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형량 '세계 최고 수준' 무죄율 2배 높아…개정 서둘러야
대한상의 "모호한 판단 기준·法 사문화 등 문제 다수"
"35년 간 개정 미뤄 시대착오적…선진국 중 처벌 가장 엄해"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한국의 배임죄 처벌 형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배임·횡령죄 무죄율이 형사사건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넓히는 개정 상법이 지난달 시행된 상황에서 배임죄를 서둘러 정비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투자 등 이사회 의사결정에 중대한 지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배임죄 완화'를 주문한 만큼, 이사의 경영판단 책임을 경감하고 사문화한 법령의 폐지 등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9일 발간한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합리적 경영판단에 대한 면책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등 이사회 의사결정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만큼 배임죄 개선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제언했다.
대한상의가 법원행정처가 발행한 사법연감의 최근 10개년치(2014~2023년) 형사사건의 무죄율을 분석한 결과, 배임·횡령죄의 무죄율은 평균 6.7%로 집계됐다. 이는 형법 전체범죄 평균(3.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고소·고발이 쉬운 데다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다른 범죄보다 유독 모호한 탓이다.
예컨대 형법은 배임죄의 구성요건으로 '침해를 가한 때'를 정하고 있다. 이 경우 실제 침해가 발생한 경우(침해범)인지, 침해 위험이 있는 경우(위험범)도 포괄하는지가 모호한데, 법원은 손해를 가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도 배임죄를 인정한다. 나아가 미필적 고의가 있는 때도 유죄를 인정한 판결도 잦았다.
상법상 특별배임죄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 배임죄 제도는 형법, 상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로 3원화된 구조다. 이론적으로는 기업 배임 사건의 경우 특별법 우선 원칙에 따라 형법보다 상법 특별배임죄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특경법상 가중처벌의 전제가 되는 기본범죄에 상법 특별배임죄가 없어, 실무에서는 특경법 적용을 위해 형법상 업무상배임죄를 기본범죄로 적용하는 실정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 밖에도 현행 배임죄 제도의 문제점으로 △특경법이 35년 전 가중처벌 기준을 여전히 적용하는 점 △고소·고발 남용 가능성 △민사문제의 형사화(化)를 지적했다.
특경법상 배임죄의 가중처벌되는 이득액 기준은 1984년 법 제정 당시 '1억·10억 원'에서 1990년 법 개정을 통해 '5억·50억 원'으로 상향됐으나, 이후 35년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1990년 당시 5억·50억 원은 현재 화폐가치로 약 15억·150억 원에 해당한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배임죄 고소·고발이 쉽다는 점도 재계를 위축시키는 대목이다. 실제 경영상 판단에 따른 투자 실패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자가 배임죄로 고소당한 사례가 잦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법 개정의 후폭풍으로 '더 쉬운 고소·고발'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배임죄가 주요국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는 점도 기업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가 없는 대신 사기죄로 규율하거나 주로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있다. 독일·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형법 또는 상법에 배임죄를 규율하고 있으나 특별법을 통해 가중처벌하고 있지 않다.
반면 한국은 주요국 중 유일하게 특경법을 통해 가중처벌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요국 대비 형량이 매우 높은 편이다. 특경법상 배임 통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 강도, 상해치사와 동일한 '3년 이상 징역'으로, 50억 원 이상인 경우 살인죄와 유사한 형량인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처벌하고 있다.
보고서는 "다른 나라에 없는 가중처벌규정(특경법 배임죄·형법 업무상배임)과 이미 사문화된 상법 특별배임죄는 폐지해야 한다"며 "만약 특경법 폐지가 어렵다면 35년 전 설정된 이득액 기준을 현재 화폐가치에 맞게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판례에서 인정되는 경영판단의원칙을 상법, 형법 등에 명문화해 검찰 기소 단계에서부터 이사의 책임을 면책할 필요가 있다"며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면책 △배임죄 면책 및 손해배상 면책을 중점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최근 정부가 '경제형벌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1년 내 전 부처의 경제형벌 규정 30%를 정비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다"며 "국회에서도 기업의 투자 결정과 혁신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배임죄 제도개선 논의가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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