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가치 지킨다"…현대차·기아, 중고차에 눈 떴다

중고차 거래 230만대…수입차 주도 시장에 현대차·기아·KGM 참전
완성차, 판매 넘어 '가격 통제'…잔존가치로 신차 수요 견인

기아 인증중고차 센터 평택 직영점 입구. 2026.4.3. ⓒ 뉴스1 박기범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인증 중고차'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기존 수입차 브랜드가 주도하던 시장에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잇달아 진입하면서다. 중고차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신차와 중고차 간 가격 통제권을 확보해 시장 주도권을 강화하고, 나아가 렌탈·유통까지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7일 카이즈유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거래량은 226만7396대로 신차 판매(168만8007대)를 크게 웃돌았다. 2024년에도 중고차는 234만 6267대가 거래되면서 신차(163만 8506대) 판매량을 크게 앞섰다.

국내 완성차, '잔존가치 관리'로 전략 전환…현대차·기아 이어 KGM 도전장

현대차와 기아를 시작으로 KGM까지 인증 중고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먼저 현대차(005380)는 국내 최다 수준인 272개 항목(제네시스 287개)의 품질 점검을 통과한 무사고 차량만을 엄선해 판매하며 시장 신뢰를 쌓고 있다. 나아가 구독·렌탈 플랫폼 '현대 셀렉션'을 고도화하며 직접 렌터카 사업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다.

차량을 생산해 렌탈로 운영한 뒤 인증 중고차로 재판매하는 구조를 통해 차량의 전 생애주기를 직접 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아(000270)는 인증 중고차의 질적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신차 출고 후 5년·10만㎞ 이내 차량을 매입해 약 200개 항목의 엄격한 검수와 품질 인증 과정을 거친다. 최근에는 인증 중고차 전용 프리미엄 토탈케어 서비스인 '리멤버스'를 출시해 최대 1년·2만㎞ 보증 연장과 '기아 커넥트' 1년 무상 이용 등 사후 관리 서비스를 대폭 강화했다.

KG모빌리티(003620)(KGM) 역시 중고차 플랫폼과의 결합을 통해 밸류체인 확대를 추진 중이다. KG그룹의 케이카 인수는 제조와 유통, 플랫폼을 연결해 중고차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신차 경쟁력까지 동시에 높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벤틀리 서울, 인증중고차 서비스 'CERTIFIED BY BENTLEY'
수입차 이미 구축…럭셔리 브랜드까지 '인증' 경쟁

이런 전략은 '프리미엄' 시장을 주도하는 수입차 브랜드가 먼저 정착시켰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98개 항목 점검과 이력 공개를 기반으로 인증 중고차를 운영하며, 1년·2만㎞ 보증 등 체계적인 사후 서비스를 제공한다.

BMW는 '프리미엄 셀렉션'을 통해 무사고 차량 선별, 360도 점검, 금융 서비스 등을 결합해 중고차 거래를 표준화했다. 아우디는 111개 항목 점검과 연장보증, 7일 교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트레이드 인까지 연계한다.

럭셔리 브랜드는 인증 중고차에서도 '럭셔리'를 앞세우고 있다. 벤틀리는 본사 기준 79가지 항목의 엄격한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차량만 판매하며 초고가 브랜드의 가치 하락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페라리 역시 201가지 항목에 이르는 정밀 점검과 순정 부품 기반 복원, 주행 테스트를 거친 차량에만 인증을 부여한다. 중고차를 판매하면서도 '순정'을 앞세워 럭셔리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가격이 곧 브랜드 가치"…중고차가 경쟁력 좌우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관리'다. 중고차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면 신차의 잔존가치가 상승하고, 이는 곧 브랜드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소비자가 신차 구매 단계에서부터 '되팔 때 가격'을 고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업 확장성이다. 잔존가치가 안정되면 리스·렌탈·구독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 모델 설계가 가능해지고, 차량 생애주기 전반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기대효과도 있다. 과거 중고차 시장은 허위 매물과 정보의 비대칭성 등으로 인해 '레몬마켓'으로 불렸지만,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 진입하면서 제조사가 품질을 보증하는 신뢰 기반 시장으로 빠르게 전환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가 직접 품질을 보증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소비자 인식이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과제도 존재한다. 인증 중고차는 일반 매물 대비 가격이 높은 경우가 많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국내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중고차' 전략이 예상보다 더디게 자리를 잡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존 중고차 업계와의 갈등도 변수다.

그럼에도 업계는 방향성이 명확하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신차를 얼마나 잘 파느냐보다 중고차 가격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가 브랜드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사업은 이제 시작 단계지만, 영향력은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pkb1@news1.kr