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도 판다"…'중공업' 두산 초석 다진 故 박용곤 명예회장
1997년 외환위기 앞두고 선제적 구조조정, "창업 2세기 위해 대대적 개편"
2000년 3조4천억 불과했던 두산그룹 매출 지난해 18조 넘어, 연평균 10%성장
- 류정민 기자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두산은 지속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알짜 기업도 팔 수 있다."
지난 3일 타계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향년 87세)은 소비재 기업이었던 두산이 중공업 중심으로 탈바꿈하는데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박 명예회장은 1996년 7월 할아버지인 고(故) 박승직 창업주가 서울 종로에 '박승직 상점'을 연지 100년이 뒤는 기념일에 계열사 대표이사를 불러 모아 "가업(家業)이 중요한 게 아니다"며 두산의 대대적 체질 개선을 예고했다.
박 명예회장은 1996년 말 동생인 박용오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한 발 앞선 그의 결단은 두산이 1997년 본격화된 외환위기 파고를 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고인의 회장 재직(1981~1996) 말년인 1995년 12월 '창업 2세기를 위해 1996년 중 계열회사를 29개(상장사 9개)에서 19개(상장사 8개)로 통합하고 합작투자회사 지분을 처분, 대대적 개편을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고인은 이 같은 구조조정을 위해 대팀제를 도입, 당시 907개였던 부서를 364개로 줄여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내 기업들에 'IMF 한파'가 몰아닥치기 1년 전에 이미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으로 한보, 삼미, 진로 등 숱한 기업이 쓰러져갈 때 두산은 재무상태를 착실히 개선해 나갈 수 있었다.
사실 두산의 주력 계열사였던 OB맥주가 당시 맥주 시장 경쟁 심화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간 2500억원대 적자를 내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을 정도로 두산에 사업구조조정은 시급한 과제였다.
재계 관계자는 "소비재가 주력이었던 두산의 당시 위기감은 남달랐을 것"이라며 "두산의 최대 위기가 창업 100주년과 겹쳤는데 당시 박용곤 회장이 과감한 변화를 선택한 것이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고인의 선택은 이후 두산의 과감한 혁신으로 이어졌다. 두산은 1996년 우량기업으로 평가받던 3M, 코닥, 네슬레 지분을 매각했고, 그룹 성장의 핵심 역할을 한 OB맥주 영등포 공장도 서울시에 처분했다.
1997년에는 코카콜라 사업권을 매각했으며, 1998년 OB맥주 지분을 50%를 벨기에 인터브루사에 매각했다. 두산은 2001년 OB맥주 나머지 지분 중 45%를 매각해 맥주 사업에서 손을 뗀다.
대신 두산은 인프라 지원 사업에 눈을 돌려 2001년 한국중공업을 인수를 시작으로,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차례로 사들여 국내 대표적인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했다.
2000년 3조4000억 원에 불과했던 두산그룹 전체 매출은 2018년 18조1700억 원으로 연평균 10%가량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두산은 "박용곤 명예회장은 부단한 혁신을 시도했는데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의 혁신이 대표적"이라며 "경영 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선제적인 조치에 힘입어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소비재 기업을 넘어 산업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박 명예회장은 새로운 시도와 부단한 혁신을 통해 두산의 100년 전통을 이어갔고, 더 나아가 두산의 새로운 100년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조문은 5일 오후 2시부터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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