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공급망 불안에 '수소' 재조명…거꾸로 가는 韓 '지원 축소'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수소 역할 주목…청정수소 투자 1300억달러 돌파
韓 에너지 수입 의존도 93.7%…수소 예산·세제 혜택·발전 입찰 축소

현대차그룹은 9일 충북 청주시에 자원순환형 청정 수소 생산(Waste-to-Hydrogen) 시설을 구축, 국내 친환경 수소 생태계 조성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밝혔다. (현대차·기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7.9 ⓒ 뉴스1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에너지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수소 에너지가 새로운 대체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 한국은 특히 수소를 활용한 에너지 자립 필요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중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수소 산업 지원을 확대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관련 예산과 세제 혜택을 줄이고 있어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 93.7%…수소, 공급망 다변화 대안으로

28일 업계에 따르면 에너지 전문가들은 중동 전쟁으로 한국의 에너지 취약성이 통계 수치를 넘어 국민 세금 부담이라는 현실로 드러났다며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지 않으면 향후 더 큰 위기 발생 시 국가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부는 지난 18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또다시 연장했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도입된 제도로, 이번이 지난 3월 13일 시행 이후 열 번째 최고가격 결정이다.

석유 최고가격제 연장으로 정부의 재정 부담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정유업계 추산 누적 손실은 지난 6월 중순 이미 5조 원 규모에 달해 정부가 당초 확보한 4조2000억 원의 예비비를 훌쩍 넘어섰다. 정부와 정유사 간 이견으로 1차 손실 정산인 3월 13일부터 6월 30일까지 발생분조차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4년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7%에 달했다. 30년 넘게 90%대의 높은 수준에 고착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소가 에너지 수급 불안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주목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6월 발간한 '글로벌 하이드로젠 리뷰 2026'에서 "수소가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며 중동 전쟁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점을 지적하면서 수소의 에너지 안보 역할을 조명했다.

특정 지역에 매장량이 집중된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와 달리 수소는 각국이 자국 내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나 원자력 발전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 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음식물 폐기물·하수 슬러지·가축 분뇨 같은 유기성 폐기물도 수소 생산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IEA는 에너지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그중 특정 국가 수입 비중이 25%를 넘는 한국·독일·일본에 대해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가 에너지 수입 일부를 대체하고 공급망 다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청정수소 투자 1300억 달러 돌파…정책 일관성 생태계 성장 좌우

각국의 수소 정책도 선언적 단계를 넘어 실행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수소 전략을 보유한 국가는 2021년 23개국에서 2026년 66개국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은 수소 산업 전반을 대상으로 5개 도시군에 4년간 최대 80억 위안을 지원하는 2차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일본은 3조 엔 규모의 재원을 투입해 저탄소수소와 화석연료의 가격 차액을 최장 15년간 보전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유럽수소은행을 통해 재생 수소 생산자에게 최장 10년간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 7월에는 4차 경매 초안을 발표하며 5억 유로 규모의 공모를 예고했다.

글로벌 수소 기업 협의체인 수소위원회도 이달 발간한 '글로벌 하이드로젠 컴퍼스 2026'에서 수소가 탈탄소 수단을 넘어 에너지 안보, 회복탄력성,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정수소 관련 누적 확정 투자 규모는 13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최종투자결정(FID)을 통과한 프로젝트도 570개 이상으로 늘었다. 가동 중인 청정수소 생산능력 역시 연간 약 170만 톤으로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

보고서는 2030년 청정수소 잠재 수요를 연간 1100만톤으로 전망했지만 현행 정책을 통해 확정된 수요는 약 600만톤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도 연료전지와 수전해 등 핵심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2월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하고, 2024년 5월 청정수소 발전 입찰 시장을 전 세계 국가 중 처음으로 개설하는 등 제도적으로도 앞선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최근 주요국이 정부 주도로 수소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한국은 지원을 줄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달 초 공개한 2027년 예산안 지출구조조정 내역에 따르면 수소전기차 보조금은 5762억 원에서 4457억 원으로 23%, 수소충전소 보조금은 1897억 원에서 1197억 원으로 37% 각각 줄었다.

승용 수소전기차의 개별소비세 감면은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돼 2028년 말 종료되고 취득세 감면은 내년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시내·마을·농어촌버스에 적용되던 수소전기버스 부가가치세 면세도 당초보다 2년 앞당겨져 올해 말 조기 종료될 예정이다.

수소 발전 입찰 시장도 규모가 축소됐다. 일반수소발전 개설 물량은 1300GWh에서 930GWh로 줄었고 청정수소 발전도 500GWh에 그쳤다. 수년 치 입찰 물량을 사전에 공개했던 기존과 달리 올해는 2026년 물량만 확정하고 2027년 물량은 내년에 정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은 1년 뒤 시장 규모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정부의 수소 정책 컨트롤타워인 수소경제위원회도 2024년 11월 7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2년 가까이 개최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정부의 수소 로드맵을 믿고 투자해 온 기업들이 진퇴양난에 놓이고, 한국의 수소 리더십 위상은 물론 수소 산업 생태계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