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 움직임에 재계 술렁…5대 그룹 등에 질의서

삼성물산·현대차·SK네트웍스·㈜한화 등 20여 곳 이상 기업에 질의서한
횡령·배임·담합 등 내용 포함, 기업들 "소송 본격화 위한 사전 작업"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국민연금공단이 올해부터 주주대표소송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상장사 경우 회사 전체 주식의 0.01% 이상, 일반 법인은 1% 이상만 갖고 있어도 가능하기 때문에, 대기업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중견기업과 중소기업도 소송 대상에 포함된다.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움직임이 기업인들에게 부담을 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이는 국가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 주요 기업들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행정기관이나 수사·사법기관 등으로부터 받은 처벌, 제재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내용의 질의서를 발송했다.

질의서는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한화, GS 등 10대 그룹 안에 포함되는 기업들의 지주사와 주요 계열사 등 20여 곳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이 질의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차와 현대제철, SK그룹에서는 SK네트웍스, LG도 주요 계열사가 서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쇼핑, 롯데하이마트, ㈜한화, GS건설 등도 이번에 질의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이번 서한 발송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주주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현행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24일 열린 제10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수책위에 넘기는 내용의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상정한 바 있다. 비록 복지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재논의하기로 했지만, 개정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현재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로 정하고, 예외적 사안에 대해서만 수책위가 판단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수책위로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약 300개 사에 달하는 한국 대표 기업들의 주요 주주로서, 각 기업의 주요 현안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내용의 서한을 수시로 주고받는다. 실제 현대자동차의 경우 이번에 국민연금으로부터 받은 서한은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서 주주총회 현안을 질의하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재계는 국민연금이 공정위 제재나 경영진의 횡령·배임 등의 혐의에 대해서도 질의서를 보냈다는 점에서 최근 서한 발송이 향후 소송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 주체를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이번 질의서 발송을, 실제 소송을 본격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기업은 소송전에 휘말리는 것 자체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이번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가 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6/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은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상장 주식에 대해 기업이 이사 등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 추궁을 게을리하는 경우, 기업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소의 제기를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국민연금으로부터 소 제기 청구를 받은 기업이 30일 이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 대응하도록 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기업의 임원진들은 주주대표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재계에서는 기업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물리는 주주대표소송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등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주주대표소송제를 본격화하려는 국민연금의 최근 움직임은 기업인들로 하여금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의 손해배상 피소의 부담을 개인이 언제든 떠안을 수 있다는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며 "아울러 과감하고 창의적인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하는 것도 꺼리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코스닥협회 등 7개 경제단체는 지난 10일 공동성명을 내고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에 유감을 표하는 한편,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추진 전면 재검토를 촉구한 바 있다.

이들 단체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기금확충에 전력을 다해도 부족한 터에 국민연금이 불투명한 장기 주주가치 제고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수탁자 의무 이행을 명분으로,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에 몰두하는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대표소송은 그 결과와 무관하게 기업의 신뢰도와 평판에 큰 타격을 주며, 기업이 승소하더라도 기업가치의 원상회복이 불가하다"고 우려했다.

이들 경제단체들은 해당 지침 개정의 전면 보류와 함께 △주주대표소송 관련 절차 및 결정 주체 등을 법률에 규정 △주주대표소송 남용 방지 위한 대상 사건 제한 △주주대표소송 제기 실익에 대한 철저한 검증 장치 마련 △주주대표소송 제기는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할 것 등의 이행해 줄 것을 촉구했다.

전북 혁신도시 국민연금관리공단 전경 ⓒ News1 박제철 기자

ryupd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