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車까지 만든다…韓 부품사엔 호재, 완성차엔 숙제
'엑소봇' 첫 양산…현대트랜시스·현대케피코·신영 공급망 참여
PIF 업은 시어, 현대차·기아 텃밭 사우디서 정부 조달 선점 우려
- 신현우 기자
(서울=뉴스1) 신현우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자체 자동차 브랜드 시어(CEER)가 첫 양산 모델을 공개하면서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사우디가 내놓은 첫 차가 전기차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양산 과정에 한국 부품사들이 대거 참여해 수주 효과가 기대된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현대차·기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는 현대차(005380)·기아(000270)가 도요타와 1, 2위를 다투는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정부와 국부펀드를 등에 업은 시어가 준중형부터 대형까지 라인업을 채우며 입지를 넓히려 하기 때문이다.
2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시어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킹 압둘라 경제도시(KAEC) 내 시어 제조복합단지(CMC)에서 플래그십 전기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엑소봇(EXOBOT)'을 공개했다.
행사에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가 국부펀드(PIF)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직접 참석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시어의 첫 차량 출시로 사우디는 지속 가능하고 번영하는 산업 생태계 구축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며 "자동차 산업을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사우디를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거점으로 도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시어는 PIF와 대만 폭스콘이 합작해 세운 회사다. 차량 개발은 BMW와 협력했고, 전기·전자 아키텍처는 폭스콘이 지원한다. 엑소봇은 내년부터 사우디에서 판매된다.
엑소봇은 최상위 트림 기준 3모터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춰 최고 출력 1111마력, 최대토크 1500Nm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세단은 2.1초, SUV는 2.4초가 걸린다. 전장은 세단 5260㎜, SUV 5020㎜로 대형급이다.
먼저 출시되는 한정판 '엑소봇 퍼스트 에디션'은 최고 출력 850마력에 112kWh 배터리와 800V 충전 시스템을 갖췄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세단 670㎞, SUV 560㎞다. 전 차종은 사우디 현지에서 생산된다.
시어는 엑소봇 세단·SUV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5개 차종을 더해 중형·준중형을 포함한 7개 모델 라인업을 갖출 계획이다. 판매는 사우디에서 시작해 2028년 인접국으로 넓히고 이후 중동·북아프리카(MENA) 전역으로 확대한다.
시어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부품사와 협력하고 있으며 2034년까지 부품 현지화율을 45%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현대트랜시스가 일체형 전기차 구동시스템(EDS)을, 현대케피코가 전기차 차량 제어장치(VCU)와 DC-DC 컨버터를, 신영이 차체 부품을 공급한다.
사우디 전기차 판매 비중은 아직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지만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사우디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이 2024년 1.1%에서 2030년 31%, 2035년 64%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시어의 확장이 현대차·기아의 텃밭을 겨냥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사우디 신차 판매는 85만7247대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도요타가 점유율 28.6%로 1위를 지켰고, 현대차(15.9%)와 기아(7.8%)가 합산 23.7%로 뒤를 이었다. 현대차 엑센트는 차종별 판매 1위에 올랐다.
시어는 2028~2030년 대중 모델 5개를 내놓을 예정이다. 여기에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와 내연 기관차도 포함될 수 있다. 현대차·기아의 주력 판매 영역과 겹칠 가능성이 크다.
시어가 사우디 현지화청(LCGPA)과 협약을 맺은 만큼 관용차 등 정부 조달 물량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는 KAEC 내 킹 살만 자동차산업단지에 연 5만대 생산 규모의 공장(HMMME)을 짓고 있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함께 생산하는 곳으로, 올해 4분기 가동이 목표다. 이 공장 역시 PIF가 지분 70%를 가진 합작사다. 결국 동일한 투자자를 둔 두 회사가 같은 시장을 놓고 맞붙는 구도다.
일각에서는 시어의 출범이 단기적으로는 한국 부품사에 수주 기회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시어가 2028년 대중차 시장에 본격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 지원을 업은 시어가 한국 완성차의 중동 입지를 잠식할 수 있다"며 "현대차·기아가 가격 경쟁력 확보와 함께 정부 조달 시장 대응 전략 마련을 서둘러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wsh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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