, 복수국적이라는 메리트까지 포기해야 해서다.

지호 씨는 스스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이재용 회장 등 집안 가족들을 일일이 설득했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지호 씨가) 장교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회장도 지호 씨의 생각을 대견해하며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총수 일가 가운데 장교 입대를 택한 사례는 최태원 SK 회장의 둘째 딸 최민정 씨가 대표적이다. 최 씨는 병역 의무가 없었지만 2014년 해군사관학교 후보생으로 자원입대해 2015년 청해부대, 2016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복무했다. 지호 씨가 임관하면 최 씨의 군 후배가 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차녀 최민정 해군 중위가 청해부대 19진으로 소말리아 아덴만 파병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후 23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서 열린 입항 환영식에 참석해 귀국신고를 하고 있다. 2015.12.23/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삼성가 4세의 자원입대로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재계 후계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례도 재조명받고 있다.

코오롱그룹 4세인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회장도 미국 시민권을 가진 복수국적자였지만, 육군에 현역 입대해 병역 의무를 마쳤다. 제대 후에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2006년 공군사관후보생 117기 통역 장교로 3년 4개월 간 복무했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도 미국 예일대를 졸업한 뒤 공군 장교로 병역을 마쳤다. 김 회장 역시 1974년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한화그룹 세 부자가 모두 공군 장교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것이다.

최신원 SK네트웍스 전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사장은 중국 푸단대를 졸업한 뒤 귀국해 2006년 해병대 수색대에 자원입대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장남 해찬 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2021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2023년 5월 만기 제대했다.

해외에서도 장교 복무는 기업인들의 모범적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행 사례로 꼽힌다.

스웨덴 대기업 발렌베리그룹의 창업주 가문인 발렌베리가는 창업자 앙드레 오스카르 발렌베리를 필두로 5대 170년에 이르는 동안 경영에 참여한 가문의 일원들이 해군 장교로 복무해 온 전통이 있다.

미국의 대부호였던 존 D. 록펠러의 후손도 장교로 복무했다. 존 D. 록펠러의 외아들 존 D. 록펠러 주니어의 3남 로런스 S. 록펠러와 4남 윈드롭 록펠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각각 해군 장교와 육군 장교로 참전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