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대형 전기트럭 이미 현실…韓, 이유 있는 '무풍지대'

유럽, 고속충전·전기트럭·중량 특례…차량·제도 함께 전환
韓, 보조금 넘어 충전 인프라·적재 손실 해법 필요

지난 16일(현지시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IAA에 전시된 테슬라 '세미'의 주행 모습. 2026.9.16 박기범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지난 15~20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IAA 트랜스포테이션 2026'은 전기트럭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자리였다. MAN과 볼보 등 유럽 주요 상용차 브랜드는 완충 시 700㎞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전기트럭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동화 흐름은 유럽 업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BYD와 GAC 등 중국 업체들도 전기트럭을 대거 선보였고, 관람객들은 테슬라의 전기트럭 '세미'를 보기 위해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기트럭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전기트럭 전환의 출발점은 '친환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총소유비용(TCO) 경쟁력까지 갖추며 경제성에서도 디젤트럭을 따라잡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트럭은 운행 과정에서 디젤트럭보다 탄소배출을 약 95% 줄일 수 있다.

구매 가격은 여전히 디젤트럭보다 2배가량 비싸지만, 주행거리와 운행량에 따라 3~5년이면 TCO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운행량이 많은 상용차의 특성상 연료비와 유지비 절감 효과가 누적될수록 전기트럭의 경제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형 전기트럭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전기화물차 시장은 여전히 1톤급 중심이다. 친환경성과 운행비 절감이라는 전기트럭의 장점이 한국에서만 달라질 리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장 확대를 가로막고 있을까.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제도적 뒷받침이다. 대형 전기트럭이 본격적으로 도로에 진입하려면 차량 가격 외에도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중량 규제다. 유럽은 무거운 배터리를 탑재하는 무공해 트럭에 최대 2톤의 추가 중량을 허용한다. 친환경차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화물을 덜 실어야 하는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서다.

반면 한국은 화물자동차의 차량총중량을 40톤, 축 하중을 10톤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며 전기트럭의 배터리 무게를 고려한 별도의 중량 특례는 없다. 법정 총중량이 동일한 상황에서 배터리 탑재로 차량 자체 중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무게가 줄어드는 구조다. 화물 운송량이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운송업자에게는 전기트럭 구매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대형 전기화물차에 최대 6000만 원의 국비 보조금을 신설한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차량 구매비만 낮춘다고 시장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대형 전기트럭을 빠르게 충전할 수 있는 충전 인프라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적재량은 줄고 충전할 곳까지 부족하다면 운송업자가 비싼 전기트럭을 선택할 유인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전기트럭에 머물러 있는 사이 경쟁국은 이미 그다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중국 업체들은 전기트럭뿐 아니라 자율주행 기술까지 전면에 내세웠다. GAC는 포니.ai와 손잡고 자율주행 상용차 기술을 선보이는 등 전동화 이후의 상용차 시장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승용차 자율주행 경쟁에서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국내 자동차 업계 입장에서는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IAA 현장에서 확인한 상용차 경쟁력은 더 이상 '좋은 트럭을 만드는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차량과 충전, 자율주행,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시장이 열린다. 전기트럭은 이미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비합리적인 제도가 고쳐지길 기다려야 하는 걸까.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